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마티즈를 떠나 보내며

마티즈 조회수 : 2,251
작성일 : 2024-08-12 19:31:53

 

나는 서른살에 첫 차를 가졌다. 오렌지색 마티즈였다.

 

집집마다 다니며 수업하는 일이었는데 비가 오는 날 짐을 든 채 비를 쫄딱 맞고 집에 왔더니

엄마가 600만원을 주고 중고 마티즈를 사 주셨다.

 

 

그 때 친구들 중 차가 있는 건 나뿐이어서 모임에 가면 친구들을 태우고 운전하는게 무서워

벌벌 떨면서 부산시내를 다녔다. 작고 예쁜 마티즈는 나의 좋은 친구였다. 나는 그 차에

좋아하는 테이프를 잔뜩 넣고 다니며 일을 마치고 나면 혼자 차에 앉아 김광석의 노래같은 것을

들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날이 좋거나 좋지 않아도 차가 생기고 나서는 늘 좋았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엄마가 많이 아프고 나서부터는 주말에는 엄마를 태우고 바람을

쐬러 다녔다. 나이가 들고 약해진 엄마는 어느새 나에게 의지했다. 나는 엄마를 지켜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그 다음부터는 아이를 태우고 다녔다

 

마티즈는 여전히 좋은 친구였지만 어느 비오는 날 마티즈를 타고 나갔는데 마티즈는 도로에서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더니 멈춰버렸다.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은

괜찮다며 마티즈를 수리해주었는데 그 이후로 마티즈는 비가 오기만 하면 길거리에서

그 부릉부릉하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서버렸다.

 

 

나는 무서워서 더이상 마티즈를 탈 수가 

없었다. 마티즈의 나이가 열다섯살이 넘어 있었다

 

 

마티즈가 길에서 서너번 서고 난 이후로는 무서워서 마티즈를 못 타겠다고 했다니 남편이 자신의

12년된 소나타를 나에게 주고 자신이 마티즈를 타고 다녔다. 이래도 똥차고 저래도 똥차였지만 그래도 소나타 쪽이 좀 나았다.

 

 

아침에 같은 승강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모두다 중형차나 외제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우리 부부는 낡은 대로 낡은 마티즈와 소나타를 타고 출근했다. 남편은 그런 걸 창피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때 우리 부부는 막 자영업자가 된 상황이어서 뭐든지 아껴야 했다.

 

남편은 이 마티즈를 앞으로 십년도 더 탈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속으로 나보고 타라고 안하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티즈는 정말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걸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했다 

평생 마티즈만 타는 운명이라니. 탄식했다

 

 

남편이 몰고 다닐 때도 마티즈는 길에서 몇번이고 섰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마티즈 고쳐 쓰는게 더 돈 드는게 아니냐고 하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남편의 12년된 소나타를 타고 다녔는데 놀랍게도 도로에 나가면 소나타는 그렇게

추월당하지 않았다. 나는 지난 15년간 내가 도로에서 수도 없이 추월당했던 것을 기억했다.

 

비가 와도 소나타는 길에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가

우리집도 이제 정말 차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정말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평생 보고 싶었던 은사님과 연락이 되어 그 때 동창들과 함께 선생님을

36년만에 뵙게 되었다. 아. 36년만에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데 성공하지 못한 건 둘째치고라도

2005년형 소나타라니. 라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도 죄송한데 

이렇게 없어 보이는 차를 타고 나타나야 하다니 선생님보기에 너무 부끄러워.

 

오빠한테 차를 하루만 빌려달라고 할까. 성공한 제자처럼 보이고 싶어. 라고 남편에게

말했는데 남편은 조용히 하고 어서 가소. 라며 내 말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날 저녁 크게 성공하지 못한 제자는 2005년형 옆구리 크게 긁힌 소나타를 타고 36년만에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다행히 주차장과 약속장소는 떨어져 있어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제자는

볼품없는 차를 보이지 않고 무사히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왔다. 평생 그리웠던 선생님은

여전히 좋은 분이셨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제각각 조금씩 상처를 가진 채 나이든 친구들을

보는 일도 좋았다. 별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마티즈를 떠나보내며 1부 끝

IP : 220.119.xxx.23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4.8.12 7:35 PM (118.32.xxx.104)

    은근 재밌다.

  • 2. ssunny
    '24.8.12 7:38 PM (14.32.xxx.34)

    저도 15년 된 차
    중고차 값 알아볼까 갔다가
    갑자기 팔려서 보내는데
    눈물이 찔끔 나더라구요
    남편이 놀리고 ㅠㅠ
    이어진 글 기다릴게요

  • 3. 귀부인
    '24.8.12 7:43 PM (118.220.xxx.184)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다음편을 기다리며

  • 4. 으싸쌰
    '24.8.12 8:03 PM (218.55.xxx.109)

    나의 마티즈는 13살에 길어서 퍼져 그 길로 잘 보내줬다
    어쩌면 심폐소생술을 받고 몽골이나 남미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쉽게 포기했나 싶지만
    그 뒤로 나는 남편의 그랜저를 타고 다닐 수 있었다

  • 5. 1212
    '24.8.12 8:22 PM (124.80.xxx.38)

    글을 너무 잘쓰세요 ^^ 계속 써주세요!!

