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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금융투자소득세를 신설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3년 반이 흘렀습니다. 한 번의 유예를 거쳐 다시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시행/폐지 논쟁이 뜨겁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바로, 우리 주식시장이 현시점에 과세할만한 여건과 체력을 갖추었느냐, 지난 3년 반 동안 정부와 국회가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충실히 했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세정책에 있어서는 ‘누가 세금을 내느냐’ 뿐 아니라 ‘전체 시장에 대한 세금 효과’ 역시 중요합니다. 부자감세 불가론만 고집하게 되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1. 일반투자자들이 장기적 수익을 내기 매우 어려운 시장 여건
아래 그래프가 보여주듯, 한국 주식시장은 비용 차감 후 이익(ROE-COE)이 여전히 마이너스인 시장입니다. 미국 시장은 비용 차감 후 이익률이 12.8%인 반면, 대한민국 시장은 -7.1%입니다.
다시 말해, 항상 불리한 여건에서 수익을 내려다보니 특정 해에 돈을 벌었어도 다음 해에는 다 잃을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거래시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익률이 높은 시장에서 매매이익에 매기는 금투세는 상당 부분 수용될 수 있지만, 우리 시장과 같이 'ROE-COE'가 마이너스인 불리하고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서 새로운 조세를 도입하는 것은 그 의미와 영향이 크게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렇기 때문에 순서가 틀렸습니다. 금투세 시행보다 상법 개정이 먼저입니다.
우리 시장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마이너스 이익 시장인 이유는 간명합니다. 재벌 대주주들이 개인투자자들의 등골을 빼서 자기 배를 불리는 파렴치한 행태를 방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LG화학 물적분할로 개미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본 이후 ‘주주보호제도’를 손봐야 할 필요성이 컸지만, 국회에선 늘 뒷전이었습니다.
직전 21대 국회에서 카카오뱅크 대표 출신 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모든 주주들에게 확대해서 대주주를 위해 다수 주주의 희생을 강요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도록 한 ‘상법 개정안(2114916)’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이미 같은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다수 재발의되었지만(2200144 등), 아직까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노란봉투법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거부권을 감수하며 강행처리할 정도의 우선순위를 가졌듯이,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안은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1200만 명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란봉투법만큼이나 우선에 두고 추진했어야 할 법입니다.
국회가 이렇게 다른 일에만 열을 올리는 와중에, 두산그룹은 두산밥캣과 로보틱스를 합병하며 일반투자자들에게 손실을 강요하고 지배주주의 배를 불리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장 떠나는 건 지능순”이라는 자조적 농담이 번지고 있는 동안, 국회도 정부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표를 의식한 금투세 논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3.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
이 문제를 ‘조세정의’의 프레임으로 끌고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말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습니까?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예를 들어보면, 1주택자의 경우 매매가 12억 이하의 주택은 수억원의 양도차익이 나도 과세하지 않습니다. 5억에 집을 사서 12억에 집을 팔면 7억 원의 양도소득이 발생하지만 한 푼도 세금을 내지 않는 건 왜일까요?
정책적 필요성과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조세정의는 조정되거나 양보되기도 합니다.
‘비용 차감 후 이익’이 12%가 넘는 미국 주식시장에서 금투세를 매기니, 꾸준한 이익을 내기 어려운 -7.1% 짜리 우리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금투세를 매겨야 한다?
각각의 시장이 가지는 여건과 담세체력을 고려하지 않는 조세정의론은 우리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발생시켜 평범한 국민들의 가계경제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2021년 종부세 국면을 기억합니다. 당시 미친듯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공시지가 현실화 로드맵으로 인해 평범한 1주택자에게까지 종부세가 수백/수천만 원씩 부과되어 국민들이 대출을 받아 보유세를 내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당 내에서 과감한 종부세 완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과 부자감세는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맞부딪혀 의원총회에서 이례적인 전자표결까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우리 당이 불측의 세금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부자’로 단정하지 않고 더 공감하며 귀 기울였다면, 우리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4. 결론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제안되고 있는 자본시장 개혁방안이 우선적으로 처리되고 이를 통해 우리 주식시장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다른 OECD 시장만큼 개선되지 않는 한 금투세 도입을 미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부동산에 쏠려 있는 우리 국민들의 자산구성 비중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옮기기 위한 정책수립이 필요합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운용방식 개혁, 주식시장 구조개혁, 주식시장 세제 정비, 선진지수 편입, 재벌개혁 등 총체적인 노력과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선행된다면, 금투세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도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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