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타인의 친절에 힘입어 살아요.

... 조회수 : 2,864
작성일 : 2024-08-06 13:00:20

남미 여행을 몇 번 했는데, 혼자 간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어요. 

 

호르헤 차베스 공항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다른 비행기를 타기 전에 좀 어슬렁 거리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어떤 남성분이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걸어왔어요. 너는 비행기도 탈 수 있는 강아지구나. 우리 개는 너무 커서 비행기에 태울 생각도 못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는데, 이 강아지가 갑자기 제 발목을 물었어요. 공항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너무 당황에서 어버버 하고 있는데, 이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다급히 뭐라 하는데, 전 여행용 스페인어만 간신히 하는 사람이어서 영어로 말하니 이 아저씨는 답답하다는듯이 또 급하게 말하다가 저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고 그냥 그대로 가버리더라고요. 

 

주위에서 상황을 보던 사람들도 놀란 눈이지만 어찌 하지는 않고 있는데, 젊은 청년이 다가왔어요. 저에게 괜찮냐 묻더니 같이 물린 곳을 확인하고, -다행히 피가 살짝 나는 정도로 얕게 물렸어요. - 그 아저씨에게 뛰어가 상황이 이러저러 하다고 얘기하더군요.  아저씨와 청년이 저에게 함께 와서 그 이후로는 그 청년이 통역을 해주었어요. 저는 생각도 못했는데, 청년이 아저씨에게 광견병 주사 확인서를 보여 달라고 하고, 아저씨는 모든 서류를 보여주며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괜찮으면 자기 비행기 수속하는 줄에서 얘기할 수 있냐고 몹시 급박한 상황이라고 했어요. 

 

사정을 알고보니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강아지를 맡길 사람도 없고 그래서 공항에 데려올 수 밖에 없었다고. 지금 비행기를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해서 그러면 어머니 임종을 놓칠 수도 있어서 조금 전에 제가 못알아 듣는 것 같은데도 자기말만 하고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괜찮다고 조심히 잘 가시라고 했어요. 

그리고 괜찮다는 청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서 모닝 세트 사주면서 정말 고맙다고 했어요. 

이 캐나다 청년이 아니었으면 저는 여행 기간 내내 불안했을테고, 상황이 급박한 사람의 사정도 모른 채, 나쁜 x 하면서 욕을 했을지도 몰라요. 

 

이것은 제게 조금 큰 일이었지만 살면서 얼마나 많은 친절을 받고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결혼 전에는 거의 혼자 여행을 다녔는데,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한국인에게도 또 외국인에게도 끊임없이 친절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큰 두려움 없이 여행을 잘 다녔고, 지금 해외에 살면서도 큰 무리가 없어요. 

학생 때 부족하게 여행할 때, 이런 분들이 맥주 한 잔 사서 툭툭 건내셨어요. 그래서 저와 남편도 같이 여행하다가 돈 아끼면서 여행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맥주 한 잔 씩 사서 건내곤 해요. 

 

https://www.82cook.com/entiz/read.php?num=3863436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저희 길 건너 앞집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저와 남편 둘 다 목공이 취미라 웬만한 것들은 둘이 뚝딱뚝딱 만들며 살아요. 지금 집에 이사와서 이것저것 수리하면서 노는데, 앞집 할아버지 보시기에 귀여웠나 봐요. 이것으로 하면 훨씬 쉽다고 저희가 갖고 있지 않은 비싼 공구들 빌려주시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연세 많은 두 분만 적적하게 지내셨는데,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어요. 자녀분들이 자주 오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저희가 장도 봐 드리고, 비상용으로 앞집 열쇠도 가지고 있었네요. 할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되면 경찰은 할아버지를 못찾아도 남편과 저 그리고 우리 개가 할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왔어요. 

 

위의 글의 원글님이 댓글에 이렇게 쓰셨어요. 

"저도 연세드신 부모님이 멀리 계셔서.. 신경이 쓰이거든요"

저 이 마음 정말 잘 알아요. 멀리 계시는 엄마에게는 자식인 제가 못하는 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러니 저는 제가 가까이 사시는 어른들에게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요. 막연하지만 이런 믿음 비슷한 것이 멀리 있는 자식에게는 그나마 위로가 되요. 

