사적인 부분이 드러나는 일부 내용은 삭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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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후 각자 다른 지역에 살면서도
종종 연락이 와서 통화도 하고 가끔 만났어요
제가 대학을 타지역으로 가서 방학때 집에가면
고향에서 학교 다니던 그 애를 한번씩 만났구요.
원래 물질에 인색하다는건 알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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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제가 돈을 내는 상황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1년에 한두번 만나는 거였고 저의 고등학교 시절 추억의 일부분이라 생각해서 돈에 대한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각자 타지역에 살다가 30대일때 그 친구가 사는 지역에 일이 있어 가게 됐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더군요
친구가 혼자 살고 있었어요.
(중략)
집에 가서 목이 말라 물을 좀 달라하니 '없어'라고
딱 한마디 하길래
얼굴을 쳐다봤는데 다른 곳을 보며 시선을 피하고 물을 끓여주거나 대체할 어떤 음료를 줄 생각이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저는 목이 마른채로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나가니 그 애가
소파에 앉아서 유리컵에 든 물을 천천히 마시고 있더군요
그 물은 냉장고에서 갓 꺼낸것처럼 차가워서 컵에 이슬이 맺혀 있었고 약초를 다린 물인지 차를 끓인 물인지 보리차와는 다른 색깔이었어요, 분명한 건 아침에 끓인 물은 아니었다는 거죠
저는 그 순간 그 친구에게 물 없다며? 라고 물어보는 게 의미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친구는 태연하게 천천히 그 물을 한 컵 다 마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물론 저에게 물을 권하지도 않았어요
빨리 가야 한다고 하고 그 집을 나왔고 그 이후로 저는 그 친구에게 연락을 먼저 하지는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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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먼저 결혼을했고
그 친구가 와서 축의금을 했고 저는 차비를 챙겨주었어요. 나중에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연락을 했고 제 결혼식에 왔었기에 저도 3시간 거리의 그 친구 결혼식에 갔어요.
그 뜨거웠던 한여름 8월 지하철에서 15분을 걸어, 예식장이 아닌 어떤 회관에서 하는 결혼식에 갔어요. 그 회관 지하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식사로 뜨거운 갈비탕이 나오더군요.
당시 예식 식사는 거의 다 뷔페였는데 의외였고 새벽부터 빈속에 나가서 땡볕에 길 찾느라 헤매고 허기도 지고 배도 고팠지만 너무 지치고 더워서 뜨거운 갈비탕을 먹을 수가 없더군요. 심지어 그 지하식당 안이 냉방이 잘 되지 않아 얼마나 덥고 지하 특유의 냄새가 나던지요. 축하 한다고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역시 차비 따위는 주지 않더군요.
가끔 그 친구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저한테 전화를 했고 저는 무덤덤하게 그 친구의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는 친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냥 고등때 같은 반 아이 정도의 존재였죠
그러다 그 친구가 임신을 했다고 연락을 해왔고 출산이 다가올 즈음에는 저희 아이가 쓰던 유모차를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이와 관련해 받은게 없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저도 당당하게 거절을 했어요
아니 나 이 유모차 비싼 거라서 중고거래로 판매할 거야
라구요
그 이후로도 드문드문 연락은 왔지만 제가 잘 받지 않았고 지금은 번호를 바꾸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연락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
가끔 아침에 일어나서 갈증이 심하게 나는 날
그 아이가 생각이 나요
그 아이가 소파에 앉아
태연하게 유리컵에 그 정체 모를 물을 마시던 모습이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는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이런 게 트라우마일까요
죽고 못사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전 그날의 일이 너무 충격이었던 거 같아요
그깟 물 하나가 뭐라고
끓인 물 주는 게 아까웠으면 그 물의 정체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수돗물이라도 좀 끓여주지....
앞으로 살면서 아침에 눈 떠서 목마른 날
더 이상 그 아이가 생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아이의 물 마시던 모습이 제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두 번 그런 날이 있어요
오늘 아침 늦잠을 자고 심하게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면서 그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네요
제 절친들은 모두 자기껄 아낌없이 퍼주는 친구들이라서 우리끼리는 늘 계산이 없었어요
누가 돈을 쓰던 중요하지 않았고
받으면 그 배로 더 해주려고 하는 사이예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베푸는 스타일이구요
그 애가 저에게 중요한 존재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문득 그 물 사건이 생각이 나는 건
순수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했던
존재였기 때문이겠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가끔 생각이 나요
특히나 갈증이 나는 아침에 생각이 나면 기분이 별로네요
어떻게 하면 그 물 사건을 잊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