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착한 일은 아니고

조회수 : 824
작성일 : 2024-04-04 23:18:03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어느 건물 1층 점포에 볼일이 있었는데 여긴 입구가 대로를 향해 있거든요.

보통의 가게나 카페처럼, 거기로 들어가면 돼요.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입구를 향해 가다가, 건물 옆에 난 유리문 앞에 섰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서, 급히 내려 걸어가던 제가 너무 거지꼴일 것 같아서요 ㅋㅋ

유리에 비친 머리를 보고, 대충 다듬고 얼른 지나쳐 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잘 안 들리는 소리로.

네? 하고 뒤돌아 보니

어떤 할머니가 저만치 멀찍이 서서 

저를 보고, "안 들어갈 거예요...?"

작은 소리로 묻더군요.

 

???

"네, 안 들어가는데요...?" 하고
내가 건물에 들어갈 건지 아닌지 저 분이 왜 궁금하시징?

하는 순간, 알 것 같았어요.

그 분이, 어른 보행 보조용 유모차 같은 걸 앞에 잡고 있었거든요.

유리문은 제가 거울처럼 비춰 볼 수 있었으니... 닫혀 있었고

그 분은 아마 그 무거운 문을, 밀어 열 힘이 없었거나

보행차를 끌고 문을 잘 열 수 없었던가 봐요.

 

가까이 가서 "들어가시려구요?" 하니까

"어... 들어가는 줄 알고 막 쫓아왔는데..."
하시는 거예요. ㅎㅎ

막 쫓아왔는데 아직도 저에게서 그만큼이나 멀리 있었던 거였어요.

아니 뭐 문 열어 드리는 게 힘든 일일까요.

이리 오세요, 열어 드릴게요, 하고 열어 드리고

그 분이 천천히 들어가시는 걸 보고

다시 나오실 거면 문 닫지 말까요? 네, 안 닫을게요~.

하고 저는 제 볼일 보러 갔어요.

 

뭐 착한 일 했다는 게 아니고 ㅋㅋ

아... 정말, 어릴 땐 몰랐는데.

요즘은 저도 아무 이유 없이 어깨가 아파요. 팔도 아프고.

타자 많이 치니 손목도 아파요.

체력은 별로여도 악력은 누구에게 크게 지지 않는다는 쪼그만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젠 쨈병이며 돌려 여는 편의점 커피 병도 잘 못 열겠어요.

아직 열긴 여는데, 죽어라~ 힘줘서 열고 우와 손목 아파! 하고 고통스러워하고요.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러니 저에게도 천천히 걷는 날이 오겠죠.

지금은 쓱 밀고 지나갈 수 있는 두꺼운 유리문이, 큰 벽처럼 느껴지는 날도 올 거예요.

 

예전엔,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해도

그게 마치 사람들이 보드 타고 날아다니는 미래가 올 거라는 말처럼 

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젠, 그 날이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이든다는 건, 작고 약하고 희미해져 간다는 거.

언젠가 저도 똑같이 걸어갈 그 길을... 먼저 가는 사람들을 볼 때

멀고 낯설고 나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도울 수 있는 건 쓱 돕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기.

못 듣고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게, 잘 둘러보기.

그러고 싶어서 남겨 봐요.

IP : 112.146.xxx.207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4.4 11:25 PM (203.236.xxx.188)

    흐뭇하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 2. ..
    '24.4.4 11:34 PM (59.9.xxx.174)

    짝짝짝!!!
    참 잘했어요!!!
    ㅎㅎ 우리도 그런 날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죠.
    모임에 어떤 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남 일 갖지않고요.
    암튼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싶네요.

  • 3. 착한일
    '24.4.5 6:57 AM (59.6.xxx.156)

    맞죠. 착한 일 다정한 일 숨쉬듯하며 살고 싶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599342 김ㄱㅎ가 아무도 못건드리는 이유가 뭔가요? 33 ㅁㄴㅇ 2024/06/25 7,606
1599341 해병대 예비역 연대, 한동훈의 특검 제안, 진정성 없다 2 가져옵니다 2024/06/25 1,059
1599340 임성근과 김건희의 연결고리가 드러나는건가요? 12 2024/06/25 2,776
1599339 jtbc 한건 했네요 - 임성근이랑 도이치모터스 공범 대화 내용.. 23 로마 2024/06/25 5,088
1599338 제육양념에 식초를 넣었어요..ㅠㅠ 16 .. 2024/06/25 3,351
1599337 강남지역 선호 생수? 7 관계자 2024/06/25 1,960
1599336 당근 옷판매시 보고 사가겠다는 사람 14 당근 2024/06/25 3,746
1599335 서울 아파트, 역대 최고가 찍었다 16 그렇구나 2024/06/25 4,889
1599334 오이피클 망했어요ㅠㅠ 5 짠지 2024/06/25 1,559
1599333 강릉 볼거 많나요? 10 ........ 2024/06/25 2,317
1599332 저 머위대로 크림스파게티? 했어요. 6 ... 2024/06/25 1,202
1599331 매달 4500 쓴거면 일년에 5억5천 카드값이라고 했을듯 12 00 2024/06/25 4,789
1599330 요즘 부고가 잦네요 4 요즘 2024/06/25 2,806
1599329 다이슨 에어스트레이트너 질문이요 2 ... 2024/06/25 1,209
1599328 체인 미용실 준*헤어 이런곳은 컷트비... 3 2024/06/25 2,061
1599327 윤석열이 유일하게 열심히 하는 일 한가지 9 ..... 2024/06/25 2,969
1599326 뚜레쥬르 대리점 하는 사장이 41 ? 2024/06/25 22,898
1599325 정부가 보험사에 개인자료를 넘겼나봐요 7 기괴하다 2024/06/25 2,297
1599324 복지부가 말하는 OECD 평균 6 우리의 앞날.. 2024/06/25 1,169
1599323 6/25(화) 마감시황 나미옹 2024/06/25 635
1599322 방울토마토 싸네요.위메프 2 annie2.. 2024/06/25 1,718
1599321 “이재명, DJ만 가본 길 간다”...사표 내고 연임 도전 공식.. 20 .... 2024/06/25 1,790
1599320 국회 불출석 박민 KBS 사장, 최민희 "대통령 부르면.. 5 어이상실 2024/06/25 1,805
1599319 저렴두유제조기 껍질안벗기면 덜 부드러울까요 3 땅지맘 2024/06/25 864
1599318 필독서 추천 부탁드립니다. 18 ㅇㅇ 2024/06/25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