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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목련나무 피던 집에 살던 소년 1

조회수 : 3,023
작성일 : 2024-06-12 13:54:33

 

 

소년은 5학년때 같은 반의 반장이었다. 평범한 동네에서 이층집에 살고 몹시 젊고 예쁜 엄마를

 

가진 말간 얼굴을 한 남자아이였다.

 

 

그 집 마당에는 목련이 있어서 봄에는 언제나 흰 목련꽃이 피었다. 집에서 학교가는 길에

 

언제나 그 집앞을 지나야 해서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여고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도

 

그 집의 목련을 보며 다녔다.

 

 

 

4월이 되어 약속을 지키듯 어느 봄날 목련이 피면 잘 지내나. 친구를 떠올리곤 했다.

 

 

친구는 차갑고 쌀쌀했다. 어린 아이인데도 차갑고 쌀쌀했다. 쌀쌀했으므로 그 친구가

 

어쩌다 웃으면 아주 기뻤다. 친구인데도 어려웠다. 사람을 좀 어렵게 만드는 친구였다.

 

어려웠고 가깝지 않았다. 그래도 늘 눈길을 끌었다.

 

 

공부를 잘했고 집이 부자였다. 아버지는 차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늘 동경했다.

 

 

 

5학년 어느날.  우리반의 회의록을 그 애가 집에 두고 와서 가지러 가야 했다. 나에게

 

같이 갈래. 해서 같이 갔다. 둘이서만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좀 두근거렸다.

 

 

 

학교에서 친구집은 가까웠다. 그래도 그 길을 갔다 오는 동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갈 때는 차분하게 걸어갔지만 올 때는 웃으면서 뛰어왔다.

 

갑자기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다시 쌀쌀했고 여자친구들과는 별로 말하지 않았고 잘 웃지도 않았다.

 

 

6학년때도 같은 반이었다. 6학년 담임은 나쁜 사람이어서 나는 그해 많이 힘들었다.

 

나쁜 담임은 그 친구에게는 나쁘게 하지 않았다. 1년은 더디게 흘러갔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을 때 교실에서 우리끼리 학예발표회같은 걸 했다.

 

친구는 그 때도 반장이어서 교단에 나와서 등대지기를 불렀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등대지기는 음악책에 나오는 노래였다. 그 노래를 들은 이후에는 어른이 될 때까지

 

등대지기를 들으면 그 친구 생각이 났다

 

 

6학년 그 친구가 손을 뒤로 하고 몸을 조금씩 흔들흔들하면서 부르던 그 등대지기.

 

 

 

6학년을 마치는 날. 우리가 영영 헤어지고 이제 만나지 않게 되는 날. 복도를 지나가는데

 

그 친구가 나를 불렀다. 향기나는 볼펜세트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쌀쌀맞게 그냥 건네주고 갔다.

 

 

 

중학교에 가면 이제 연필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볼펜을

 

쓸 만큼 자란 모양이었다. 향기나는 볼펜 세트는 나에게만 준 것은 아니었다.

 

학급임원인 여학생 다섯명 모두에게 주었다. 

 

 

 

나는 그 볼펜을 소중하게 썼다. 희안하게도 쓸 때마다 향기가 나는 볼펜이었다.

 

중학교의 교실에서 나는 그 볼펜을 썼다. 한동안,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자율학습을 마친 늦은 밤의 버스에서 만났다.

 

거의 잊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려고 할 때 눈이 마주쳤는지 처음에는

 

알아 보지 못했다. 마중나온 친구의 아버지를 보고서야 알아챘다.

 

친구가 웃었고 나는 좀 부끄럽고 당황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친구의 가방을 받아주시고 두 사람은 목련이 있는 그 집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떨어져서 천천히 걸어갔다.

 

 

 

목련나무가 있는 집을 지나며 가끔 다시 생각이 났다.

 

 

 

 

다시 만난 건 대학교 1학년의 봄. 경주였다. 막 대학에 간 아이들,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이 동창회라고 만났다. 그 애 집 담 안쪽에 목련이 피는 4월이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쓸쓸한 얼굴을 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어릴 때와 비슷하게

 

대하기 어려운 친구가 그 곳에 왔다.

 

 

 

 

 

 

2부에서 계속

IP : 220.119.xxx.23
2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직
    '24.6.12 1:57 PM (121.155.xxx.156)

    한방이 없군요.
    얼음 왕자는 누구랑 연애했나요? ㅎㅎㅎㅎ

  • 2.
    '24.6.12 2:00 PM (112.146.xxx.207)

    아 좋아요.
    오늘은 두 편을 연달아 볼 수 있어서 운이 좋은 날이네요.

  • 3.
    '24.6.12 2:01 PM (175.214.xxx.36)

    여기서 끊으시다니 어서요

  • 4. 쓸개코
    '24.6.12 2:05 PM (175.194.xxx.121)

    볼펜을 건넸다는 대목에서.. 저는 영화 러브스토리가 생각납니다. 왜인지 ㅎ
    볼펜을 받으셔서.. 2부에서 설레게 하는 대목이 나올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네요.

  • 5. 2부
    '24.6.12 2:08 PM (211.112.xxx.130)

    빨리요! 심장 막 나대고 난리.
    요근래 82에서 본 글중 젤 재밌네요.
    얼음 왕자는 그래서요

  • 6. 나무
    '24.6.12 2:09 PM (221.163.xxx.108)

    미소년에 이어 기다리고 있었어요. 원글님 끊기와 밀당의 전재!