 

그리고 이 공간에서도 친절함을 놓치지 않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IP : 108.20.xxx.186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4.8.6 1:14 PM (218.147.xxx.59)

    다시 한번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 2.
    '24.8.6 1:37 PM (58.239.xxx.59)

    원글님이 좋으신분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난것같아요
    캐나다 청년은 제가다 고맙네요

  • 3. 노래
    '24.8.6 1:46 PM (118.220.xxx.171)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도와 준 청년도 원글도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많네요.

  • 4. ...
    '24.8.6 1:50 PM (108.20.xxx.186)

    218님 따뜻한 댓글 남겨주셔서 저 역시 정말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 건강히 보내세요.

    58님, 살면서 만난 여러 친절하고 고마운 분들에게 크고 작은 것들 많이 배웠어요. 배운 것은 아끼지 말고 고대로 써야지 하고 다시 마음 먹어 봅니다. 저 정말 그 캐나다 청년 아니었으면 괜한 오해로 안좋은 마음 오래 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좋은 사람 만난 것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5. ...
    '24.8.6 1:56 PM (108.20.xxx.186)

    118님 댓글 보니 노희경의 옛날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도 생각나네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은 모두 좋은 면도 있을테고, 나쁜 면도 있을텐데 좋은 면을 더 많이 드러내고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 6. 저도
    '24.8.6 2:05 PM (14.42.xxx.224)

    저도 처음보는분들에게 고마운경험을 많이 받았어요 스쳐지나가는 그 짧은시간이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원글님 남미 여행을 혼자 해보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혼여 여러번 해보았지만 남미는 너무어러운곳이어서 아직 생각만합니다

  • 7. ...
    '24.8.6 2:17 PM (108.20.xxx.186)

    14님 맞아요. 그 짧은 시간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어요. 그리고 그 좋은 감정은 꺼내려 애쓰지 않아도 불쑥불쑥 나타나 또 다른 기쁨을 주네요.

    남미는 여행 난이도도 위험도도 조금 높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남편과 함께 간 나라를 저혼자 다시 갔어요. 여행 가서 같이 갔던 곳도 가고, 또 새로운 곳을 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긴장도도 낮아지고 이미 본 것에도 새로운 느낌이 더해져서 좋았어요. 혼자 간 곳은 페루였는데, 페루는 혼자 여행하기에도 좋은 곳이었어요. 14님 가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 8.
    '24.8.6 2:39 PM (49.163.xxx.3)

    원글님 참 좋은분
    친구하고픈 분이네요.
    저도 오지랖이 넓어서 그냥 지나치지못해요.
    타인의 작은 선의가 살아갈힘을 주죠.

  • 9. ...
    '24.8.6 2:55 PM (123.215.xxx.145)

    정말 동화같은 한편의 글이에요.
    읽으면서 행복이란 감정이 들게 하는..
    저도 원글님같이 살고 싶네요.

  • 10. ...
    '24.8.6 3:04 PM (108.20.xxx.186)

    49님 말씀 '타인의 작은 선의가 살아갈힘을 주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동양인이 거의 없는 이 동네에 이사왔을 때, 당시 6살이었던 지금은 틴에이저가 된 르네아가 만나서 반갑다고 꼭 안아줬어요. 그 어린 아이의 친절함만으로도 제 안에 긴장감이 싸악 녹았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22님 제가 글을 좀 지루하게 쓰는데, 읽으면서 행복하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함께 또 좋습니다.

  • 11. ..
    '24.8.6 3:07 PM (49.130.xxx.118)

    맞아요 우리가 다 이렇게 약한 존재라 서로 돕고 사는건데 가끔 왜 그렇게 이익을 따지고 손해 안보려고 하는 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서로 돕다보면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건데 말이죠

  • 12.
    '24.8.6 3:09 PM (61.82.xxx.210)

    정말 마음에 와닿는 글이네요
    맞아요
    타인의 친절이 없다면 도대체 우린 어떻게 살까요?
    그 눈에 보이지않는 서로 주고받는 친절로 삶이 돌아가죠
    저도 자유여행 가서
    현지인들의 과분한 도움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럴때의 가슴찡함..말로 다못하죠

  • 13. ...
    '24.8.6 3:22 PM (108.20.xxx.186)

    49님, 61님 말씀 정말 좋아요. 비슷한 생각 많이 해요.

