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읽은 글 보고 우리 형님 생각이 났네요.
남편쪽이 형제 많은 집이고 형님은 맏며느리에요.
제가 결혼 25년차인데 딱 하는 짓이 그 많이 읽은글 동서 같았네요.
일이 있든 없든, 집에서 모이든 밖에서 만나든, 단 한번도 일찍 온적 없고, 늘 핑계가 있었죠.
원래 사람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알아요. 작은데서 보이는 그런 면면이 결국 그 사람의 전부라는걸 배우게 해준 분이죠.
수십년 결혼 상황에 있던 소소한 일을 다 적을수 없으나,
맏이라서 받아야 할 권리?? 대접?? 이런건 꼬박꼬박 챙겼지만, 맏며느리는 커녕 기본적으로 그냥 기본 도리는 하지 않더라고요.
그게 소소한 일들은 그냥 넘어가지만 결국 결정적인 일들이 터지게 되더라고요.
제가 아직 젊고 어리버리할때 똑똑히 기억해요. 맏이라서 본인 집에서 앞으로 명절이고 큰일 있을때마다 식구들 모일일이 많아 넓은 집 필요하다고... 직접 자기 입으로 그랬고, 그래서 그 50평 집 시부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산거.
그런데 정작 그 집에서 모인거 집들이할때 딱 한번 뿐이었고, 시부모님 그 집에서 잔것도 딱 그때 한번 뿐이었던거.
아까 그 글에도 동서가 일찍 오거나 말거나 시부모와의 관계니 니가 상관 할바 아니란 댓글들이 주를 이루었대요?
우리집도 그랬어요. 별볼일 없는 맏아들 기죽을까 싶어 무지랭이 시골 노인네들 전전긍긍하는터라 살아계신 동안 다른 형제들이 불만 있었어도 맞춰주고 살았습니다.
이십년 넘게 그 집 애들이 첫조카 타이틀로 첫 입학, 첫 졸업..이어지면서 알뜰하게 용돈 챙기고 커서 첫 결혼 할때까지 봤고,
첫조카 그 결혼식에 온가족이 다 총출동 하고 이제 성인이 된 조카들이 각자 따로 부조하는것도 봤는데,
정작 그 결혼식 가신다고 시골서 상경하신 부모님은 다른 형제네 집서 주무시는데도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못들었고,
더 결정적인건 그 이후 시부모 편찮으실때 홀몸으로 왔다갔다 하는 아들과는 별개로 형님은 진짜로 몇년을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는 거죠.
그저 행여나 자기네 집에서 하룻밤 잔다고 할까봐 전전긍긍 한걸 알죠. 수년을 항암을 하러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데 다른 형제네 집에서 기거하는걸 단 한번도 아는체를 안한거죠.
그동안 피의 쉴드를 치시던 시부모님도 아플때가 되서야 드디어 정신을 차리신건지 그때되니 많이 서운해 하셨었죠.
그래놓고는 시모가 돌아가시자 장례식장에는 나타나더군요.
그리고 그 이후 다른 조카 결혼식에는 역시나 시숙 혼자 오고 형님은 안오더라고요. 뭐 혼자라도 와서 부조는 했으니 다행이라가 해야 하나..
그 결혼한 딸도 당연히 입 싹 씻고 안오더라고요. 지 결혼 할때 받은게 있는데 본인 명의로 따로 부조도 해야 정상이건만 그런건 바라지도 말아야 하는건지.
이렇게 말해도 지 부모님 자식이나 왔다갔다 하면 됐지 무슨 며느리 도리 바라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전 못되먹은건지 옛날 사람인지, 그렇게 생각이 안드네요.
그리고 저는 지금 큰집을 남 또는 남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부모님 안계시는데 제가 왜요? 남편도 자기 형 그렇게 십수년을 쉴드를 치더니 그 이후부터 지금은 미워하죠.
지금 우리는 딱 큰형네만 빼고 나머지 형제들끼리만 잘 만나요. 좋은거 나눠먹고요..그러나 그 분 내외와 그 집 식구들은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마 또 뭔가 필요한거 부탁할거 생기면 연락할거에요. 시부모님 돌아가셨으니 국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