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한나 조회수 : 2,214
작성일 : 2024-08-18 07:10:52

 

 

내가 어제 책을 읽었는데 여보

 

남자와 여자가 매일 만나서 섹스를 하는데 어느날 남자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남자는 소년이야 매일 당신 생각만 하느라 책이 재미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

여자는 남자의 책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꺼낸 김에 책을 읽어줘

여자가 내일부터는 순서를 바꾸자고 말해 언제나 만나면 같이 씻고 섹스를 했는데

이제는 책을 읽어준 다음에 섹스를 하자고 해

그래서 남자는 매일 책을 가지고 여자를 만나러 가

한 책이 끝나면 다음 책을 읽어주는 거야

 

 

여자는 전차의 검표원이었는데 일을 너무 잘해서

승진이 돼 사무직이 된거지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 

 

남자와 여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어

남자는 15세였고 여자는 36세였지

 

 

8년의 시간이 흐르고 법학생이 된 남자는 법원에 재판을 방청하러 갔다가 전범으로

재판에 피고로 서게 된 여자를 다시 만나게 돼

 

전쟁중에 여자는 감시원으로 일하며 매달 10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내서 죽이는 일을 했는데 조금의 죄책감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람들을 분노하게 해

 

그 일은 다른 여섯명의 감시원과 같이 했는데

그 여섯명의 감시원들은 변호사와 의논해서 이 여자가 책임자였고

모든 걸 이 여자가 결정했다고

뒤집어 씌우는데 사실 이 여자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어

 

그 서류의 사인이 자기 것이 아니고 자신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는 말을 법정에서

하면 책임자라는 무거운 벌을 피할 수 있는데 여자는 글을 못 쓴다는 말을 하는 것 보다

죄를 뒤집어쓰는 쪽을 택해 그런데 여보 당신 어머니 말이야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을 때였어. 주차하기가 힘들어서 어머니 혼자 올라가시라고

하고 주차를 하고 내가 올라갔을 때 병원 접수대에 어머니가 우두커니 서 계셨어

 

접수하는데 어머니 이름을 적으라고 한 거야

병원에서 매번 그래

 

어떤 때는 본인의 서명이 필요하다며 보호자가 있어도 직접 적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

어머니는 글을 쓸 줄 모르시잖아

그 날도 어머니는 종이 앞에 볼펜을 쥐고 우두커니

서 계시는 거야 

 

정말 마음이 아팠어. 나는 어머니가 그 접수대 앞에 앉아 있는 직원들과 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알아서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말을 했어. 어머니 이렇게 휘리릭 쓰세요.

사인하듯이 둥그렇게 쓰세요. 라고

 

 

어머니가 갑자기 아주 큰 목소리로 뭘 둥그렇게 써. 이름을 쓰면 되지. 라고 하셨어

호통치시는 거야. 내 말이 잘못된 것 처럼. 나는 가만히 있었어.

 

 

어머니가 볼펜에 든 손에 다시 힘을 주며 펜을 드셨어.

 

 

나는 그 날 알았어. 어머니가 가끔 성공적으로 어머니 이름 세 글자를 쓰기도 하셨거든.

나는 어머니가 어머니 이름 세 글자는 외우셨구나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글자를 아시는게 아니었어. ㅅ을 쓰고 ㅓ 를 쓰는 방식이 아니라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그림처럼 외우고 계셨는데 그 날은 어머니의 그 그림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거야.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어.

 

 

엄마는 겨우 가운데 이름 한 글자를 쓰셨어. 그림 그리듯이. 나는 엄마를 지켜보다가

앞뒤로 어머니의 이름 석자를 채워서 그 종이를 접수처에 냈어. 어머니같이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그게 안 되는 거야. 배울 시기를 놓쳐버린 후에는 정말

안되는 거야. 내가 몇번을 가르쳐드리려고 했지만 지금의 어머니는 몸이 너무 아프고

결국 포기하게 되었지.

 

 

그럼에도 엄마는 존엄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런 힘든 순간을 수없이 마주해야하는 거야.

모른다는 건 그런거야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IP : 211.203.xxx.17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디어 한나
    '24.8.18 7:43 AM (116.43.xxx.47) - 삭제된댓글

    제가 당신의 여보가 되어 영화로도 나온 책 한 권 얘길
    들었어요.아침에 혼자 듣고 있는데 괜시리 눈물이 나요.

