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목련나무 피던 집에 살던 소년 완결

조회수 : 3,064
작성일 : 2024-06-12 19:06:32

 

그날 술을 몹시 마신 후에 친구가 이야기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외로운 분이셔서 형제도 없었고 가족도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하나있는

 

아들이었던 자신이 퍽 소중한 존재였다고. 기억이 났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지만 그 아버지도 그랬었던 것 같았다. 버스정류장에 내렸을 때

 

아들을 기다리며 서 계셨던 아버지.  아버지는 친구가 고시공부를 하고 있던 중에 돌아가셨다.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을 이야기했다.

 

아침에 쓰러지셨고 쓰러진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쓰러진 그 날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친구의 나이가 서른세살이었다. 스무세살에 시작했던 고시공부 10년차였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얼굴도 잘 생겼다. 무난하게 좋은 대학에도 들어갔다.

 

그 일도 잘 해낼 것이라고 아버지는 믿었을 것이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친구는

 

술이 자신을 이길 때까지 마셨다. 처음에는 신나는 밤이었는데 밤이 깊을 수록 마음도

 

깊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의 이야기가 너무 마음 아팠다. 그 날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결국 시험을 접을 때 너의 마음은 어땠을까. 너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을까.

 

 

 

너의 집 목련나무는 참 예뻤지. 담밖으로 환한 목련이 피어오르면 나는 너의 젊고 예쁜 어머니.

 

너처럼 예쁜 여동생. 너의 아버지. 그리고 네가 사는 집을 지나 학교에 갔지.

 

 

나는 네가 내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너는 한번도 아프지 않고 한번도 다치지 않고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하고 생각했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같은 나의 20대를 보낼 때, 비척비척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때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큰 길을 올라가면 네가 사는 이층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멋있게 

 

서 있었어. 4월에만 꽃을 피우던 목련나무가 있어 더 아름다운 집이었지.

 

 

 

삶은 누구에게나 그렇구나. 너의 서른세살. 너의 서른여덟살. 그 아팠던 순간들이 눈에

 

보이는 듯 했던 그 밤에. 그 먹먹하던 밤에. 우리는 모두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런 것은 모르고 사는게 좋지 않았을까.

 

 

그냥 이층집은 그 자리에 있고 목련나무도 그 곳에 있는 걸로.

 

 

나이든 아버지는 웃으며 퇴근하시고 나이들었지만 여전히 다른 엄마들보다 젊고 

 

아름다웠던 어머니도 여전히 그 곳에. 예쁘고 도도하던 동생도 그 곳에. 

 

친구도 내 어린 시절 기억속의 그 곳에서 그냥 살고 있는 것으로 .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좋은 게 아니었을까. 깊은 밤을 걸어가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친구를 특별하게 예뻐하셨던 우리 엄마도 내가 결혼할 즈음에 돌아가셨다.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그 때의 아이들은 자라서 그 때의 부모님만큼의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이렇게 금방 흐르는 것을 몰랐다. 

 

 

 

나와 친구는 우리 집 앞에서 한번 만났다. 내가 사는 도시에 친구의 어머니가 살고 계셨다.

 

어머니를 보러 오면서 친구는 나를 한번 만나고 갔다. 차나 한번 하자 인사했는데

 

진짜 차를 한번 마시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어렵기만 하던 친구였는데 이제 더 이상 어렵지 않아서 놀랐다.

 

우리는 어릴 때 이야기를 하다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가 또 몇가지 우스개 소리도 하다가

 

헤어졌다. 서로 기억하는 게 달랐다. 경주 이야기도 했다. 경주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그 때 모두 스무살이었으니까.

 

 

 

다른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친구가 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참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진심으로 자신의 행복을 빌어주었던 것을 그 친구는 알고 간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에 또 이 칭찬을 품는다. 

