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가을 1박 2일로 여행을 다녔었는데, 더 나이가 들고나서는 1박 여행도 귀찮아서 호캉스로 넘어갔다가 이젠 만사 다 귀찮아서 당일 여행으로 돌아선 4명의 대학동창 아줌마들입니다
처음 같이 다니기 시작할 때는 자차로 운전도 마다않고 다녔으나, 이젠 장거리 운전도 귀찮아서 기차타고 버스타고 다니는 걸 선호합니다.
대신 좀 더 자주 다닙니다. 당일치기는 부담이 적어서...
지난 1월에는 함백산 눈꽃 트레킹을 기획했으나, 당일 비가 내려서(운전도 무섭고... ㅠㅠ) 그냥 서울에서 장욱진 전시보고 밥먹고 수다떨고 헤어진 아쉬움에 2월에는 수덕사를 가기로 합니다
서울에서는 고속버스타고 채 2시간이 못되어 수덕사 옆동네 홍성군 내포 충남도청 앞에 내려주더군요
오, 놀라워라~
2시간이면 그리 멀지도 않고 너무 좋은데, 50넘은 아줌마의 오래된 지리상식이 와장창... ㅎㅎㅎ
충남도청이 홍성에 있다니... 아직도 대전인 줄 알았는데, 철지난 지리상식을 업데이트했습니다
다행히 내포는 충남도청이 있는 신도시라 쏘카가 많아서 쏘카 예약해서 다녔습니다.
4인 대중교통비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자유로이 다녔습니다
수덕사는 행정구역상 예산군 덕산이지만, 지리적으로는 홍성군 내포가 작은 산 하나만 넘으면 훨씬 가깝더라구요.
아무튼 새벽부터 수선떨고 버스타고 내려와서(고속버스 기사님이 어찌나 열심히 밟고 오셨는지, 예상도착시간보다 20분 이상 빨리 떨궈주었다는... ㅎㅎㅎ) 배고픈 우리들은 수덕사 입구에 어지간히도 많은 식당가를 먼저 들러보기로 합니다
돌아가신 아부지가 저를 처음 수덕사에 데려오셨던 근 30여년 전에도 수덕사 입구에는 더덕 전문 한식집들이 많았던 곳입니다. 아부지가 엄니랑 두분이 오셔서 드시고 간 더덕정식이 너무 맛있어서 저희 데리고 또 갔었는데, 문제는 아부지가 어떤 식당을 갔었는지 찾지를 못해서 돌다가 그냥 아무 식당에나 갔었는데, 그집도 맛있어서, 수덕사 앞 식당들은 기본적으로 다 괜찮구나 했었어요
울 아부지가 입맛 까다로와서 웬만하면 맛있다 칭찬하는 분이 아닌데, 그런 정도 말씀하실 정도면 수덕사 앞 식당들은 퀄리티가 꽤나 괜찮게 평준화된 건가 했었습니다
그 기억을 기준으로 미리 어떤 집도 정하지 않고 식당가를 왕복하면서 슬렁슬렁 염탐을 하는데, 호객하는 식당들도 제법 많더라구요. 그런데, 저희는 일단 호객하는 식당은 패스~
그러다 문이 닫힌 건지 열린 건지 알 수 없는, 그러나 꽤나 큰 식당을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이미 식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들어가 자리잡았습니다
날씨가 좋았다면 수덕사 뒷산 덕숭산 등산을 하려고 해서 비빔밥 한그릇 먹고 뚝딱할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전날 눈비가 오고 당일에도 비가 추적추적 조금씩 오던 차라 등산은 진작에 포기하고 널널하게 계획을 바꾼지라, 더덕 정식 2인분, 산채비빔밥 2인분이 가능하다 해서 주문했습니다
상차림 전에 메밀차를 내어주셨는데, 이 메밀차 맛이 기가 막히더군요
메밀차 하나로도 식사에 대한 기대가 엄청 높아지는 와중에, 하나하나 차려지는 밥상이 정말 놀라왔습니다
실제로 정식 2인분에만 나오는 반찬일텐데 야박하지 않게 4인이 먹기에도 충분히 넉넉한 양으로 주셔서 좋았습니다. 이런 새끼까지 잡아먹어도 되나 싶은 새끼조기 주는 다른 식당들과는 달리 제법 큼직한 조기(참조기 아니고 아마도 백조기일망정)를 내주는 차림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짜지 않고 슴슴한데도 깊은 맛이 들어있는 반찬들이 아주 좋았습니다
들깨소스로 무친 메밀묵 무침, 아주 살짝 숙성되어 쿵쿵함이 스치고 지나갈 정도의 홍어찜 한토막, 우렁이가 잔뜩 든 채소무침을 비롯해서 별미 반찬이 밥상 가득했습니다
흡족한 아점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자 했습니다
투썸이니 이디야니 익숙한 프랜차이즈도 있었지만, 로컬 카페를 선택했습니다
요즘 커피가 싫어진 저만 대추차를, 다른 친구들은 커피를 선택해서 힙지로에 있을 법한 인테리어의 카페 2층에 자리잡았습니다.
