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한나 조회수 : 2,263
작성일 : 2024-08-18 07:10:52

 

 

내가 어제 책을 읽었는데 여보

 

남자와 여자가 매일 만나서 섹스를 하는데 어느날 남자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남자는 소년이야 매일 당신 생각만 하느라 책이 재미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

여자는 남자의 책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꺼낸 김에 책을 읽어줘

여자가 내일부터는 순서를 바꾸자고 말해 언제나 만나면 같이 씻고 섹스를 했는데

이제는 책을 읽어준 다음에 섹스를 하자고 해

그래서 남자는 매일 책을 가지고 여자를 만나러 가

한 책이 끝나면 다음 책을 읽어주는 거야

 

 

여자는 전차의 검표원이었는데 일을 너무 잘해서

승진이 돼 사무직이 된거지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 

 

남자와 여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어

남자는 15세였고 여자는 36세였지

 

 

8년의 시간이 흐르고 법학생이 된 남자는 법원에 재판을 방청하러 갔다가 전범으로

재판에 피고로 서게 된 여자를 다시 만나게 돼

 

전쟁중에 여자는 감시원으로 일하며 매달 10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내서 죽이는 일을 했는데 조금의 죄책감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람들을 분노하게 해

 

그 일은 다른 여섯명의 감시원과 같이 했는데

그 여섯명의 감시원들은 변호사와 의논해서 이 여자가 책임자였고

모든 걸 이 여자가 결정했다고

뒤집어 씌우는데 사실 이 여자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어

 

그 서류의 사인이 자기 것이 아니고 자신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는 말을 법정에서

하면 책임자라는 무거운 벌을 피할 수 있는데 여자는 글을 못 쓴다는 말을 하는 것 보다

죄를 뒤집어쓰는 쪽을 택해 그런데 여보 당신 어머니 말이야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을 때였어. 주차하기가 힘들어서 어머니 혼자 올라가시라고

하고 주차를 하고 내가 올라갔을 때 병원 접수대에 어머니가 우두커니 서 계셨어

 

접수하는데 어머니 이름을 적으라고 한 거야

병원에서 매번 그래

 

어떤 때는 본인의 서명이 필요하다며 보호자가 있어도 직접 적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

어머니는 글을 쓸 줄 모르시잖아

그 날도 어머니는 종이 앞에 볼펜을 쥐고 우두커니

서 계시는 거야 

 

정말 마음이 아팠어. 나는 어머니가 그 접수대 앞에 앉아 있는 직원들과 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알아서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말을 했어. 어머니 이렇게 휘리릭 쓰세요.

사인하듯이 둥그렇게 쓰세요. 라고

 

 

어머니가 갑자기 아주 큰 목소리로 뭘 둥그렇게 써. 이름을 쓰면 되지. 라고 하셨어

호통치시는 거야. 내 말이 잘못된 것 처럼. 나는 가만히 있었어.

 

 

어머니가 볼펜에 든 손에 다시 힘을 주며 펜을 드셨어.

 

 

나는 그 날 알았어. 어머니가 가끔 성공적으로 어머니 이름 세 글자를 쓰기도 하셨거든.

나는 어머니가 어머니 이름 세 글자는 외우셨구나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글자를 아시는게 아니었어. ㅅ을 쓰고 ㅓ 를 쓰는 방식이 아니라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그림처럼 외우고 계셨는데 그 날은 어머니의 그 그림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거야.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어.

 

 

엄마는 겨우 가운데 이름 한 글자를 쓰셨어. 그림 그리듯이. 나는 엄마를 지켜보다가

앞뒤로 어머니의 이름 석자를 채워서 그 종이를 접수처에 냈어. 어머니같이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그게 안 되는 거야. 배울 시기를 놓쳐버린 후에는 정말

안되는 거야. 내가 몇번을 가르쳐드리려고 했지만 지금의 어머니는 몸이 너무 아프고

결국 포기하게 되었지.

 

 

그럼에도 엄마는 존엄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런 힘든 순간을 수없이 마주해야하는 거야.

모른다는 건 그런거야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IP : 211.203.xxx.17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디어 한나
    '24.8.18 7:43 AM (116.43.xxx.47) - 삭제된댓글

    제가 당신의 여보가 되어 영화로도 나온 책 한 권 얘길
    들었어요.아침에 혼자 듣고 있는데 괜시리 눈물이 나요.

  • 2. ㅇㅇ
    '24.8.18 7:43 AM (39.7.xxx.148) - 삭제된댓글

    할머님들 문해봉사 한 적이 있어요
    그 어떤 시보다 할머님들의 한문장이 눈물겨워요
    배우지 못하고 일만 하셨던 고단한 삶을 살아가셨던 그 분들이
    이제라도 배우는 기쁨으로 삶이 풍요로워지시면 좋겠네요

  • 3. ㅇㅇ
    '24.8.18 7:48 AM (59.18.xxx.92)

    가슴이 먹먹해지고 슬펐어요.
    많이 힘들었던 기억을 다시 가지고 오네요.

