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저는 최대한 명정에 애들 데리고 다닐까봐요.

조회수 : 3,028
작성일 : 2024-02-12 23:20:29

저는 이제 40대에 곧 중학교 들어가는 아이와, 초등학생을 키우는 엄마에요. 

 

저역시 평균적인 대한민국 분위기에서 자라서 명절에 특히 추석에 중간고사가 바로 뒤여서 큰집에, 외가에 가네 마네, 하지도 않을 공부할 책을 괜히 싸가지고 가고 크리 크지도 않고, 마당도 없는 전형적인 한국식 아파트 방 하나에 애들이 다 몰려 들어가있어서 사실 명절이 되게 좋고 기다리고 즐거웠던 기억은 별로 없어요. 어려서는 사촌들하고 이렇게 저렇게 잘 놀았죠. 중학생 이후의 그 데면데면하고 할말도 별로 없는 그 분위기.. 저역시도 그렇게 자라왔죠. 

 

그런데 40이 넘으면서 제가 아이를 낳고 기르고, 부모님을 떠나보내니... 공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는 방법을 가르쳐줘야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제가 결혼할때, 아기를 낳았을때 모든 세상이 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제 결혼식에 와주시는 어른들 그냥 다 엄마 아빠 손님으로 치부하고 감사함 마음도 없었고, 아기를 낳으면 그냥 자동으로 당연히 축하와 물질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철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갑작스럽게 아버지와 시아버지를 잃고, 어려서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바라보던것들이 생각이 나고, 큰 슬픔앞에서 우리 아빠가 죽어가요,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게 되었어요. 최근 만난 횟수와 크게 관계 없이요.  

 

엄마 친구분 남편이 암진단을 받았는데 입원비랑 치료비에 보테라고 슬픔을 맞닥트린 친구에게 건네는 하얀 봉투, 우리 아빠가 죽어가고 있을때 병문안 오던 사촌들, 고모들이 보내주신 치료비, 딸만 둘인 우리집인데 운구를 동와주시고 장지까지 따라와주신 전 별로 말도 많이 안나눠본 친지들, 이제는 형제가 적어서 조의금 받을 사람이 없어서 퇴근후 고생해준 사촌, 남편이 죽었다고 3일 와보고 장지까지 엄마의 친구들,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드리는 전화 한통화, 문자들, 고맙웠다고 큰위로가 되었다고 만나서 사는 밥, 다는 밥을 못사니 회사에 전하는 작은 답례, 그리고 계속 지키려는 고마웠던 사람들의 기쁜일과 슬픈일에 나도 갚고 싶다는 마음과 행동. 그런거는 자식에게 말로 가르치는게 아니라 보고 자라고 스며드는것 같아요. 

 

남편 사촌이 시아버지 장례식장에 6학년아들과 함께 문상을 왔는데 저희 아들도 간간히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주면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인사하고, 어떻게 위로하고, 어떻게 대답하고.. 어려서 몇번이라도 만난 사이는 그게 더 수월하게 가능하더라고요. 인사도 위로도.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아둥바둥 살아봤자 허무하게 죽는것이 한순간이라는것을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두번이나 잔인하게 목격하고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부모의 죽음앞에 얼마나 많은 도움과 위로가 필요하던지요. 중년의 의 나이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낳은 자식들은 그와 중에 장례식장에서 어찌나 싸우고 있던지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많은 관계가 일년에 한번 만나면 많이 만나는 관계도 많은것 같아요. 다 부질없고, 내 가족만 챙기고 사는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기쁠때 그리고 어려울때 나를 생각하는 사람의 진심이 인생에 얼마나 큰 씨앗을 뿌리는지 알게 되었어요. 

 

더 어려서 알 수 있었다면 30대 사별한 제 친구 남편 발인에 장지까지 따라가는건데, 돌쟁이 아기는 엄마한테 맡길 수 있었는데...

 

인생에 다음에 내 차례가 있을 때 갚는다고 생각해도 다음이 없는 인연도 많다는 걸 알았다면 고맙고 기쁘고 한 그 순간에 충분히 감사와 기쁨과 축하를 표현할걸. 

 

저는 양쪽집 모두 차례나 제사가 없는 집이고, 다 서로 나름 근거리에 살아서 명절을 애들에게 어떻게 인식시켜줘야하나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날이 그날같은 하루중 하나가 안되게 하려면 어찌해야할까. 우리 세대 보통 형제 자매 두명정도에, 제 아이들은 사촌도 단 한명이어서 그 아이들의 미래는 아마 또 제가 상상하지 못하는 시절이고, 제가 죽어도 특별하게 도와줄 친척도 없고, 가족장으로 부의금은 키오스크로, 운구는 로봇수레같은데 실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시시콜콜 나누고 친하지 않더라도  기쁘고 축하해줄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충분히 축하하고, 위로할일이 있으면 깊이 위로해주는 단 몇번의 경험만 애들이 가진다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연휴 마지막날 아버지, 시아버지 안계신 설을 처음으로 맞으며 그냥 애들을 어떻게 키울까 마음을 여기에 이렇게 써봅니다. 

