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착한 일은 아니고

조회수 : 879
작성일 : 2024-04-04 23:18:03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어느 건물 1층 점포에 볼일이 있었는데 여긴 입구가 대로를 향해 있거든요.

보통의 가게나 카페처럼, 거기로 들어가면 돼요.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입구를 향해 가다가, 건물 옆에 난 유리문 앞에 섰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서, 급히 내려 걸어가던 제가 너무 거지꼴일 것 같아서요 ㅋㅋ

유리에 비친 머리를 보고, 대충 다듬고 얼른 지나쳐 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잘 안 들리는 소리로.

네? 하고 뒤돌아 보니

어떤 할머니가 저만치 멀찍이 서서 

저를 보고, "안 들어갈 거예요...?"

작은 소리로 묻더군요.

 

???

"네, 안 들어가는데요...?" 하고
내가 건물에 들어갈 건지 아닌지 저 분이 왜 궁금하시징?

하는 순간, 알 것 같았어요.

그 분이, 어른 보행 보조용 유모차 같은 걸 앞에 잡고 있었거든요.

유리문은 제가 거울처럼 비춰 볼 수 있었으니... 닫혀 있었고

그 분은 아마 그 무거운 문을, 밀어 열 힘이 없었거나

보행차를 끌고 문을 잘 열 수 없었던가 봐요.

 

가까이 가서 "들어가시려구요?" 하니까

"어... 들어가는 줄 알고 막 쫓아왔는데..."
하시는 거예요. ㅎㅎ

막 쫓아왔는데 아직도 저에게서 그만큼이나 멀리 있었던 거였어요.

아니 뭐 문 열어 드리는 게 힘든 일일까요.

이리 오세요, 열어 드릴게요, 하고 열어 드리고

그 분이 천천히 들어가시는 걸 보고

다시 나오실 거면 문 닫지 말까요? 네, 안 닫을게요~.

하고 저는 제 볼일 보러 갔어요.

 

뭐 착한 일 했다는 게 아니고 ㅋㅋ

아... 정말, 어릴 땐 몰랐는데.

요즘은 저도 아무 이유 없이 어깨가 아파요. 팔도 아프고.

타자 많이 치니 손목도 아파요.

체력은 별로여도 악력은 누구에게 크게 지지 않는다는 쪼그만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젠 쨈병이며 돌려 여는 편의점 커피 병도 잘 못 열겠어요.

아직 열긴 여는데, 죽어라~ 힘줘서 열고 우와 손목 아파! 하고 고통스러워하고요.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러니 저에게도 천천히 걷는 날이 오겠죠.

지금은 쓱 밀고 지나갈 수 있는 두꺼운 유리문이, 큰 벽처럼 느껴지는 날도 올 거예요.

 

예전엔,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해도

그게 마치 사람들이 보드 타고 날아다니는 미래가 올 거라는 말처럼 

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젠, 그 날이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이든다는 건, 작고 약하고 희미해져 간다는 거.

언젠가 저도 똑같이 걸어갈 그 길을... 먼저 가는 사람들을 볼 때

멀고 낯설고 나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도울 수 있는 건 쓱 돕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기.

못 듣고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게, 잘 둘러보기.

그러고 싶어서 남겨 봐요.

IP : 112.146.xxx.207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4.4 11:25 PM (203.236.xxx.188)

    흐뭇하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 2. ..
    '24.4.4 11:34 PM (59.9.xxx.174)

    짝짝짝!!!
    참 잘했어요!!!
    ㅎㅎ 우리도 그런 날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죠.
    모임에 어떤 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남 일 갖지않고요.
    암튼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싶네요.

  • 3. 착한일
    '24.4.5 6:57 AM (59.6.xxx.156)

    맞죠. 착한 일 다정한 일 숨쉬듯하며 살고 싶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04282 스텐 냄비 쓰시는 분들 어떤게 쓰기 좋으셨어요~? 7 .. 2024/08/01 1,469
1604281 일본영화 PLAN 75 2 .. 2024/08/01 958
1604280 집에 뭘 안 사온다고 하는 심리는 뭔가요 34 .. 2024/08/01 5,569
1604279 정리정돈 성향 25 Mbti 2024/08/01 5,086
1604278 전기코드 똑딱이가 ... 2024/08/01 411
1604277 인생에 현타가 정말로 쎄게 왔을때.... 23 zz 2024/08/01 6,794
1604276 네이트판) 가난한 집 아들과 결혼하지 마세요 29 00 2024/08/01 9,485
1604275 홈트 드러눕지 않고 매일 성공 노하우 8 ㅇㅇ 2024/08/01 2,608
1604274 군입대 나이요 7 ㅇㅇ 2024/08/01 1,065
1604273 치매 부모님 집에서 모시는 분들 9 혹시 2024/08/01 3,287
1604272 더위 먹은거 같아요 4 어떻게 2024/08/01 1,360
1604271 자식이 집에 올때 112 ㅇㅇ 2024/08/01 17,180
1604270 침삼킬때 목이 아픈데 약국약 뭘 사먹어야할까요? 10 ㅇㅇ 2024/08/01 1,741
1604269 10월 되면 좀 시원해질까요? 8 10 2024/08/01 1,715
1604268 에어컨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겠어요? 1 더위 2024/08/01 1,261
1604267 홧김에 지르는 쇼핑 후회되나요 9 .. 2024/08/01 1,870
1604266 이불장 없는 드레스룸에 이불 보관 어떻게? 8 .... 2024/08/01 2,485
1604265 리지, 너무 달라진 외모 15 이렇게달라질.. 2024/08/01 4,846
1604264 자식을 낳으라고? 10 여보쇼 2024/08/01 2,837
1604263 도움요청)개가 진드기를 못떼게 하는데.. 6 아이고야 2024/08/01 1,592
1604262 시어머니 모시는... 45 ... 2024/08/01 5,936
1604261 산밑 아파트 오늘 새벽은 춥기까지 해요. 19 ... 2024/08/01 3,214
1604260 체중은 안줄었지만 핏이 달라졌어요 4 ㅇㅇ 2024/08/01 2,990
1604259 간헐적 단식이 오히려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크게 높인다 12 2024/08/01 4,021
1604258 환갑넘은 남편 새벽3시에 귀가 20 울화통 2024/08/01 5,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