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놀라운 기억의 왜곡

정말 조회수 : 3,582
작성일 : 2024-09-05 03:37:56

친정 엄마가 치매세요. 10년 정도 된 오래된 치매시고 저는 멀리 떨어져 살아서 일년에 한 번 휴가 얻어서 엄마랑 한두달 정도 같이 지내요. 매년 만나 보면 엄마는 단기 기억이 없어진 건 당연한데 이제는 말수도 없어지고 살아갈 의지도 많이 약해진 걸 느끼지만 의외로 또 달라지는 면도 보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신기해요.

 

가장 큰 변화는 기억의 왜곡. 살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런 적이 있었어요. 엄마가 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저녁 차리면서 저보고 밥 다 됐으니까 상 놔, 그랬는데 제가 티비를 몰입해서 재밌게 보다가, 싫어, 나중에! 그랬어요. 그 말 했다고 엄마가 달려 오셔서 제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요, 어디 엄마한테 싫어라고 하냐고요. 그러다 잘 못 넘어져서 코뼈가 양쪽 다 부러진 적이 있어요. 다른 가족들은 없었고 엄마는 피를 철철 흘리는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제가 벽에 부딪혔다고 하셨어요. 아무도 그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묻고 넘어 갔어요. 몇년 전에 가족들 모였을 때 내가 자라면서 뼈가 몇개 부러졌었는지 아는 사람, 코뼈가 왜 부러졌었는지 아는 사람? 엄마 포함 물었더니 아무도 모르고 쟤가 뭔 소리 하지? 흐지부지 넘어 갔는데요, 너 옛날에 혼자 방문에 부딪혀서 코뼈 부러진 적은 있었지 라고 엄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랑하는 자식 아무것도 아닌 일로 코뼈 부려뜨려놓고 죄책감은 있었구나, 아직까지도 벽인지 문에 부딪혔다고 당신 마음이 편하자고 기억을 왜곡하고 살았구나 생각했었죠. 여기까진 이해가 가는데요.

 

그런 영화나 드라마 있잖아요. 죽은 사람들을 대기실에 모아놓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고르면 그날 하루 다시 살게 해준다 영면하기 전에. 제 생각엔 말도 안 되는 질문이고 저는 뭘 선택할지 모르겠지만 저희 엄마는 어느 날을 고를지 저는 안다고 자신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반장 되던 날. 그 때 엄마가 담임선생님께 촌지 봉투를 전해드렸고 반장 임명권이 있었던 선생님이 돈 받고 양심상? 절 반장으로 임명하셨던 걸 전 알아요. 엄마는 가족 일로 타지방에 가 계셨는데 전화로 그 얘기듣고 뛸듯이 기뻐하셨어요.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전화로도 전해지는 에너지, 그래서 전 엄마가 할 수 있다면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하신다고 믿었죠. 얼마 전에 같이 앉아서 티비 보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그러시네요. 내가 (엄마가) 옛날에 동네방네 소문난 천재였잖아 (??). 그래서 학교도 남들보다 일찍 들어갔는데 (학교 일찍 들어간 건 전데 전 1월 생이라 학교 7살에 갔어요, 천재라서 아니고요) 어린 나이에 학교 가서도 워낙 공부를 잘 하니까 덜컥 반장을 시키네. 그 옛날에 여자애가 반장을 하다니 다들 첨듣는 소리라고 구경을 왔었어, 1학년 1반 여자 반장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한다고 (저 중학교 1학년 1반 반장했고요). 그렇구나, 엄마는 제가 엄마 였다고 생각하고 머리 속에서 계속 짜집기를 하고 계시네요. 근데 치매 환자 가족은 그걸 수정해 주는 말과 행동을 하면 안 된대요. 엄마, 정말 똑똑했나봐, 그 옛날에 반장을 다 하셨고. 대단하세요. 그런 말을 해드리고 여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글을 올립니다. 사람의 기억은 참, 진짜 오묘하네요.

IP : 74.75.xxx.126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9.5 3:52 AM (121.66.xxx.30)

    착하고 지혜로운 원글님, 따뜻한 커피한잔 나누고 싶네요.
    마음이 울컥해지며 나를 포함한 주위의 부모님들을 생각하게
    되네요.

  • 2. 공감
    '24.9.5 5:49 AM (125.189.xxx.41)

    저도 비슷한 경험했어요.
    엄마도 치매셨는데
    진짜 어떤건 믿고싶으신대로 믿으셨고
    과거와 현재 같이 짜집기로 등장하기도하고
    그랬어요..
    보고프네요..원글님만큼 했으면
    덜 후회할텐데
    전 떨어져 살면서
    많이보지 못했어요..
    진짜 따스한 원글님과
    얘기라도 나누고프네요..