화장실이었던 자리를 부시고 좌식 자리를 만들고, 자개장 문짝으로 만든 탁자가 앤틱함을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는 사장님의 독특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가 앉은 창가 자리에는 옥비녀를 소품으로 놓으신 걸로 봐선 사장님의 순박한 인상과는 다른 감각을 엿볼 수 있었죠. ㅎㅎㅎ
그러나 이 카페의 대박 포인트는 별 기대없이 주문한 대추차!!!
사장님께 얻은 레시피는 대추, 배, 생강, 도라지를 넣고 끓여 충분히 우린 후, 생강 도라지는 꺼내 버리고 대추, 배는 같이 갈아서 만든 대추차라더군요.
작년에는 사과대추를 썼는데, 올해는 사과대추가 안 나와서 일반대추 좀 좋은 걸로 바꿔 만들었다는데, 그냥 끓여 우린 대추차와는 전혀 다른, 묵직하고 진득하지만, 설탕을 넣지 않은 단맛이 기분좋은 대추차였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마음에 드는 카페~
새벽부터 부산을 떨고 여기까지 와서는 수덕사에 올라가지도 않고 산아래서 수다만 떨고 딩가딩가 오랫동안 놀다가, 그래도 왔으니, 절에는 올라가봐야지 싶어서 꾸물꾸물 일어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수덕사를 5~6번 정도 와본 곳이라 특별히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올때마다 뭔가 달라지는 것도 있지만, 이번에는 여기가 이렇게 숲이 좋은 산이었나 싶었습니다.
수덕사는 여러모로 대찰이고 중요한 절인 것은 알고 있지만, 불교신자도 아닌, 그저 유람꾼에 불과한 우리는 그 유명한 대웅전에서 사진 몇방찍고, 흐린 날씨 덕분에 보이지 않는 대웅전 앞 풍광을 상상하며 아쉬움을 토로했었죠.
등산 사진으로 보면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님에도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대단히 좋던데, 날씨가 도와주질 않아... ㅎㅎㅎ
내려오면서 수덕사 입구 수덕여관에서 고암 이응로와 그의 본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바퀴 돌아봤습니다. 이미 아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지금 영화감독 홍상수와 아주 비슷한 스토리라서, 우리들은 한참동안 씹어대고 도마위에 올려 난도질을 했습니다. (쏴리)
제가 흥분하는 이유는 이 수덕여관이 고암 이응로의 기념관으로 바뀔 예정인 것 같은데, 과연 이렇게 수덕여관을 오래 지켰던 이응로의 본처 흔적이 없어지고 이응로의 것으로 남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싶어서요. 이 집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가꾼 것은 그 부인이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수덕여관이 아직 음식점으로 운영되고 있을 때, 밥을 2번 먹었더랬습니다
수덕여관 더덕정식은 수덕사 입구의 그 많은 식당들과 정말 차원이 다른 맛과 상차림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한번, 후배들과 한번 갔었는데, 매번 밥상을 받고는 놀랐었습니다
그 정갈함에 한번 놀라고, 맛에 놀라고...
