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착한 일은 아니고

조회수 : 890
작성일 : 2024-04-04 23:18:03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어느 건물 1층 점포에 볼일이 있었는데 여긴 입구가 대로를 향해 있거든요.

보통의 가게나 카페처럼, 거기로 들어가면 돼요.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입구를 향해 가다가, 건물 옆에 난 유리문 앞에 섰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서, 급히 내려 걸어가던 제가 너무 거지꼴일 것 같아서요 ㅋㅋ

유리에 비친 머리를 보고, 대충 다듬고 얼른 지나쳐 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잘 안 들리는 소리로.

네? 하고 뒤돌아 보니

어떤 할머니가 저만치 멀찍이 서서 

저를 보고, "안 들어갈 거예요...?"

작은 소리로 묻더군요.

 

???

"네, 안 들어가는데요...?" 하고
내가 건물에 들어갈 건지 아닌지 저 분이 왜 궁금하시징?

하는 순간, 알 것 같았어요.

그 분이, 어른 보행 보조용 유모차 같은 걸 앞에 잡고 있었거든요.

유리문은 제가 거울처럼 비춰 볼 수 있었으니... 닫혀 있었고

그 분은 아마 그 무거운 문을, 밀어 열 힘이 없었거나

보행차를 끌고 문을 잘 열 수 없었던가 봐요.

 

가까이 가서 "들어가시려구요?" 하니까

"어... 들어가는 줄 알고 막 쫓아왔는데..."
하시는 거예요. ㅎㅎ

막 쫓아왔는데 아직도 저에게서 그만큼이나 멀리 있었던 거였어요.

아니 뭐 문 열어 드리는 게 힘든 일일까요.

이리 오세요, 열어 드릴게요, 하고 열어 드리고

그 분이 천천히 들어가시는 걸 보고

다시 나오실 거면 문 닫지 말까요? 네, 안 닫을게요~.

하고 저는 제 볼일 보러 갔어요.

 

뭐 착한 일 했다는 게 아니고 ㅋㅋ

아... 정말, 어릴 땐 몰랐는데.

요즘은 저도 아무 이유 없이 어깨가 아파요. 팔도 아프고.

타자 많이 치니 손목도 아파요.

체력은 별로여도 악력은 누구에게 크게 지지 않는다는 쪼그만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젠 쨈병이며 돌려 여는 편의점 커피 병도 잘 못 열겠어요.

아직 열긴 여는데, 죽어라~ 힘줘서 열고 우와 손목 아파! 하고 고통스러워하고요.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러니 저에게도 천천히 걷는 날이 오겠죠.

지금은 쓱 밀고 지나갈 수 있는 두꺼운 유리문이, 큰 벽처럼 느껴지는 날도 올 거예요.

 

예전엔,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해도

그게 마치 사람들이 보드 타고 날아다니는 미래가 올 거라는 말처럼 

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젠, 그 날이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이든다는 건, 작고 약하고 희미해져 간다는 거.

언젠가 저도 똑같이 걸어갈 그 길을... 먼저 가는 사람들을 볼 때

멀고 낯설고 나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도울 수 있는 건 쓱 돕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기.

못 듣고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게, 잘 둘러보기.

그러고 싶어서 남겨 봐요.

IP : 112.146.xxx.207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4.4 11:25 PM (203.236.xxx.188)

    흐뭇하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 2. ..
    '24.4.4 11:34 PM (59.9.xxx.174)

    짝짝짝!!!
    참 잘했어요!!!
    ㅎㅎ 우리도 그런 날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죠.
    모임에 어떤 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남 일 갖지않고요.
    암튼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싶네요.

  • 3. 착한일
    '24.4.5 6:57 AM (59.6.xxx.156)

    맞죠. 착한 일 다정한 일 숨쉬듯하며 살고 싶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13113 영상분석으로 성범죄냐 무고죄냐 밝힌다니 4 ..... 2024/08/29 683
1613112 '처남 마약수사 무마 의혹' 이정섭 검사 탄핵 기각 10 ... 2024/08/29 1,407
1613111 싱크홀 사고 운전자가 23 무섭 2024/08/29 7,779
1613110 치매엄마랑 여행가는거 의미가 있을까요? 30 2024 2024/08/29 4,174
1613109 고3 수능 응시접수 개인적으로 하는건가요? 12 ... 2024/08/29 1,455
1613108 남의말에 신경 안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10 .. 2024/08/29 2,397
1613107 자동차 몇년 타고 바꾸세요? 26 ㅇㅇ 2024/08/29 3,625
1613106 보이싱피싱 조심 2024/08/29 627
1613105 추석선물 도라지정과 는 어떤가요? 25 ㅇㅇㅇ 2024/08/29 2,474
1613104 점심시간에 인도,자전거도로에 주차한 차들 이기 2024/08/29 514
1613103 마사지건 신세계네요 10 ㅇㅇㅇ 2024/08/29 3,211
1613102 남향집은 해가 어떻게 들어오길래 19 ... 2024/08/29 4,318
1613101 요양병원 보내는것 불효라고 생각하는 젊은 꼰대가 있었어요 8 ........ 2024/08/29 3,223
1613100 에르메스 오란 슬리퍼 편한가요? 5 슬리퍼 2024/08/29 2,345
1613099 고2 아이가 메니에르예요 14 마리 2024/08/29 5,025
1613098 고맙네요 2 2024/08/29 743
1613097 학군지 들어와서 치열하게 애들 키워 대입 끝나고 회상 3 입시끝난지 .. 2024/08/29 2,884
1613096 윤서결 운성녈 발음요 5 .. 2024/08/29 1,359
1613095 일없는 회사에서 일하시는분 6 123 2024/08/29 2,518
1613094 이화영ㅜ 14 ㄱㄴ 2024/08/29 4,283
1613093 난이도가 배타는거>샤니>물류 5470- 2024/08/29 634
1613092 묻고 싶다 2 ㅇㅇㅇ 2024/08/29 468
1613091 한강 수영장 범인 잡았데요 21 ㅂㅂㅂㅂㅂ 2024/08/29 23,537
1613090 죄국 입벌구 44 구라대마왕 2024/08/29 3,838
1613089 플라이투더스카이 브라이언의 매력을 알았어요 6 . 2024/08/29 2,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