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놀라운 기억의 왜곡

정말 조회수 : 3,630
작성일 : 2024-09-05 03:37:56

친정 엄마가 치매세요. 10년 정도 된 오래된 치매시고 저는 멀리 떨어져 살아서 일년에 한 번 휴가 얻어서 엄마랑 한두달 정도 같이 지내요. 매년 만나 보면 엄마는 단기 기억이 없어진 건 당연한데 이제는 말수도 없어지고 살아갈 의지도 많이 약해진 걸 느끼지만 의외로 또 달라지는 면도 보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신기해요.

 

가장 큰 변화는 기억의 왜곡. 살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런 적이 있었어요. 엄마가 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저녁 차리면서 저보고 밥 다 됐으니까 상 놔, 그랬는데 제가 티비를 몰입해서 재밌게 보다가, 싫어, 나중에! 그랬어요. 그 말 했다고 엄마가 달려 오셔서 제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요, 어디 엄마한테 싫어라고 하냐고요. 그러다 잘 못 넘어져서 코뼈가 양쪽 다 부러진 적이 있어요. 다른 가족들은 없었고 엄마는 피를 철철 흘리는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제가 벽에 부딪혔다고 하셨어요. 아무도 그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묻고 넘어 갔어요. 몇년 전에 가족들 모였을 때 내가 자라면서 뼈가 몇개 부러졌었는지 아는 사람, 코뼈가 왜 부러졌었는지 아는 사람? 엄마 포함 물었더니 아무도 모르고 쟤가 뭔 소리 하지? 흐지부지 넘어 갔는데요, 너 옛날에 혼자 방문에 부딪혀서 코뼈 부러진 적은 있었지 라고 엄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랑하는 자식 아무것도 아닌 일로 코뼈 부려뜨려놓고 죄책감은 있었구나, 아직까지도 벽인지 문에 부딪혔다고 당신 마음이 편하자고 기억을 왜곡하고 살았구나 생각했었죠. 여기까진 이해가 가는데요.

 

그런 영화나 드라마 있잖아요. 죽은 사람들을 대기실에 모아놓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고르면 그날 하루 다시 살게 해준다 영면하기 전에. 제 생각엔 말도 안 되는 질문이고 저는 뭘 선택할지 모르겠지만 저희 엄마는 어느 날을 고를지 저는 안다고 자신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반장 되던 날. 그 때 엄마가 담임선생님께 촌지 봉투를 전해드렸고 반장 임명권이 있었던 선생님이 돈 받고 양심상? 절 반장으로 임명하셨던 걸 전 알아요. 엄마는 가족 일로 타지방에 가 계셨는데 전화로 그 얘기듣고 뛸듯이 기뻐하셨어요.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전화로도 전해지는 에너지, 그래서 전 엄마가 할 수 있다면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하신다고 믿었죠. 얼마 전에 같이 앉아서 티비 보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그러시네요. 내가 (엄마가) 옛날에 동네방네 소문난 천재였잖아 (??). 그래서 학교도 남들보다 일찍 들어갔는데 (학교 일찍 들어간 건 전데 전 1월 생이라 학교 7살에 갔어요, 천재라서 아니고요) 어린 나이에 학교 가서도 워낙 공부를 잘 하니까 덜컥 반장을 시키네. 그 옛날에 여자애가 반장을 하다니 다들 첨듣는 소리라고 구경을 왔었어, 1학년 1반 여자 반장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한다고 (저 중학교 1학년 1반 반장했고요). 그렇구나, 엄마는 제가 엄마 였다고 생각하고 머리 속에서 계속 짜집기를 하고 계시네요. 근데 치매 환자 가족은 그걸 수정해 주는 말과 행동을 하면 안 된대요. 엄마, 정말 똑똑했나봐, 그 옛날에 반장을 다 하셨고. 대단하세요. 그런 말을 해드리고 여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글을 올립니다. 사람의 기억은 참, 진짜 오묘하네요.

IP : 74.75.xxx.126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9.5 3:52 AM (121.66.xxx.30)

    착하고 지혜로운 원글님, 따뜻한 커피한잔 나누고 싶네요.
    마음이 울컥해지며 나를 포함한 주위의 부모님들을 생각하게
    되네요.

  • 2. 공감
    '24.9.5 5:49 AM (125.189.xxx.41)

    저도 비슷한 경험했어요.
    엄마도 치매셨는데
    진짜 어떤건 믿고싶으신대로 믿으셨고
    과거와 현재 같이 짜집기로 등장하기도하고
    그랬어요..
    보고프네요..원글님만큼 했으면
    덜 후회할텐데
    전 떨어져 살면서
    많이보지 못했어요..
    진짜 따스한 원글님과
    얘기라도 나누고프네요..

