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치매세요. 10년 정도 된 오래된 치매시고 저는 멀리 떨어져 살아서 일년에 한 번 휴가 얻어서 엄마랑 한두달 정도 같이 지내요. 매년 만나 보면 엄마는 단기 기억이 없어진 건 당연한데 이제는 말수도 없어지고 살아갈 의지도 많이 약해진 걸 느끼지만 의외로 또 달라지는 면도 보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신기해요.
가장 큰 변화는 기억의 왜곡. 살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런 적이 있었어요. 엄마가 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저녁 차리면서 저보고 밥 다 됐으니까 상 놔, 그랬는데 제가 티비를 몰입해서 재밌게 보다가, 싫어, 나중에! 그랬어요. 그 말 했다고 엄마가 달려 오셔서 제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요, 어디 엄마한테 싫어라고 하냐고요. 그러다 잘 못 넘어져서 코뼈가 양쪽 다 부러진 적이 있어요. 다른 가족들은 없었고 엄마는 피를 철철 흘리는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제가 벽에 부딪혔다고 하셨어요. 아무도 그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묻고 넘어 갔어요. 몇년 전에 가족들 모였을 때 내가 자라면서 뼈가 몇개 부러졌었는지 아는 사람, 코뼈가 왜 부러졌었는지 아는 사람? 엄마 포함 물었더니 아무도 모르고 쟤가 뭔 소리 하지? 흐지부지 넘어 갔는데요, 너 옛날에 혼자 방문에 부딪혀서 코뼈 부러진 적은 있었지 라고 엄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랑하는 자식 아무것도 아닌 일로 코뼈 부려뜨려놓고 죄책감은 있었구나, 아직까지도 벽인지 문에 부딪혔다고 당신 마음이 편하자고 기억을 왜곡하고 살았구나 생각했었죠. 여기까진 이해가 가는데요.
그런 영화나 드라마 있잖아요. 죽은 사람들을 대기실에 모아놓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고르면 그날 하루 다시 살게 해준다 영면하기 전에. 제 생각엔 말도 안 되는 질문이고 저는 뭘 선택할지 모르겠지만 저희 엄마는 어느 날을 고를지 저는 안다고 자신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반장 되던 날. 그 때 엄마가 담임선생님께 촌지 봉투를 전해드렸고 반장 임명권이 있었던 선생님이 돈 받고 양심상? 절 반장으로 임명하셨던 걸 전 알아요. 엄마는 가족 일로 타지방에 가 계셨는데 전화로 그 얘기듣고 뛸듯이 기뻐하셨어요.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전화로도 전해지는 에너지, 그래서 전 엄마가 할 수 있다면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하신다고 믿었죠. 얼마 전에 같이 앉아서 티비 보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그러시네요. 내가 (엄마가) 옛날에 동네방네 소문난 천재였잖아 (??). 그래서 학교도 남들보다 일찍 들어갔는데 (학교 일찍 들어간 건 전데 전 1월 생이라 학교 7살에 갔어요, 천재라서 아니고요) 어린 나이에 학교 가서도 워낙 공부를 잘 하니까 덜컥 반장을 시키네. 그 옛날에 여자애가 반장을 하다니 다들 첨듣는 소리라고 구경을 왔었어, 1학년 1반 여자 반장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한다고 (저 중학교 1학년 1반 반장했고요). 그렇구나, 엄마는 제가 엄마 였다고 생각하고 머리 속에서 계속 짜집기를 하고 계시네요. 근데 치매 환자 가족은 그걸 수정해 주는 말과 행동을 하면 안 된대요. 엄마, 정말 똑똑했나봐, 그 옛날에 반장을 다 하셨고. 대단하세요. 그런 말을 해드리고 여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글을 올립니다. 사람의 기억은 참, 진짜 오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