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수근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 구조된 생존해병의 어머니입니다.
길고 깊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기분입니다. 우리 아들들은 그저 사과와 위로가 필요했을 뿐인데... 정작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죄책감에 힘들어합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저의 방심이 문제가 아니었나 하는 자책도 합니다.
사고가 나기 전, 호우 피해 복구 작전에 투입된다길래 아들에게 ‘물에는 안 들어가는 거지’라고 물어봤었습니다. 아들은 삽, 갈퀴, 장화만 받았다고 대답했었습니다. 그럼 잔해를 치우고 수재민을 돕는 거겠거니 생각하곤 별말 안 했습니다. 혹시 물에 들어가게 되면 구명조끼는 주시는 거냐고 중대장님에게 전화라도 한번 할까 싶었지만, 극성맞은 엄마를 뒀다고 아들이 눈총받을까 싶어서 말았습니다. 제가 전화 한 통만 걸었어도 채 상병도, 우리 아들도, 선, 후임 동료들도, 다들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해병대에서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삽이랑 장화만 줬으니 당연히 물에 안 들어가나보다 생각했던 게 후회스럽습니다.
생전 밟을 일 없을 것 같았던 공수처와 국회를 다니며 바랐던 것은 하나였습니다. 높은 분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친 아들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공감하고 위로가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렇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고발하자 ‘생존해병과 그 엄마가 하는 일은 북한의 사이버공격과 같다’며 군사법원에 의견서까지 제출한 임성근 전 사단장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지만, 당신에게 목숨을 맡겼던 병사들에게,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어른답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는지요? 사고가 발생하고 10개월이 지났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책임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는 죄가 없다는 말만 하고, 힘 있는 분들은 그런 사람들을 옹호하고 지켜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능력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에 좌절하고 있을 때 손잡아주신 분들은 권력이 아닌 시민이었습니다. 시민들께서 마음 모아주신 덕분에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는 소식이 가슴 한켠을 짓누릅니다.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를 잘 하고 있으니, 그 뒤에 특검을 해도 늦지 않다고 하십니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대체 무엇이 진행되었습니까? 용기 내서 사단장을 고소했던 저희 아들을 볼 낯이 없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언제까지 기약없이 더 고통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저는 대한민국 수사기관이 능력이 없어서 10개월 동안 사고 원인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라는 큰 권력이 연루되어 있으니 다들 눈치만 보고 수사에 진척이 없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특검이 필요한 것입니다.
5월 28일에 다시 열리게 될 본회의에서 재의결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여야 소속정당에 관계없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필요한 일인지만 생각해주십시오. 국민들의 대다수가 왜 특검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고민해주십시오. 재의결에서 꼭 특검법을 통과시켜주십시오. 염치불구하고 시민들께도 다시 부탁드립니다. 국민동의청원을 빠르게 성사시켜주셔서 특검법이 꼭 통과될 수 있도록, 그래서 수근이의 한을 풀고, 우리 아이들도 더 고통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길고 깊고 어두운 터널이지만 터널은 언젠가 밝은 빛으로 끝날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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