 

 

모두 행복하기를 상처입은 사람도 상처없는 사람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 또 만날 수 있게 될까. 친구는 그 때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IP : 211.203.xxx.17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6.12 7:14 PM (210.95.xxx.227)

    짧은 글인데 단편소설 한편 읽은거 같네요.

  • 2.
    '24.6.12 7:15 PM (223.38.xxx.91)

    잘 읽었습니다.

    그러니까요.
    이것은 첫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린 시절, 청춘, 인생,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요.

    원글님은 좋은 사람입니다.
    저도 알 것 같아요.
    원글님이 정말 많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 3. 원래
    '24.6.12 7:16 PM (222.238.xxx.179)

    고시가 사람잡아요

  • 4. 123
    '24.6.12 7:17 PM (120.142.xxx.210)

    너무너무 좋은 글, 문장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5. ㅜㅜ
    '24.6.12 7:18 PM (175.114.xxx.59)

    생각도다 슬픈 결말이였어요.
    시크한게 쓸쓸함이였나봐요.

  • 6. 전직고시생
    '24.6.12 7:22 PM (223.62.xxx.149)

    세파에 찌든 고시생 1인 오열하며 읽었습니다
    너무 슬프네요
    1,2까진 달콤씁쓸 이런 단어를 떠올리며 읽다가
    이 편에서 무너졌어요
    원글님은 글 쓰시는 분일듯
    작가님의 향기가
    아직도 슬퍼요. 빨리 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요ㅜ

  • 7. 3편을
    '24.6.12 7:22 PM (58.29.xxx.213)

    한 번에 휘리릭 읽었어요.
    제가 이렇게 담담한 글을 참 좋아하나봐요.
    끝까지 읽으며 마음이 담채화 같이 맑아지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에
    '참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진심으로 자신의 행복을 빌어주었던 것을 그 친구는 알고 간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에 또 이 칭찬을 품는다.'
    딱히 이유를 모르겠는데 이 지점에서 눈물이 훅 났어요.

  • 8. 덴장
    '24.6.12 7:40 PM (49.164.xxx.30)

    원글님~~ 잘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단편 읽은느낌이에요
    경험담이든 습작이든..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 9. .....
    '24.6.12 7:50 PM (118.235.xxx.31)

    넘나 잘 봤어요

  • 10. ...
    '24.6.12 7:55 PM (211.234.xxx.24)

    아니 짧은 글에서 이런 감동이
    어케 이리 잘쓰시는 겁니까ㅠ

  • 11. ㅇㅇ
    '24.6.12 7:57 PM (58.29.xxx.148)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가 세속적 기준으로 실패의 모습으로
    나타났을때 순간 씁쓸했겠죠
    그래서 모르고 살았으면 했지만
    지금의 모습도 그의 일부이고 원글님이 기억하는 모습도 그의 일부인거죠
    차가워서 다가가기 어려웠던 그가 이제는 편안해졌다는게
    이글을 쓰게된 이유같네요
    내 어린날의 동경이 현실에 안착해서 추억으로 남았네요

  • 12. 은하수
    '24.6.12 8:15 PM (58.142.xxx.195)

    저는 이마음 알것 같아요.
    제가 오래오래 좋아했던 소년
    눈이 크고 얼굴이 하얗고
    지금까지 내가 알던 누구보다
    잘생긴 아이
    초등학교때 만나
    같은 중학교 같은 교회
    그리고 같은 대학에서 만난 아이.

    세월이 많이 흐른뒤
    만난 친구는
    많이 변해있었고
    내맘속의 소년은
    내맘에만 그대로 남아있었다

  • 13. 쓸개코
    '24.6.12 8:26 PM (175.194.xxx.121)

    화려하게 피었다가 사그라들고 입을 떨구고.. 추위를 견디며 깊은 잠에 들었다가 다시 싹을 틔우고..
    우리 인생이 다 그렇죠.
    목련집 친구는 원글님게 감동을 주는 좋은 친구네요.
    그애는 지적이야
    그애는 좋은 사람이야..
    더 뭐가 필요해요.^^

    저도 습작이든 경험이든 상관이 없게 좋았어요!

