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어떤 분께서 드라마 느낌이야기를 하셔서, 댓글을 달려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글 올려봅니다.
마흔 중반, 돌아보면 제 인생에 가장 황금기(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비유죠 크크)는 아마도 중학교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어떤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 중학교 2학년 친구들이 평생간다"고 했다더니, 돌이켜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지금의 베스트 프렌드를 중학교2학년에 만났거든요. 그리고 까진 친구들, 모범생들, 하이틴 로맨스 공급책 언니들, 공부에는 소질 없지만 웃긴 친구들, 부뚜막 고양이들과를 제외하곤 다양한 친구들과 3년을 재미나게 보냈고 그 추억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잘 살고 있는 마흔중반입니다..
매해 5월이면 체육대회가 있었고, 국민학교 어린이 티를 벗고, 처음으로 저희들끼리 자체 기획을 했어요. 당시 유명했던 가요를 선정하고, 3000~4000원짜리 언더우드 반티를 맞춰입고 여학생 감성을 담아 어른인 척 단체댄스(단어가 생각이 안나네요)를 했었어요.
교문 앞 문구점+구멍가게를 접목시킨 상점에서 스낵면 사와 쉬는시간에 뽀개서 먹고, 100원짜리 쿨피스 얼린거 가져와서 요즘처럼 더운 날에 퍼먹고, 등교 후 하교전까지는 절대 교문 밖을 나서면 안되는데 또 어딜가나 체육특기생 친구들이 있죠? 그런 친구들이 단체주문 받아서 교문을 넘고, 담벼락에서 뛰어 넘어가서 간식 사오고, 점심시간에는 또 컵라면 사와서 먹고, 교실에서 말뚝박기도 예사였고, 물론 치마 줄여입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죠. 저희때는 굽 높은 운동화랑 A형 단발머리가 유행이었는데 그 신발이랑 두발단속도 꽤 당했죠.
다락방의 꽃들, 할리퀸 책들은 당연히 공유의 대상이고 한 친구가 만화방에서 책 빌려오면 2~3명은 기본으로 같이 빌려봤죠. 저의 첫 만화책은 늘 푸른 이야기였고, 주드데브루, 주디스맥노트의 로맨스 소설을 수업시간에 읽으면서 중세시대 의상, 세계사, 지리등을 곁다리로 배우고, 그때는 책과 친구들을 통해 자체적으로 점진적으로 성교육을 했었지요. 선생님들도 알고 계시면서도 그냥 넘어가주셨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 알았어요.
선생님들도 참 좋으셨어요. 소위 치마바람차원에서 학교 찾아오시는 엄마는 학 년에 한 두분이나 계실까요? 오로지 학생과 선생님으로만 이루어진 장소, 가르침의 현장이 바로 학교였어요. 국민학교 시절에는 치마바람 강한 아줌마의 자녀들을 편애하셨고, 사춘기 애들 잡는다고 선생님들이 학대도 많았는데 중학교 선생님들은 성적 상관없이, 가정형편상관없이 저희들을 참 많이 귀엽고 예뻐해주셨던 것 같아요. 저는 예쁘지도 않았고, 공부도 중간이었고, 운동도 못했고, 진짜 평범한 여중생인데, 선생님들 특히 세계사, 국사, 가정선생님이 많이 예뻐해주신 기억이 나요. 단발머리 여드름가득한 사춘기 소녀들이었는데 한 명의 남자 선생님을 제외하곤 변태 선생님도 없으셨고, 세련되고 예쁜 30대 초반의 여자선생님들도 선망의 대상이었죠. 그래서 장래희망이 가정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어요. 물론 고등학교 진학 후 성적이 안되어서 포기했지만 학창시절에는 친구도 가장 소중하지만,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나뉘기도 한 다는 걸 여기서 깨닫게 되죠.
선생님들이 주시는 힘은 정말 큽니다.
친구들의 금반지 압수하시고 졸업할때 돌려주신다더니 다음 해 전근가신 얌체같던 미술 선생님도 기억나고, 화려했던 음악 선생님, 전혀 예술 안하게 생기신 사람 좋았던 미술 선생님 그립고요. 매일 피구만 시키셨지만 그래도 저희는 체육선생님 좋았어요!
여기서 베스트 프랜드 등장합니다.
그 친구는 노이즈를 좋아했고, 저는 서태지와 아이들,신승훈,김건모,REF,구본승,김원준,투투,룰라,김정민, 듀스,중에서 한 사람을 좋아했어요. 그 친구와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와 노래 테이프는 어찌 설명할까요? 방학때는 못 만나니 하루가 멀다하고 통화했죠. "안녕하세요 저 xx친구인데 혹시 xx이 있어요?"라고 시작했던 레파토리들
언제부터인가 " xx친구인데요~"만 해도 전화 바꿔주셨어요 크크크
이승연의 세련됨과 신애라의 귀여움이 공존했던 사랑을 그대 품안에가 방영되면 자기들끼리 차인표 마누라네 어쩌네~ 예슬인가?다슬인가? 마지막 승부에서 내숭이라고 미움받던 심은하는 M으로 인기가 올라갔고, 그 초록색 눈동자와 목소리 변조는 정말 획기적이었죠.
그리고 느낌! 오프닝의 아련한 영상속에 청초했던 우희진과 삼형제의 러브라인으로 제 가슴이 콩콩거리기도 했어요. 저는 김민종과 이정재사이에서 혼자 왔다갔다, 잠들기 전에 저는 이미 우희진으로 빙의되었습니다.
손범수의 가요톱텐은 단연코 최고였고, 내가 좋아하는 오빠가 골든컵을 타기만을 바라고, 비디오 녹화도 열심히 했드랬죠. 그리고 그 저녁 라디오는 가히 최고였죠. 제 안의 건재한 감수성은 바로 그때 형성된 것 같아요. 성질머리와 더불어 크크크
그 시절이 가장 그립고, 행복했던 기억은 바로 우리 할머니가 계셨기에 ......
부모님께서 장사하신다고 두 살 터울 남동생을 데리고 10여분 시장으로 분가나가시고, 저는 중학교 2학년까지 할머니댁에서 살았거든요.
바로 오늘처럼 무더운 날씨였어요. 새벽에 한 번, 점심전에 한 번 논에 다녀오신 뒤, 시원하게 미숫가루 한 잔 타 드신 뒤, 옆으로 누워 한 숨 주무시는 할아버지. 코고는 소리가 대문까지 들렸고 뜨겁고 장렬했던 태양의 이글거림 그리고 우리 할머니의 곱고 하앴던 블라우스와 익숙했던 살내음은 아직도 기억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