    약한 존재여서 서로를 돕고 살고
    타인의 친절이 없다면 도대체 우린 어떻게 살까요

    친절과 도움을 받은 기억이 나쁜 기억도 희석시키는 경험도 많이 했어요.

    두 분의 좋은 말씀으로 저는 내일 또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14. ..
    '24.8.6 4:41 PM (223.33.xxx.210)

    원글님도 마음따뜻하고 좋은 분일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거 아닐까요?^^
    저도 더 친절베풀며 살겠습니다.

  • 15. ㅇㅇ
    '24.8.6 5:41 PM (219.250.xxx.211)

    따뜻한 글에 눈물이 나네요 ㅠ
    정말 그래요 그런 작은 선의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종종 그것을 너무 쉽게 놓치고 급히 달려가지요
    원글님 글을 통해서 다시금 조금 천천히 걷더라도 그 따뜻함을 챙겨 가자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16. 저도
    '24.8.6 8:38 PM (182.210.xxx.178)

    타인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어요.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고맙다고 혼자 감사해요.
    저도 댓가가 없더라도 친절을 베풀며 살겠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40321 여러분은 인생에서 뭐가 제일 억울하세요? 15 여러분 2024/10/20 3,140
1640320 일본은 왜 20년간 집값이 제자리에요? 15 궁금 2024/10/20 3,315
1640319 Snl 주현영역을 김아영이 다 갖고갔군요 에고 7 ㅇㅇㅇ 2024/10/20 4,318
1640318 한강 작가처럼 조용한 성격 친구하고 싶어요 16 친구 2024/10/20 3,518
1640317 공무직 정년이 65세로 늘어나네요 37 2024/10/20 15,372
1640316 월경 전 식욕터지는 건 3 0011 2024/10/20 991
1640315 소년이 온다 는 어떤 점이 읽기 힘들었단 말인가요? 12 한강 2024/10/20 3,448
1640314 김희애는 나이들수록 좋네요..재밌어요 8 777 2024/10/20 3,399
1640313 추수한 논 3 궁금해요 2024/10/20 934
1640312 마늘햄 구워서 먹어야 하나요? 4 햄구이 2024/10/20 703
1640311 일본유투버가 서대문형무소 이야기 고맙네요. 2 일제 2024/10/20 796
1640310 우엉채는 원래 잘쉬나요 9 .. 2024/10/20 1,104
1640309 PT 비용 8 DC 2024/10/20 1,644
1640308 대기업 희망퇴직에 서민생활은 폭폭한데 아파트값만 폭등하는 기현상.. 21 .... 2024/10/20 4,628
1640307 여러분들도 귤 드시면 신호가 오는편인가요.??? 8 .... 2024/10/20 1,398
1640306 아들한테 요리 교육부터 제대로 시켜요 66 ㅇㅇ 2024/10/20 5,685
1640305 사이판 6박7일.. 오바일까요? 7 ... 2024/10/20 1,794
1640304 아파트사야할까요? 10 40초 독신.. 2024/10/20 2,501
1640303 인천에서 살기 좋은 곳 알려주세요... ( 송도. 청라 제외) .. 40 인천에 2024/10/20 2,888
1640302 유럽. 미국. 캐나다 집값은 어떤가요? 9 궁금 2024/10/20 1,318
1640301 사장님이 젠틀한데 무서워요 2 123 2024/10/20 2,311
1640300 대한민국 구조조정.jpg (기업들) 12 ㅇㅇ 2024/10/20 3,698
1640299 아들이 엄마 산부인과 모시고 가는 댁 있으실까요? 17 장녀 2024/10/20 2,989
1640298 패딩세탁 건조기 돌릴 때 세탁망에 넣은 채로 돌리나요? 7 ㅇㅇ 2024/10/20 1,128
1640297 뒷북인데 스포! 밤과 낮 바뀐 드라마 보신 분들 8 둥둥등 2024/10/20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