  • 3. ㅇㅇ
    '24.9.5 6:08 AM (175.199.xxx.97) - 삭제된댓글

    저는 그냥 요양원에 들어갈래요
    치매로 내자식에게 어떤 헛소리를 할지
    너무 두렵습니다

  • 4. 저도요
    '24.9.5 6:17 AM (74.75.xxx.126)

    윗님. 저도 너무 두려워요, 가족력도 있는데 나중에 무슨 민낯을 보일까 싶어서요.

  • 5. 기다리자
    '24.9.5 6:25 AM (211.108.xxx.65)

    어쩐지 슬픈 글이네쇼.

  • 6. 그정도야
    '24.9.5 6:26 AM (1.225.xxx.35)

    웃으며 넘길 수 있죠. 우리집은 양상이 좀 달라요, 예를들면 이런식,
    치매엄마가 어느날 님 남편에게 코뼈 부러진 이유는 물론 친정집
    치부를 다 이야기 하는거죠. 남편에게도 알리고싶지않은 부분있잖아요
    어느거는 부풀려서 ,퍽이나 재미있고 중요한 이야기처럼 다 말해요
    친정가족들 구성원이 각자 모르는 말들을 해서 갈등으로 번지기도 함.
    몰라도 될 얘기를 하는데 아주 미쳐요

  • 7.
    '24.9.5 6:35 AM (211.199.xxx.10)

    저는 엄마가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1년반 넘게 말을 못하게 되었어요.
    사람은 알아보는 눈치.
    그런데 그냥 바라보기만 해요.
    예전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그 시절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엉터리 말이라도요.
    파킨슨은 성대도 마비시키나봐요.
    마지막 말 비슷한 건 거의 벙어리 소리 같았어요.
    말을 해도 문제 안해도 문제네요.
    우리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요?

  • 8.
    '24.9.5 7:01 AM (58.76.xxx.65) - 삭제된댓글

    저는 엄마가 갑자기 돌아 가셨는데 살아 계실 때는
    엄마의 좋은점보다 나랑 싸웠던 그 특정 부분이 가끔
    생각 났어요
    그런데 이제는 고등학교때 엄마에게 못되게
    굴고 소리 지르고 했던게 50넘은 지금 가끔
    스치 듯 생각나요
    여러가지로 힘드시겠지만 잘 이겨 내시길 기도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43995 혼전임신이면 자기애 아닐 확률 높음 72 2024/11/01 23,116
1643994 우연히 검색하다 청약통장이 예금자 보호대상아닌가요 4 ... 2024/11/01 3,960
1643993 여행 경비 오백만원 7 가을 2024/11/01 4,800
1643992 82 댓글 못나게 쓰는사람들 7 ..... 2024/11/01 1,021
1643991 옥션 스마일데이 갤럭시24 88만원해요 3 .. 2024/11/01 2,020
1643990 해외 호텔 예약시 어디서 하세요? (방법 가르쳐주세요.) 24 ..... 2024/11/01 3,061
1643989 유영철이나 강호순이나 히틀러나 7 뭘까 2024/11/01 1,486
1643988 명태균이 누구에요? 30 ... 2024/11/01 11,621
1643987 미국주식 주욱 떨어지네요 1 ㅇㅇ 2024/11/01 4,832
1643986 애들이 학업에서 평범하니 무시당하는 31 슬퍼요 2024/11/01 5,580
1643985 혀짧은 애기 목소리로 웅앵웅 방송 패널 6 하.. 2024/11/01 3,764
1643984 이른나이 발병한 루이소체 치매. 일찍 죽는 병인가요 7 00 2024/11/01 2,772
1643983 사과는 어디서 9 2024/11/01 2,427
1643982 느그 동재가 우리 동재가 된 거 13 하늘에 2024/11/01 3,143
1643981 사장님 입장 VS 알바입장 8 .. 2024/11/01 2,210
1643980 과사무실 통해서 과외 구해보신 분 계실까요? 7 2024/11/01 1,242
1643979 진짜로 나라 꼴이 12 2024/11/01 2,281
1643978 범죄자들은 왜 다 억울하다고 할까요? 21 양심 2024/11/01 2,129
1643977 AI가 그린 사람 보면 기분이 나빠요 11 ㅇㅇ 2024/11/01 4,156
1643976 남편 왈 ㅜㅜ 8 oip 2024/11/01 4,562
1643975 유영철 이야기니 피해갈분들은 피해가세요 23 꼬꼬무 2024/11/01 7,374
1643974 근종 왜 생기나요 9 근종 2024/11/01 3,362
1643973 '나솔' 23기 정숙, 조건만남 과거사 터졌다…영상 모두 통편집.. 15 와ㅏㅇ 2024/10/31 7,318
1643972 제가 태어난 시를 이제 알았어요 8 ... 2024/10/31 2,739
1643971 하루 1시간 알바해요 15 ... 2024/10/31 7,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