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라면서 아버지랑 대화라는 것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술먹고 행패부리는 것 때문에 싫고 공포스러웠던 기억 밖에 없어요.
맛있는게 있으면 혼자만 드시던 분.
엄마는 소풍날만 되면 아빠한테 옷사게 돈달라 그러라고 시켜서 너무 싫었어요.
엄마는 가족들이 옆에 있어도 못듣는다 생각하고 편을 짜서 험담하고 비웃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보니, 저희집이 좀 이상하더라구요.
시어른들은 골아픈 일이 있으면 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시는데 친정엄마는 자식들한테 다 전가합니다. 심지어 다른 자식이 힘든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본인이 힘들다고 저한테 전화해서 대책 세우라고 해요.
몇년전에 아버지가 큰 병이 났는데, 대놓고 본인은 쏙 빠지고 자식들한테 떠밀었어요.
수술실 들어가는 날도 룰루랄라 본인 밥부터 챙기는 모습에 너무 괴이하기도 하고 내 부모가 이렇구나 싶으면서 만정이 떨어지더라구요.
그 이후로 거리 두고 뭘 시켜도 거절하고 했는데, 그래도 계속 저한테 기대하나봐요.
요즘 아빠가 몸이 또 안좋으시니 저한테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하는데,
충분히 엄마 본인이 알아볼 수 있거든요. 아버지는 원래 그런 걸 못해요. 그것도 급하면 하겠지만 엄마가 다 해버릇해서 못하죠. 암튼 엄마는 대학병원 예약해서 잘 다니는 분이에요. 일도 하셨고 아이도 여럿 키우셨으니 못하는게 없죠.
그냥 책임을 미루고 싶고 자식한테 떠맡기고 싶은 거에요.
본인도 아프다고 하시면서(늘 무슨 일만 있으면 아프다고 해요) 병원 알아보라고 하네요.
본인은 아는 사람도 많고 늘 사람을 만나니까 어디가 잘 하는지 주변에 알아보거나 대학병원으로 가면 될텐데 말이에요.
아버지도 제가 병원에 따라가길 기대하는데 너무 불편하고 싫습니다. (형제 중 저만 전업)
저는 병원 문제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데 어떤 핑계를 대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진짜 일이라도 구해서 다녀야 할까 싶은데 당장은 어렵고요.
방금도 전화가 왔는데 안받았어요.
나이 들고 아파서 혼자 못하실 때면 어쩔 수 없이 해야겠지만 아버지 문제를 이렇게 떠넘기는 건 너무 싫습니다.
차라리 엄마 병원이면 제가 따라가고 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너무 불편하고 싫은 마음만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