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고 신학기 시작까지 3 개월 동안
저한테는 별다를 것 없던 일상이 이어졌고
3.1 일자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습니다 .
신학기 시작에 옮긴 학교라 첫날부터 정신이 없는데
축전이 하나 왔습니다 .
발신인은 그 남자 박 선생님
내용은 뭐 영전을 축하한다는 상투적인 내용이었고
그동안 개인적으로 이야기해 본 적도 없고 해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는데
좀 의아하기는 했었어요
우리가 이런 사이였나 ?? 아니면 같은 국악회 회원이라서 의리상 ????
2012 년도에는 국악회 관련 모임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그 남자 박선생님과 마주칠 일이 좀 자주 생기더라구요
출장지에서 만나거나 학생 야영장에서 만나거나
우리 학교로 출장을 온다거나 ....
만난 횟수는 많지 않아도 그 전과는 달라진 점이 있었어요
지난해까지는 입 꼭 닫고 필요한 말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멀리서라도 제가 보이면 저한테 와서 아는 척을 하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수다 수준으로 막 하는 겁니다 .
박선생님이 저렇게 수다쟁이였나 싶을 정도 저보다 더 말을 많이 했었어요
해가 바뀌면서 박선생님이 이렇게 바뀌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요
지난해 공연 끝나고 컨디션이 안 좋다고 했었잖아요
50 이 되도록 혼자 살다 보니 먹는 것은 너무나 부실했으며
그렇게 튼실한 체질도 아니었고 하니 학기 마칠 즈음에는
항상 그렇게 기력이 소진되어 힘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때는 방학 내내 컨디션이 회복이 안되니까
이러다가 고독사하게 되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고 했습니다 .
이제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누구에게라도 기댈 곳 없는 상황이 너무 외로워서
결혼이란 것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데
어디 결혼이란 것이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능한 것이던가요?
그런데도 사귀던 사람도 없고 결혼이야기 오간 사람도 없었던 사람이
결혼을 해야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데 그 순간 한치의 의심도 없이
상대가 바로 저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까지 사적으로 한 번 만난 적도 이야기했던 적도 없으니
1 년 동안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인생의 흐름에 맡겨보자는 마음으로
또 저에 대해서 차분히 알아가고 친해져 가고 싶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방학 내내 저와의 결혼에 다다르기 위한 플랜을 짰다고 나중에 실토를 .....
2012 년부터의 일들은 모두 그 남자의 플랜에 의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
축전 이후에 여러 번 만났지만
야영장에서 만난 일이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지방의 소규모 학교들은 야영도 몇 학교씩 모아서 진행을 하는데
야영지 출장을 갔더니 그 남자가 거기 있는 겁니다 .
저는 뭐 딱히 친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같은 국악회회원이니까
반갑기는 해서 틈새 시간에 커피도 한잔하고 또 수다도 좀 떨었는데
여름 방학 중 학생 방과 후 특강에 기타강사를 해 달라고 하는 겁니다 .
저는 그때 이미 본교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기에
두 학교에서 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거절을 했고
그 남자는 더 이야기하지는 않더라구요
아마도 한번 더 이야기했으면 제가 또 고려를 해 봤을 수도 있는데
뭐 그렇게 흐지부지 ....
2 학기가 시작된 9 월에는 학교 도서실에서 소규모 장학 컨설팅을
여러 학교에서 담당자가 와서 했고 저는 또 행사 사진 촬영이 제 업무라
카메라 들고 도서실에 갔더니 그 남자가 또 그 장소에 있는 겁니다 .
행사 사진 찍으면서 슬쩍 훔쳐보니 혼자 산다는 50 노총각이 뭘 그리 깔끔한지
차림새가 너무 깔끔해서 혼자 산다는 게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어차피 우리 학교에 왔고 축전도 받았고 이제는 이야기도 좀 나눈 사이니까
컨설팅 끝나면 근처에 가서 차 한잔 할려고 생각했는데
퇴근시간까지 안 끝나서 가다리다가 저는 먼저 퇴근을 했답니다 .
퇴근을 하고 집에 와 있는데 그 남자가 처음으로 저한테 전화를 한 거였습니다 .
일찍 마치면 학교 근처 분위기 좋은 찻집에 가서 차한잔 할려고
학교에 들어서자 말자 젤 먼저 저를 찾았는데 자리에 없어서 못 만났고
눈치없는 장학사가 또 너무 늦게 마쳐서 이제사 전화하는 거라고 했어요
저는 또 뭣 때문이었는지 목소리가 좀 하이톤으로 들떠서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
아마도 저도 이때는 그 남자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나 싶기도 했어요
몇 년에 걸쳐서 봐 왔었고 같이 공연도 했었고
이제는 같이 수다도 떨 정도로 가까워지니 옷깃에 물이 스며들 듯이
어느 순간 저도 그 남자에게 스며 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정기공연을 앞둔 11 월의 어느 날
모듬북을 연습하다 중간에 잠시 휴식 중인데 그 남자 포함 사물놀이 팀이
연습실로 예고없이 찾아온 거였습니다 .
모듬북 진행상황이랑 또 우리 끝나면 사물놀이 연습할려고 왔다고 ..
그런데 이날 웃기게도 제가 반가운 것을 숨기지 못했고
또 얼굴이 좀 빨개져서 다른 회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려고 애를 좀 먹었어요
왜냐면 아이가 있는 돌싱인 저랑 총각인 그 남자랑 엮이면 안될 것 같아서
남들이 몰라야 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아마도 저도 이제 그 남자를 좀 좋아했던 것 같아요
다만 처지가 다르니 좋기는 하지만 아예 시작도 안하고 또 헤어질 경우를 대비해
미리미리 저를 방어하기에 급급했었겠죠
정기공연도 잘 마치고
뒷풀이를 갔는데 이 날은 그 남자도 같이 갔었어요
그리고 또 그 남자는 제 앞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었구요
같이 밥 먹으면서 그 남자가 또 제안을 해 옵니다
겨울 방학 때 통기타 특강을 해달라고
지난 번에 한 번 거절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좀 미안해서
이번에는 제가 흔쾌히 수락을 하게 되었고
방학을 해도 그 남자와 계속 만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게 되었답니다 .
그렇게 2012 년이 저물어 가고
이제는 많이 흥미진진한 2013 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
2013년 스토리는 4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