  • 3. ㅇㅇ
    '24.9.5 6:08 AM (175.199.xxx.97) - 삭제된댓글

    저는 그냥 요양원에 들어갈래요
    치매로 내자식에게 어떤 헛소리를 할지
    너무 두렵습니다

  • 4. 저도요
    '24.9.5 6:17 AM (74.75.xxx.126)

    윗님. 저도 너무 두려워요, 가족력도 있는데 나중에 무슨 민낯을 보일까 싶어서요.

  • 5. 기다리자
    '24.9.5 6:25 AM (211.108.xxx.65)

    어쩐지 슬픈 글이네쇼.

  • 6. 그정도야
    '24.9.5 6:26 AM (1.225.xxx.35)

    웃으며 넘길 수 있죠. 우리집은 양상이 좀 달라요, 예를들면 이런식,
    치매엄마가 어느날 님 남편에게 코뼈 부러진 이유는 물론 친정집
    치부를 다 이야기 하는거죠. 남편에게도 알리고싶지않은 부분있잖아요
    어느거는 부풀려서 ,퍽이나 재미있고 중요한 이야기처럼 다 말해요
    친정가족들 구성원이 각자 모르는 말들을 해서 갈등으로 번지기도 함.
    몰라도 될 얘기를 하는데 아주 미쳐요

  • 7.
    '24.9.5 6:35 AM (211.199.xxx.10)

    저는 엄마가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1년반 넘게 말을 못하게 되었어요.
    사람은 알아보는 눈치.
    그런데 그냥 바라보기만 해요.
    예전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그 시절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엉터리 말이라도요.
    파킨슨은 성대도 마비시키나봐요.
    마지막 말 비슷한 건 거의 벙어리 소리 같았어요.
    말을 해도 문제 안해도 문제네요.
    우리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요?

  • 8.
    '24.9.5 7:01 AM (58.76.xxx.65) - 삭제된댓글

    저는 엄마가 갑자기 돌아 가셨는데 살아 계실 때는
    엄마의 좋은점보다 나랑 싸웠던 그 특정 부분이 가끔
    생각 났어요
    그런데 이제는 고등학교때 엄마에게 못되게
    굴고 소리 지르고 했던게 50넘은 지금 가끔
    스치 듯 생각나요
    여러가지로 힘드시겠지만 잘 이겨 내시길 기도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19237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꼭 보세요 15 고민시 2024/09/05 5,683
1619236 (급질문)30일 이내 환불이면요 2 2024/09/05 913
1619235 돼지갈비찜에 들기름 6 .. 2024/09/05 1,503
1619234 지창욱 먹튀사건이래요 21 먹튀 2024/09/05 20,652
1619233 저도 재능... 별거 아니지만 2 써봐요 2024/09/05 1,715
1619232 배도 아프고 기운이 없어요 1 썩은몸 2024/09/05 782
1619231 68년생 생리하는분 계신가요? 24 저기요 2024/09/05 4,215
1619230 아효 침대축구 짜증나네요 진짜 3 ..... 2024/09/05 1,724
1619229 단발할까요? 14 ........ 2024/09/05 1,940
1619228 와.. 한국축구.. 팔레스타인한테 아직 한골도 못넣고 있네요.... 26 축구 2024/09/05 3,580
1619227 폐경될즈음에 체력이 좋아지나요? 4 ... 2024/09/05 2,539
1619226 롯데리아 "배민클럽서 빠진다" 1 ㅇㅇ 2024/09/05 3,557
1619225 저는 흰머리가 아직 안났어요 27 화이팅 2024/09/05 5,464
1619224 월드컵 예선전 6 ... 2024/09/05 1,058
1619223 저두 있었네요 쓸데없는 재능 9 읽다보니 2024/09/05 3,400
1619222 밖에 나왔어요. 2 ... 2024/09/05 1,420
1619221 제가 소송하며 느낀점입니다 28 느낀세상 2024/09/05 13,730
1619220 간 수치는 정상인데 지방간이면 심하지 않은 건가요? 12 쿠쿠 2024/09/05 2,343
1619219 집 앞 공원에 오물 풍선 투척 됐네요ㅠ 4 0011 2024/09/05 3,058
1619218 만만해 보이는 상사 해결법좀 있을까요? 3 아옹 2024/09/05 1,201
1619217 82쿡에 어제 댓글만선에 베스트간글이다른카페에 올라왔어요 10 82쿡 글 2024/09/05 3,903
1619216 봉평 메밀 막걸리 4 기회 있으시.. 2024/09/05 1,057
1619215 22기 영철은 왜 이혼 했나요?? 10 2024/09/05 5,915
1619214 저도 쓸데없는? 재능있어요. 19 ... 2024/09/05 4,549
1619213 신동엽은 진짜 ㅎㅎ 33 ㄱㄴㄷ 2024/09/05 23,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