  • 2. ㅇㅇ
    '24.8.18 7:43 AM (39.7.xxx.148) - 삭제된댓글

    할머님들 문해봉사 한 적이 있어요
    그 어떤 시보다 할머님들의 한문장이 눈물겨워요
    배우지 못하고 일만 하셨던 고단한 삶을 살아가셨던 그 분들이
    이제라도 배우는 기쁨으로 삶이 풍요로워지시면 좋겠네요

  • 3. ㅇㅇ
    '24.8.18 7:48 AM (59.18.xxx.92)

    가슴이 먹먹해지고 슬펐어요.
    많이 힘들었던 기억을 다시 가지고 오네요.

  • 4. ...
    '24.8.18 8:24 AM (223.62.xxx.172)

    아... ㅠ

  • 5. 원글님
    '24.8.18 8:28 AM (39.118.xxx.243)

    이 아침에 마음이 아프네요.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게...
    잘 읽었습니다.

  • 6. 읽어보고싶어요
    '24.8.18 9:27 AM (180.228.xxx.213)

    글이 너무 맘에 찡하네요

  • 7. ㄴㄴㄴ
    '24.8.18 9:59 AM (222.100.xxx.51)

    저는 영화로도 너무 좋았는데
    책으로 읽으면 더 좋을것 같아요
    원글님 얘기도 감사해요

  • 8. 아까워서.ㅡ
    '24.8.18 10:43 AM (119.195.xxx.115)

    별 두껍지 않은 책을...
    마지막 장으로 가는 게..아까워서..
    조금씩 천천히 읽었던 기억이...

  • 9. 예전에
    '24.8.18 11:14 AM (211.211.xxx.168)

    이게 뭐야! 이해 못하고 영화 봤는데 이 글 보니 확연히 느낌이 오네요,
    유튜브에 그때 시대적 배경과 감정선과 법을 가지고 분석한 영상도 덕분에 한번 찾아 봤습니다.

  • 10. 명작
    '24.8.18 2:26 PM (118.235.xxx.120)

    진짜 명작인데 우리나라에서
    중년여성과 미성년 남자의 육체적 사랑에 초점을 두고
    홍보한게 너무 아쉬운 영화예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이트윈슬렛의 마지막 그 쓸쓸함이 너무 아려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 11. .....
    '24.8.18 3:54 PM (112.153.xxx.47)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뭔가 먹먹하기도 하구요.케이트윈슬렛 좋아하는배우라 더 오래 여운이~~ 많이 보시면 좋겠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15823 논밭에서 환풍기소리(?)가 나는데 뭘까요? 8 24시간 2024/08/18 2,768
1615822 잘사는거... 1 life 2024/08/18 2,202
1615821 간단하지만 살짝 이국적인 비빔국수 7 맨날연구 2024/08/18 4,144
1615820 간만에 82 들어왔다 6 2024/08/18 1,732
1615819 안나에서 수지 남편 10 굿파트너 2024/08/18 5,827
1615818 요즘 시판 떡볶이도 참 맛있네요 18 ..... 2024/08/18 5,296
1615817 삼성전자 방사능 피폭 12 2024/08/18 5,462
1615816 영화보구 왔는데 4 2024/08/18 1,739
1615815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는데 28도 2 선선 2024/08/18 3,308
1615814 와 나이들수록 지 아빠랑 똑같아지네요 11 ... 2024/08/18 5,456
1615813 김민희,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최우수연기상 14 잘사는군요 2024/08/18 11,283
1615812 한 잔 했어요 9 2024/08/18 2,225
1615811 보름달 6 가을 2024/08/18 1,568
1615810 댓글로 줄줄이 링크 다는거 짜증나지 않나요? 13 .. 2024/08/18 1,853
1615809 완경했는데 배란기 증상 1 1111 2024/08/18 2,622
1615808 그알 보니, 운동하는 사람에 대해서 24 2024/08/18 23,904
1615807 홍준표·오세훈등 국힘시도지사,광복회장 사퇴 요구 19 .. 2024/08/17 3,129
1615806 오래된 외장 하드 먹통이네요 6 소미 2024/08/17 1,751
1615805 그알...기저귀 막 뗀 애들을 태권도장에... 49 어휴 2024/08/17 17,385
1615804 결혼부심 11 ㅇㅇ 2024/08/17 4,189
1615803 주전자와 파김치 반백년전 기억이네요 7 기억 2024/08/17 1,719
1615802 나솔 돌싱 봤는데.... 13 ㅇㅇ 2024/08/17 7,400
1615801 그알 보고 있는데 관찰한 교범도 뺐어야 되지 않나요? 12 ... 2024/08/17 4,774
1615800 청문회 떠들썩한 김모검사. 5 ... 2024/08/17 2,516
1615799 혼자 살면 안 외롭나요 20 ㅇㅇ 2024/08/17 6,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