  • 7. 언젠가
    '24.6.12 2:10 PM (118.235.xxx.165)

    신나게 썰 풀다 빨래널고 온다던 그분(결국 안옴)이후로 엄처나게 2부가 기다려 집니다

  • 8. 산딸나무
    '24.6.12 2:10 PM (211.36.xxx.10)

    아니아니 저는 동창회란 걸 한번도 나가보질 않아서 이렇게 재미진 글을 쓰질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닷

  • 9. ㅇㅇ
    '24.6.12 2:13 PM (59.17.xxx.179)

    빨리요!

  • 10. 경주라니
    '24.6.12 2:24 PM (115.21.xxx.164)

    경주를 너무 좋아해요. 원글님 2부 기다릴께요.

  • 11. .....
    '24.6.12 2:39 PM (178.88.xxx.167)

    경주가 배경인가요?
    경주 고향인데..궁금...

  • 12.
    '24.6.12 2:39 PM (106.101.xxx.20)

    도도남의 정석이군요

  • 13. 덴장
    '24.6.12 2:51 PM (106.101.xxx.178)

    향기나는 볼펜..저도 어릴때 써봤던기억이
    40대신가요?ㅎㅎ 설렙니다~~

  • 14. ㅋㅋㅋ
    '24.6.12 2:52 PM (58.127.xxx.56)

    끊기 신공이 대단하십니다!

  • 15. ..
    '24.6.12 3:07 PM (112.149.xxx.137)

    소설인가요? 2편을 기대하게 되네요

  • 16. 어째
    '24.6.12 3:13 PM (61.101.xxx.163)

    내 동창놈들은 미소년도 없고 냉소년도 없고...
    죄다 코찔찔이들만 있는겨 잉..ㅎㅎ

  • 17. ㅇㅇ
    '24.6.12 3:24 PM (121.175.xxx.60)

    부자부모를 둔
    예쁜2층양옥집에 사는
    공부 잘하는 말간얼굴의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가진 남자아이

    실화라면
    현재 근황이 젤 궁금

  • 18. ^^
    '24.6.12 3:56 PM (14.5.xxx.38)

    2편 기다려봅니다.

  • 19. ...
    '24.6.12 4:30 PM (211.234.xxx.185)

    아까 미소년 시리즈 정주행했는데
    목련도 시작하셨네요
    2편 기다립니다!!

  • 20. 미소년
    '24.6.12 5:05 PM (118.235.xxx.123)

    시리즈 재밌게 봤는데 갑자기 이번엔 목련나무집 소년이요?
    5학년 .6학년때 해마다 맘에 드는 남학생이 있었는가봄.
    첫사랑 이야기는 처음 일생에 단한번의 경험이라 설레는건데.
    갑자기 미소년 이야기도 김빠졌어요.
    소설 연습하시나? 실화는 맞나?
    아님 만나는 모든 인연을 소설화하시나?

  • 21. ..
    '24.6.12 5:28 PM (211.253.xxx.71)

    긍까.. 미소년을 육사로 보내버림서 시커먼 군인아재를 만들더니.. 이 소년은 또 어찌 버리실지..

  • 22. 위윗님
    '24.6.12 5:42 PM (223.38.xxx.91)

    위윗님,
    이 원글님은 그 미소년을 첫사랑이라 부른 적이 없어요. 그렇게 좋아한 대상도 아니었고, 만나고 싶어했던 적도 없고요.

    그 글은… 국민학교 때 반에서 가장 시선을 끌던 존재에 대한 동경 같은 걸 쓴 거였죠. 우리 모두 그 비슷한 대상들이, 한 명 아닌 여럿,
    여러 나이대에 지나가지 않았나요?

    초등학교 때 전교 회장이던 소년,
    중학교 때 옆집 친구네 오빠
    이런 식으로…

    딱히 좋아한 것도 아니고 무슨 사이도 아니었지만
    왠지 나에게 말을 한 번 더 걸었으면 싶기도 하고
    정말 그렇게 말을 걸어오면
    평범한 나의 빛나는 어떤 점을 알아봐 준 걸까 생각하게도 되던 존재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꼭 이성이 아니어도 상관없기도 해요.
    그들이 아련한 이유는 그때 가장 눈에 띄는 존재여서였지 이성이어서가 아니고
    기억에 그토록 선명한 이유 역시, 덜 자라 무성의 존재 같은 어린 나에게
    이유없는 신경 쓰임을 조금씩 깨닫게 해 줬기 때문이니까.

    첫사랑의 순결주의 같은 건 넣어 두세요 ㅎㅎ
    찬물 끼얹어 이 글을 더 읽지 못할까 봐 걱정됩니다.
    어린 시절이란 원래 그렇게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지, 무슨 일부일처제처럼 한 명에게 꽂혀 쭉 가는 ‘이성적 첫사랑’은 사실 그리 흔치 않음을
    (이성에 일찍 눈 뜬 애한테나 적용되는 것을)
    모르신다는 게 살짝 답답하기도 하고요.

    어린 시절은, 누구나에게 털 삐죽삐죽한 못난이 똥강아지의 시절이에요. 그 중에 털이 빛나고 리본도 꽂고 있는 아이는, 왠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법이죠. 동경이든 부러움이든 호기심이든…

  • 23. 감사~
    '24.6.12 5:49 PM (211.58.xxx.192)

    원글님도 글을 잘 쓰시지만, 위 223.38 님도 만만치않게 잘 쓰십니다.

    나중에 또 읽어볼래요. ^^

  • 24. 산딸나무
    '24.6.12 7:52 PM (182.224.xxx.78)

    와 223님 해설 정말 대단
    문학에서 평론 부문이 따로 있는 거 이해되요

  • 25. 쓸개코
    '24.6.12 7:54 PM (175.194.xxx.121)

    223.38님 댓글 너무 좋아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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