  • 4. ...
    '24.8.18 8:24 AM (223.62.xxx.172)

    아... ㅠ

  • 5. 원글님
    '24.8.18 8:28 AM (39.118.xxx.243)

    이 아침에 마음이 아프네요.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게...
    잘 읽었습니다.

  • 6. 읽어보고싶어요
    '24.8.18 9:27 AM (180.228.xxx.213)

    글이 너무 맘에 찡하네요

  • 7. ㄴㄴㄴ
    '24.8.18 9:59 AM (222.100.xxx.51)

    저는 영화로도 너무 좋았는데
    책으로 읽으면 더 좋을것 같아요
    원글님 얘기도 감사해요

  • 8. 아까워서.ㅡ
    '24.8.18 10:43 AM (119.195.xxx.115)

    별 두껍지 않은 책을...
    마지막 장으로 가는 게..아까워서..
    조금씩 천천히 읽었던 기억이...

  • 9. 예전에
    '24.8.18 11:14 AM (211.211.xxx.168)

    이게 뭐야! 이해 못하고 영화 봤는데 이 글 보니 확연히 느낌이 오네요,
    유튜브에 그때 시대적 배경과 감정선과 법을 가지고 분석한 영상도 덕분에 한번 찾아 봤습니다.

  • 10. 명작
    '24.8.18 2:26 PM (118.235.xxx.120)

    진짜 명작인데 우리나라에서
    중년여성과 미성년 남자의 육체적 사랑에 초점을 두고
    홍보한게 너무 아쉬운 영화예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이트윈슬렛의 마지막 그 쓸쓸함이 너무 아려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 11. .....
    '24.8.18 3:54 PM (112.153.xxx.47)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뭔가 먹먹하기도 하구요.케이트윈슬렛 좋아하는배우라 더 오래 여운이~~ 많이 보시면 좋겠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16558 짜증나고 무기력하고 만사 귀찮은데 3 짜증 2024/08/26 1,505
1616557 영화 트위스터스 인생 최악의 영화예요 24 ........ 2024/08/26 5,175
1616556 월급도 못주는 삼부토건 근황.jpg 19 ㅎㄷㄷㄷ 2024/08/26 6,192
1616555 모임에서 저녁먹고 네명 중 세명이 배탈났어요 13 2024/08/26 4,056
1616554 무릎연골은 소모성이라 재생 안된다는데… 3 ㅡㅡ 2024/08/26 2,740
1616553 부산 사상~하단선 공사장 주변서 잇따른 땅꺼짐에 시민 불안 4 엑스포29표.. 2024/08/26 1,132
1616552 시판 장아찌 간장중 달지않은 제품추천해주세요 7 ... 2024/08/26 934
1616551 경기가 안좋긴 한것같은게 14 리알 2024/08/26 6,005
1616550 가스라이팅이 무언지 궁금하다면 1 .. 2024/08/26 1,798
1616549 소형냉동고 다용도실 수납장안에 설치해도 되나요? 1 음쓰 2024/08/26 519
1616548 친절하고 밝은사람이고 싶은데 주변에서 안도와줘요. 1 .. 2024/08/26 976
1616547 저는 프사 사진 올리는거 너무 좋아요 12 2024/08/26 3,782
1616546 고등1학년 여학생 용돈...씀씀이가 너무헤프고 경제관념이 없어요.. 26 .... 2024/08/26 4,140
1616545 후식으로 과일과 떡 먹고 반성 중.. 9 오늘 2024/08/26 1,678
1616544 8/26(월) 마감시황 나미옹 2024/08/26 437
1616543 남편이 현금 사용을 많이 하는데요 18 2024/08/26 6,003
1616542 1세대 실비는 해외의료비가 일부 나오네요. 4 주디 2024/08/26 1,594
1616541 쳇지피티에게 82쿡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23 ㅋㅋ 2024/08/26 5,884
1616540 방문진 이사 임명 집행정지 인용 해석... 3 지하철 2024/08/26 1,110
1616539 회사 경비로 뭐 먹는거에 진심인 직원 10 ** 2024/08/26 3,226
1616538 요즘 34평 몇인치 티비 사야 해요? 20 2024/08/26 3,069
1616537 펌) 노종면 의원 페북입니다 8 노종면의원 2024/08/26 1,905
1616536 성수기때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 가보니 8 2024/08/26 2,687
1616535 불안한 투자 36 머니 2024/08/26 4,144
1616534 말랑말랑하고 노란 옥수수요. 11 .. 2024/08/26 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