  • 6. ㅇㅇ
    '24.8.12 8:23 PM (125.130.xxx.146)

    소나타 오빠~
    두 살 어린 아반테 여기 있어요
    저는 별로 안부끄러운데요
    아.. 얼마전에 에어컨 고장나서 60만 들었을 때는
    버릴까 진심 고민했더래지요.
    지금은 다시 잘 데리고 다녀요~~

  • 7. ㅇㄴㄴㅇ
    '24.8.12 8:46 PM (58.29.xxx.194)

    재미지네요. 저는 2000년 면허 따고 사망 직전 프라이드 1년 타다가 사망직전 티코 조금 타다가 15년된 라노스몇년타다가 지금 포르테 15년째타고 있습니당. 차는 그저 이동수단일 뿐이니까요~~~~ 저도 부산출신이라 험하디험한 부산바닥을 온리 수동으로다가 몰고 돌아댕김 ㅋㅋ

  • 8. 소나타를
    '24.8.12 8:57 PM (210.98.xxx.105)

    주고 새 차를 사서 남편분이 타고 다녔다라고
    예상했는데 ㅋㅋㅋ
    너무 재밌네요~~

  • 9. ...
    '24.8.12 9:18 PM (39.7.xxx.144)

    와. 글 너무 잘 쓰시네요. 2편 기다립니다. :)

  • 10.
    '24.8.12 9:32 PM (1.236.xxx.93)

    마티즈~ 길에 자꾸 서서 어쩌나요ㅜㅜ
    남편의 생명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2편도 부탁합니다

  • 11.
    '24.8.12 9:34 PM (122.36.xxx.160)

    그 심정 이해됩니다.특히 아끼고 아끼며 반려인처럼 인생의 한시절을 함께 한 차라서 떠나 보내기가 힘드셨을거예요.
    이렇게 글로라도 마티즈의 기록을 남기고 싶으신거죠.
    저도 장롱면허 탈피하며 10살 넘은 중고 싼타페를 사서 5년간 끌고 다녔는데 폐차 권고장이 날라와도 무시하고 1년을 더 타고 다니다가 도로에서 엔진이 과열되는 증상에 겁이 나서 폐차시켰어요.
    보낼때 얼마나 안쓰럽던지 ᆢ ㅠㅠ.
    혼자서 이별인사를 나누고 기념샷도 찍어뒀어요.

  • 12. 2부
    '24.8.12 9:37 PM (220.85.xxx.165)

    기다려본다. 꼭 돌아오기다.

  • 13. 스며든다
    '24.8.12 10:03 PM (42.35.xxx.239)

    긴글인데도 순식간에 읽힌다
    재미있다는 뜻이다
    예고하는 바람에 더 기다려진다

    갑자기 옛날 노래가사가 생각 난다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마~~~

  • 14. Amu
    '24.8.12 11:14 PM (211.198.xxx.141) - 삭제된댓글

    저도 첫차가 마티즈였는데 없는 형편에 남편이 140만원주고 사왔더라구요 에어콘이 안되서 여름엔 애들 얼음팩 하나씩 안겨주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네요 비안맞고 다닐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쥐색 구형 마티즈ㅋㅋ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13560 양심고백합니다 저 어릴때 젊을때 되게 안씻었어요 11 .. 2024/08/13 3,044
1613559 옛날 옛적 오래된 휴대폰 어떻게 처리할까요? 4 .... 2024/08/13 1,659
1613558 결혼20년차 이사7번째 4 이사 2024/08/13 1,657
1613557 갑상선 전절제 하면요… 5 ㅠㅠ 2024/08/13 1,117
1613556 헬스 pt 저녁 10시 괜찮을까요? 6 .. 2024/08/13 1,274
1613555 “친일 한국 정부 덕에”…일 자민당, 사도광산 등재 만족감 1 숭일정부!!.. 2024/08/13 459
1613554 여자들 사교모임 16 ,,,,,,.. 2024/08/13 3,956
1613553 파상풍접종후 1 . 2024/08/13 669
1613552 여자 기혼자들의 불만이 많은 이유 16 불만 2024/08/13 4,201
1613551 댓글 30개 넘어가면 시작되는 저주 8 123 2024/08/13 1,475
1613550 최순실 딸은 왜 돈이 없을까요?? 21 00 2024/08/13 5,580
1613549 유어아너의 김명민 아들 7 누굴까 2024/08/13 3,064
1613548 학원 옮기려는데 입이 안떨어져요. 8 .. 2024/08/13 1,522
1613547 김보름 임효준 이해인 그리고 악의축 배드민턴 협회 5 ㅇㅇ 2024/08/13 1,732
1613546 오늘밤 kbs 815특집 다큐 창 보셔요 10 사비오 2024/08/13 1,756
1613545 고양이 화장실 문의합니다. 14 나비 2024/08/13 927
1613544 '마약수사 외압 의혹' 경무관의 거듭된 문자 "제발 .. 12 2024/08/13 1,753
1613543 초긍정마인드인지 가식인지 ........ 2024/08/13 854
1613542 8/13(화) 오늘의 종목 나미옹 2024/08/13 432
1613541 귀리라떼 아이스 맛있어요 4 굿모닝 2024/08/13 1,315
1613540 엊그제 카톡쇼핑 더*식 만두요 7 .. 2024/08/13 1,429
1613539 우연일까 보신 분 계신가요 6 드라마 2024/08/13 1,599
1613538 두바이 여행 최근에 가보신분 계세요? 10 . . .... 2024/08/13 1,731
1613537 가슴두근거림은 갱년기증상인가요? 17 빈혈 2024/08/13 2,400
1613536 쿠쿠 인스턴트팟 5.7l 사이즈 어떤가요? ㅇㅇ 2024/08/13 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