  • 14. ㅇㅇ
    '24.6.12 8:30 PM (58.29.xxx.148)

    원글님은 자기 마음을 담백하게 잘 표현하시네요
    어떤 마음이었을지 참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사건묘사 상황전달보다 마음을 전달하는게 참 어려운데 말이죠

  • 15. 좋다
    '24.6.12 8:52 PM (106.101.xxx.177)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청춘은 짧고 눈부시게 아름답죠.

  • 16. 우리 모두
    '24.6.12 8:59 PM (183.97.xxx.120)

    행복하기를
    20대에 제일 큰 과업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해서 만나는거라고 하더군요

  • 17. 잘 읽었어요.
    '24.6.13 5:22 PM (14.5.xxx.38)

    어찌 그리 시간이 빨리도 흘렀는지...
    이젠 머리도 희끗희끗해진 그런 나이가 되어
    감성도 다 메말라버린 줄 알았더니
    원글님 필력덕에
    잊고 있었던 청춘의 시절로 다녀와 보게 되네요. 고마워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04607 관리비 할인 카드 괜찮은거 있나요 6 .. 2024/06/21 1,034
1604606 여자탤런트들 어릴 때 동요 부른 영상 보는데 2 ... 2024/06/21 1,869
1604605 경기도 분도 되고 북쪽 평누도 되나요? 8 .. 2024/06/21 789
1604604 ‘채상병 청문회’ 볼 수 없는 KBS…노조 “특정 권력에 경도돼.. 8 공영방송? 2024/06/21 1,688
1604603 금투세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45 폐지 2024/06/21 3,200
1604602 임성근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네요 25 청문회 2024/06/21 4,959
1604601 전자레인지 전원이 안들어와요 1 ㅇㅇ 2024/06/21 444
1604600 간식중 몸에 가장 안 좋은게 아이스크림인가요? 10 이름 2024/06/21 5,216
1604599 지금 나오고 있는 금쪽이.. 2 그랑 2024/06/21 2,453
1604598 장윤정 vs 전현무 누가 재산 더 많을까요? 11 단순궁금 2024/06/21 5,537
1604597 ‘아버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김훈의 일갈 9 까칠마눌 2024/06/21 3,626
1604596 귀뚫은 후 6 .. 2024/06/21 1,355
1604595 응답하라 1988. 호텔에서 택이가 왜 갑자기 키스한거에요 1 물론 2024/06/21 3,471
1604594 운영위, 과방위, 법사위 청문회 중 3 망하겠다 2024/06/21 939
1604593 알뜰폰 요금제바꿀때 유심새로사야하나요? 4 ㅇㅇ 2024/06/21 959
1604592 누구 잘못인가요? 19 허허허 2024/06/21 3,810
1604591 대상포진인데 영양제 추천 좀 5 ㅠㅠ 2024/06/21 1,007
1604590 유교는 어떻게 우리를 망가뜨렸나 10 2024/06/21 2,540
1604589 에어비앤비는 평일가격 주말 연휴 가격이 똑같나요? 1 .... 2024/06/21 787
1604588 정청래 너무 잘해요! 명언제조기 ㅋㅋㅋ 17 ... 2024/06/21 4,637
1604587 저같이 몸이 만신창이인 분 계시나요? 6 ㄹㄴ 2024/06/21 3,433
1604586 기숙사 짐을 가지고 왔는데..^^; 15 새내기 2024/06/21 4,985
1604585 강승모 내 눈물 속의 그대랑 비슷한 노래 1 ..... 2024/06/21 310
1604584 대장내시경 물약으로 선택했는데 어떤맛인가요? 18 떨려요 2024/06/21 1,484
1604583 만두러버님들 시판만두 몆개까지 드셔보셨어요? 8 만두 2024/06/21 1,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