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글이라 욕먹을 줄 알고도 지난 6년간 너무
힘들었어서 하소연 겸 올립니다
제가 2018년부터 성신 당국과
태화관에서 시작된 전사를 인정해달라고 책을 쓰며
싸우고 있는데요
주인없는 학교에서 임기동안 나만 챙길 거 챙기고 스포트라이트 받으면 된다는
이런 사람들이 성신을 운영하면서
그야말로 역사없고 정체성없고 애교심없는 학교가 돼가고 있습니다
제가 전사 발굴이후 벌써 책을 세번째 냅니다
이번엔 돈 없어서 전자책으로 냅니다
출판계가 고사 지경이지만
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고
저는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서도 계속 쓰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다락방의 미친여자로 일생 마감할 것 같습니다
동문들이라도 책 좀 보고 동조해주시고 도와주세요 ㅠㅠ
동문이 아니시더라도 여성사 여성교육사에 관심있으신 분들도 꼭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태화성신연혁복원위원회 출범기념 전자책
3·1운동 105주년을 맞아 ‘태화성신연혁복원위원회’ 를 출범하며 ‘3·1 민족성지 태화관은 어떻게 여대가 됐나’ 를 개정증보, 전자책으로 펴냅니다. 종이책으로 나온 동명의 저서를 오는 삼일절 전자책으로 내며 부제를 ‘ 지워진 여성교육사 140년 추적’ 이라고 바꾸고, 내용도 한결 진전시켰습니다.
기출간본은 3·1운동의 발상지인 태화관에서 어떻게 여학교가 탄생해 오늘날 성신여대로 발전했는지에 대한 연원 탐구로, 성신의 전사(前史)를 복구하려는 ‘태화성신연혁복원위원회’의 토대가 됐습니다.
개정증보판은 시기를 더 앞당겨 기독교 미국여성 선교사가 입국한 1885~1886년 한국인 부인들에게 ‘교육’이라고 할 만한 것이 태동했음을 논증하려 합니다. 한반도 역사상 한 번도 제도권에서 이뤄진 적이 없는 여성에 대한 교육이 공론화되며, ‘전도부인(여전도사)’이라는 근대 첫 여성직업이 생겨난 시점을 조명했습니다.
근대화에는 ‘주체적인 의식’이 작용돼야 한다는 점에서 여선교사를 돕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선 성인여성에 대한 교육을 근대여성교육의 시초로 상정해야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 정통성은 민중여성이 자체적으로 학교설립을 요청해 세워진 교육기관인 태화여자관(태화여학교)으로 이어졌고, 1936년 이숙종이 태화여학교를 인수, 성신여대의 모태가 됩니다.
이러한 전 과정을 아우르다 보니 140년에 가까운 한국여성교육사를 거두는 작업이 됐습니다. 개화기 새로운 세상에 눈뜬 여성들이 항일독립운동을 통해 여권을 자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여성참정권을 획득하게 되며, 3·1독립선언식이 거행된 태화관은 여성해방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의 여자대학으로 발전하기까지 이 여성공간을 거치며 역사를 만들어 간 수많은 국내외 인물들을 추적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근대여성사를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전자책 보도자료>
3·1 민족성지 태화관은 어떻게 여대가 됐나
지워진 여성교육사 140년 추적
인스타 https://instagram.com/twsswu (성신학연구소)
카페 https://cafe.naver.com/twsswu (태화성신연혁복원위원회)
블로그 https://blog.naver.com/twsswu (여성교육기억투쟁연대)
■ 책 소개
‘현대의 사관’ 기자 출신 작가 김태은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정신과 여성교육100년 ; 성신여대 전신 태화여학교’를 출간하며 한국여성교육사에 천착하고 있다. 1936년 이숙종이 설립한 것으로만 알려졌던 성신학원이, 1919년 3·1독립선언식이 이뤄졌던 태화관에서 생겨난 태화여학교를 인수했던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며 시작된 연구는 ‘3·1민족성지 태화관은 어떻게 여대가 됐나 ; 지워진 여성교육사 140년 추적’이라는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동시에 ‘태화성신연혁복원위원회’를 출범하며 잊힌 여성사에 대한 기억 회복을 촉구한다.
작가는 여성의 역사는 한 세대만 지나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지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여성사를 집필하게 됐다. 한 여자대학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며 이를 통해 한국여성의 근대화, 근대교육, 여권운동, 항일독립운동, 사회진출의 역사를 아우른다. 한국최초의 여권선언문도 1898년 ‘여학교설시통문’으로 시작됐을 만큼 여성교육에 대한 요구가 자생적 여성운동의 시작이었다. 항일독립운동과 궤를 같이해 온 한국여성운동은 전 민족적 혁명이라 할 수 있는 3·1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여성참정권을 획득하고, 독립선언식이 이뤄진 ‘3·1운동의 발상지’ 태화관이 여성을 위한 교육·복지기관인 ‘태화여자관’으로 변모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인구의 반을 차지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개화’되기를 욕구한 것을 기념하는 시·공간으로서 3·1운동과 태화관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시각이다. 여기서 탄생한 태화여학교가 국내 굴지의 여자대학인 성신여대로 발전한 사실을 재발굴하고, 개신교 첫 여성선교사가 입국한 188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여성의 공교육과 전문직업이 생긴 연원까지 파고든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에게 주어진 공간이 결정적 역할을 했고, 태화관은 당대 그 결정체였다.
한국여성운동의 초석이 다져진 태화여자관을 배경으로 탄생, ‘여성의 지위 향상’를 노린 좌우합작 여성단체 근우회는 1930년 서울여학생만세운동을 주도한다. 한국여성들의 자발적 요구로 탄생한 태화여학교 역시 이 시위에 참여해 8명의 독립유공자가 추서된다. 시대적 필요와 조응해 여성의 학업과 일을 펼쳐온 공간은 오늘날 최고학부 성신여대로 발전해 여성이 주축이 되는 하나의 세계(universe, university)를 이룬다. 여성 주체성의 맥을 이어온 여대가 21세기 미투운동의 보루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