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착한 일은 아니고

조회수 : 894
작성일 : 2024-04-04 23:18:03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어느 건물 1층 점포에 볼일이 있었는데 여긴 입구가 대로를 향해 있거든요.

보통의 가게나 카페처럼, 거기로 들어가면 돼요.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입구를 향해 가다가, 건물 옆에 난 유리문 앞에 섰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서, 급히 내려 걸어가던 제가 너무 거지꼴일 것 같아서요 ㅋㅋ

유리에 비친 머리를 보고, 대충 다듬고 얼른 지나쳐 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잘 안 들리는 소리로.

네? 하고 뒤돌아 보니

어떤 할머니가 저만치 멀찍이 서서 

저를 보고, "안 들어갈 거예요...?"

작은 소리로 묻더군요.

 

???

"네, 안 들어가는데요...?" 하고
내가 건물에 들어갈 건지 아닌지 저 분이 왜 궁금하시징?

하는 순간, 알 것 같았어요.

그 분이, 어른 보행 보조용 유모차 같은 걸 앞에 잡고 있었거든요.

유리문은 제가 거울처럼 비춰 볼 수 있었으니... 닫혀 있었고

그 분은 아마 그 무거운 문을, 밀어 열 힘이 없었거나

보행차를 끌고 문을 잘 열 수 없었던가 봐요.

 

가까이 가서 "들어가시려구요?" 하니까

"어... 들어가는 줄 알고 막 쫓아왔는데..."
하시는 거예요. ㅎㅎ

막 쫓아왔는데 아직도 저에게서 그만큼이나 멀리 있었던 거였어요.

아니 뭐 문 열어 드리는 게 힘든 일일까요.

이리 오세요, 열어 드릴게요, 하고 열어 드리고

그 분이 천천히 들어가시는 걸 보고

다시 나오실 거면 문 닫지 말까요? 네, 안 닫을게요~.

하고 저는 제 볼일 보러 갔어요.

 

뭐 착한 일 했다는 게 아니고 ㅋㅋ

아... 정말, 어릴 땐 몰랐는데.

요즘은 저도 아무 이유 없이 어깨가 아파요. 팔도 아프고.

타자 많이 치니 손목도 아파요.

체력은 별로여도 악력은 누구에게 크게 지지 않는다는 쪼그만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젠 쨈병이며 돌려 여는 편의점 커피 병도 잘 못 열겠어요.

아직 열긴 여는데, 죽어라~ 힘줘서 열고 우와 손목 아파! 하고 고통스러워하고요.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러니 저에게도 천천히 걷는 날이 오겠죠.

지금은 쓱 밀고 지나갈 수 있는 두꺼운 유리문이, 큰 벽처럼 느껴지는 날도 올 거예요.

 

예전엔,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해도

그게 마치 사람들이 보드 타고 날아다니는 미래가 올 거라는 말처럼 

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젠, 그 날이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이든다는 건, 작고 약하고 희미해져 간다는 거.

언젠가 저도 똑같이 걸어갈 그 길을... 먼저 가는 사람들을 볼 때

멀고 낯설고 나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도울 수 있는 건 쓱 돕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기.

못 듣고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게, 잘 둘러보기.

그러고 싶어서 남겨 봐요.

IP : 112.146.xxx.207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4.4 11:25 PM (203.236.xxx.188)

    흐뭇하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 2. ..
    '24.4.4 11:34 PM (59.9.xxx.174)

    짝짝짝!!!
    참 잘했어요!!!
    ㅎㅎ 우리도 그런 날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죠.
    모임에 어떤 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남 일 갖지않고요.
    암튼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싶네요.

  • 3. 착한일
    '24.4.5 6:57 AM (59.6.xxx.156)

    맞죠. 착한 일 다정한 일 숨쉬듯하며 살고 싶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20968 1988년부터 700만킬로 운행한 택시가 있네요. 기절초풍 2024/09/23 750
1620967 세면대 수전 물자국 안남게 하는법 있나요 10 나무 2024/09/23 3,238
1620966 약한 중풍이라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12 궁금 2024/09/23 2,450
1620965 시기질투로 지옥속에 사는 11 요즘 2024/09/23 4,970
1620964 반찬집에서 사는 반찬 좀 오래가는거 뭐 있을까요? 4 .. 2024/09/23 2,256
1620963 JTBC 뉴스룸 보고 있어요 12 명태균 2024/09/23 3,608
1620962 6인용 식세기 주문했어요 12 .... 2024/09/23 2,102
1620961 강아지 예방접종 다니던 병원으로 가서 접종해야하나요? 1 강아지 2024/09/23 735
1620960 김태효 집안 좀 파헤쳐주세요~~~ 8 ㄱㄴㄷ 2024/09/23 3,516
1620959 생숙-오피스텔 변경 12 ㅇㅇ 2024/09/23 1,868
1620958 단호박식혜 살짝 맛이가려는데 마실까요? 11 아깝 2024/09/23 858
1620957 뒤로 밀렸지만 웬지 귀여운 82글 7 ㅋㅋㅋ 2024/09/23 2,100
1620956 고기 억지로 먹으려는데 간편하게 먹는법 알려주셔요 27 . . 2024/09/23 2,318
1620955 (스포)백설공주에게 죽음을ᆢ나겸 11 가을 2024/09/23 3,936
1620954 우리나라 정치의식수준이 낮으니까 윤석열이 당선된것이고 36 ........ 2024/09/23 1,670
1620953 다음주에 초등 아이 서울로 수학여행 가는데요~ 에버랜드 포함 옷.. 14 수학여행 2024/09/23 1,395
1620952 봉지욱 기자가 전한 오늘 9시 특종 관련 정보 /펌 17 어우야 2024/09/23 3,790
1620951 식기세척기 추천 8 가을이야 2024/09/23 1,305
1620950 저 생산직 도전할려구요 5 싱글녀 2024/09/23 3,771
1620949 대통령 관저 비리 ‘전 정부 탓’ 버티던 김용현 항복? 5 이게나라냐!.. 2024/09/23 1,750
1620948 마흔후반 소개팅가는길인데 걱정되네요 12 2024/09/23 3,767
1620947 육아휴직하면 월급은 나오나요?(미국) 4 ... 2024/09/23 1,311
1620946 포인트조명시공이 어려울까요? 2 셀프 2024/09/23 369
1620945 김건희, 심야편의점 간 이유…"경호 군인들 간식샀다&q.. 52 ... 2024/09/23 6,909
1620944 밥 잘먹고 잠 잘자면 2 ㅇㅇ 2024/09/23 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