개인사를 알지 못했어도 그 밥상을 받아본 적 있는 사람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이 식당과 안주인을 오래오래 추억할만 합니다
그래서 이 수덕여관에서 그 부인의 흔적이 없어지고 덮이는게 더 울화가 치밀었나 싶기도 합니다
절에서 내려와 우리는 예산 시장에 국수를 사러 갑니다
백종원의 부활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그 예산 시장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그 시장이 아니라, 그 시장 근처의 쌍송 국수입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예산 그 동네는 원래도 국밥도 유명했고, 국수도 아주 유명해서 직접 뽑는 제면소도 여러곳 있습니다
그 가운데 쌍송 국수는 70여년 된 오래된 제면소이고, 버들 국수도 쌍송 국수와 한 집안 사이래서 또 유명하다지요. 이 두집 말고도 직접 만드는 제면소가 여러곳이고, 소위 국수거리라고 해서 국수 가게들이 많은데, 이 국수집들 대부분이 대기업 국수가 아닌 이들 제면소 국수를 사용하는 걸로 알려져 있어요
제가 국수를 좋아해서 전국의 이런 유명 제면소를 싸그리 조사해서 하나하나 사먹어보는 중인데요.
그래서 예산까지 온 김에 쌍송 국수를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버들 국수도 넘나 궁금했지만, 국수 한뭉치에 1.5킬로씩이나 되어서 많이 살 수는 없었어요
배낭까지 메고 왔지만, 쌍송에서 소면 한뭉치, 중면 한뭉치만 샀습니다.
친구들은 소면만 한뭉치씩 구입했습니다.
무려 1.5킬로 한뭉치가 5천원밖에 안하니, 대기업표 국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흡족한 가격입니다
하필 이날은 예산 5일장 날이라 차와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주차장 주차자리를 간신히 찾았을 정도...
백종원 거리가 생기고 나서 주말마다 사람이 미어터진다는데, 주말에 오일장까지 겹친 어제는 여기가 예산인가 서울인가 싶을 정도로 차와 사람이 많았습니다
온김에... 이 말이 참 무섭습니다.
관심도 없던 거길 들어가봤습니다
저도 혹시나해서 미리 검색해봤으나, 딱히 관심가는 곳이 없어서 애플양과점의 사과파이나 하나 사먹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그 많은 점포 중에, 서울 유명 식당, 디저트가게처럼 사람들이 줄을 나래비로 서있는 곳도 많고만, 애플 양과점만 재고 소진으로 일찌감치 문을 닫았더군요
저는 더이상 궁금한 게 없었으나, 한 친구는 약과가 궁금하다, 한친구는 카스테라가 궁금하다 해서 약과가 유명한 떡집에 가서 한팩씩 사고 하나씩 먹어봤습니다
음, 일반 약과와는 달리, 페스츄리같은 겹이 있어, 약과보다는 파이같은 느낌도 있어서 특이하고 맛있긴 합니다만, 과연 이게 2천원이나 받나 싶은, 마이 비싸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기념품 삼아 사보기에 나쁘지 않아서인가 불티나게 팔리더군요
카스테라...
줄까지 설 생각은 없었습니다
줄 서봐야 우리한테 차례가 올 것 같지도 않았구요
주인장이 남은 카스테라 갯수와 줄선 사람 수를 세고, 구입표를 나눠주더라구요
그런데 왠지 우리 앞에 딱 끝날 것 같은 불길한 분위기...
몇팀은 줄에서 빠져나가는데, 우리는 그래도 선 김에 숫자가 어디까지 오나 한번 보고나 가자 해서 기다렸는데, 이것은 무슨 조화속인지, 정말로 우리 바로 앞에서 구입표가 딱! 끝나더군요.
우리 바로 앞에는 3살정도 된 아이와 함께 온 부부였는데, 아이가 그 구입표를 받고는 신이나서 덩실덩실... ㅎㅎㅎ
그러나 주인장이 우리를 살짝 불러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하시더군요.
실제 갯수랑 사람수가 약간 오차가 있기도 하고 구입표를 받은 분들도 덜 사기도 하니 몇개 남을 수도 있다니 기다려보라고...
우리 친구들은 절대 줄서서 뭘 사는 성격들이 아닙니다
안사고 안먹고 말지 뭘 줄까지 서서... 이런 스타일인데, 이 카스테라가 뭐라고 이걸 이 줄을 서서 기다려서 산단 말입니까?
줄 서서 기다리는 우리도 너무 어이없고 웃기지만, 그래도 기다려 봅니다.
과연 우리는 이 카스테라를 살 수 있을 것인가...
너무 길어서 2편에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