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딱 절반쯤 산 것 같습니다.
늘 저는 90살 언저리에 죽을 거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장수 집안이라 집안 어르신들 모두 그 때쯤 돌아가셨고
인명은 재천이라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그저 막연히
내 인생은 그 즈음이 끝이려니 생각합니다.
제 방에 고장난 시계가 아직 걸려 있는데
시침과 분침은 저의 '인생 시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딱 정오쯤이네요.
나이 대에 맞게, 숱한 기혼들 사이에서 저는 싱글로 살고 있고,
(드라마 응사, 응팔에서 제가 꼽는 옥의 티는 저 중에 미혼이 한 명도 없다는 점입니다. 싱글 여성이 많아진 시대의 단면을 반영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요 며칠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힘들 때 전화할 친구는 몇몇 있지만
문득 남편이 있으면 좀 나았으려나 생각도 했고요 .
돌아보니, 저는 저대로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어릴 때 취업과 돈벌이에만 매몰되지 않고
돈도 안 나오고 쌀도 안 나오는 독서를 좋아한 덕분에
여러 풍파를 겪고 위기에 부딪칠 때마다
오히려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려 노력해온 것이
가장 강력한 저를 만들어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살면서 크든 작든 내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밟고서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때로는 반대 성향의 사람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피해보고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나이 들면서 보니 저의 태도가 스스로 가장 흡족할 뿐더러, 주변에서도 도리어 이런 저를 심지 곧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웃기지만, '그래, 내가 틀리지 않았어'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딱히 부유하지도, 딱히 잘나지도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모든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는 생각에 감사하고,
반평생 살아온 내가, 자식 하나 남기질 않았지만,
나름대로 기여해온 일과 동료애만으로도 괜찮았다 생각합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조던피터슨 교수의 쇼츠를 봤는데
사회가 부여한 목표와 한계 안에 저를 가두고 살았다는 섬광 같은 자각을 얻게 됐습니다.
그래서 내 나이 이미 중년이지만, 체력을 살뜰히 살피면서
어릴 때보다는 좀 더 지혜로운 모습으로, 지나치게 나를 몰아세우거나 자채하지 않고, 평정을 가지고
좀 더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냥, 너무 일로 힘든 며칠을 보내고 주말을 맞아 잠깐 쉬면서
이렇게나마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해봅니다.
고생했다. 잘살았다. 잘해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내가 나에게
(오글오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