IP : 122.36.xxx.56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2.12 11:35 PM (125.178.xxx.15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음 좋겠는데
    바로 위에 놀라운 사건이 있어 묻혀서 아쉽습니다

  • 2. Aa
    '24.2.12 11:43 PM (210.205.xxx.168)

    저도 엄마가 암진단을 받으시고 입원하고 수술하시고 또 한번 더 수술하시고... 이런 과정중에서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한 친인척들과 몇몇 지인들의 관심과 위로가 그렇게 큰 힘이 될줄 몰랐어요.. 사람들과의 관계를 특히나 버거워해서 만나는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던 제가 정말로 그렇게나 나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지 그때 처음 알았거든요.. 지금도 그때 힘이 되주었던 그분들의 마음이 저에게 깊이 새겨져있는 것 같고 아직도 많이 감사합니다. 저도 큰일을 겪어보기 전엔 몰랐던 것들이지만..원글님 글 읽고보니 저희아이들에게 어렴풋이라도 그런 관계의 소중함을 알려주고싶네요.

  • 3. 성장기에
    '24.2.13 12:56 AM (124.53.xxx.169)

    집안 어른들 자주 접하던 아이들이 대체로 반듯하고
    부모에게도 공손하고 그럴걸요.
    어릴때부터 보고 배우는거 평생을 갈걸요.
    원글님도 반듯한 사람 같아요.
    자식은 내가 키우는거 같아도 꼭 그런것 만도 아니더라고요.

  • 4. ㅇㅇ
    '24.2.13 2:27 AM (76.150.xxx.228) - 삭제된댓글

    수십년이 지나 다시 만나도 항상 곁에 있었던 것 같은 이들은 오로지 혈연 뿐이죠.
    베프? 다 소용없어요.

  • 5. 많이
    '24.2.13 2:40 AM (223.38.xxx.196)

    공감해요!
    많은 분들이 보시기를...

  • 6.
    '24.2.13 7:21 AM (122.36.xxx.56)

    용기내서 써봤는데, 감사합니다.

    제일 중요한건 어른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게 가장 중요한것 같아요.

  • 7. ....
    '24.2.13 8:18 AM (58.29.xxx.1)

    좋은 글 저도 잘 읽었습니다.
    저희 손윗시누네가 아이들한테 다른 건 몰라도 집안행사 참여나, 해야할 인사치레는 꼭 시키는 편이라 걔네들 애기때부터 행사때 제가 쭉 봐왔어요.
    고 3인데도 어김없이 와야하는 날 오더라고요.
    애들 다 반듯하게 자랐고 고3짜리 애는 엄청 좋은 학교 들어갔네요.
    하기 싫은 것도 하고, 가야할 자리는 꼭 참석하는 거고 이런 규칙을 배우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아요

  • 8. 저는
    '24.2.13 9:01 AM (223.33.xxx.91)

    얘기하시는 의미가 뭔지알죠 좋은얘기에요
    그런데 그 틈에서 며느리로 버티는게 너무 제 개인희생이었어요 희생이라 계산해보고 안하겠다가 아니라 여기저기 두들겨맞고 나가떨어졌어요 저는

    시댁이 행사참여 엄청시키고 배려고 뭐고 없이 들이대서 많이끌려다녔고 저역시 오지랖은 없어도 선의와 배려 예의있는 사람이라 거절못하고 좋은얼굴로 많이 끌려다녔는데 그 선의를 끝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들

    시아버지 돌아가시고도 친지들이 많이도우셨고 저도 돌쟁이 떼어놓고 이것저것 많이했지만 저는 무슨 종년인줄요
    슬퍼하다가도 밤엔 누가 얼마를 가져왔냐 걔는 왔냐 야무지게따지는 시모시누보면서 깜놀했지만 저것도 다 한국의 장례문화구나 했어요

    어디건 끌고다녀 자녀교육에 좋다고 저희 시누도 입찬소리했지만 본인은 친정일에만 똘똘뭉쳐 즐겁게 다닌건데 그럼 저는 시댁이 아니라 친정을 가야죠

    좋은얘기 너무 좋고 따뜻한데 이렇게 애안낳고 이혼하고 여기 욕쓰는 상처받은 사람들도 으쌰으쌰 성향의 사람들에게 많이 데였고 못버텨서 자존감 지키는 한 방식인거같아요

    님네 가족이 서로 많이 사랑하던 시기에 많이 슬퍼하셨고 친지들도 미움없이 좋은마음으로 잘 위로 받으신듯요

    유난스럽게 몰려다니던 시댁은 저는 서열 저 아래라 겉으론 티도안냈는데 돈 , 말 이런것들로 스스로 다 멀어졌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556400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힘든 사람이 어디있냐고 쓰신 댓글 보고 10 체리샴푸 2024/02/15 2,332
1556399 패키지여행시 아시아나좌석 16 ... 2024/02/15 3,013
1556398 이번 선수 불화설에 이천수 생각 올렸네요 6 ... 2024/02/15 4,634
1556397 부산분들 구찌좋아하는듯 24 부산 2024/02/15 4,089
1556396 경험적으로 봤을때 2 .... 2024/02/15 732
1556395 개통 폰 두개 있음 좋은 점 뭘까요? 3 ㅇㅇ 2024/02/15 766
1556394 기간제 교사 건강검진비는 자비인가요? 12만원 나옴 14 유리지 2024/02/15 2,604
1556393 거절한게 미안해서 다시 연락했는데.. 3 2024/02/15 3,071
1556392 세척기 세제 추천해주세요 9 추천요망 2024/02/15 1,205
1556391 50대이상인분들 화장할때 8 ll 2024/02/15 4,454
1556390 전청조 12년형은 중형인가요? 6 ... 2024/02/15 1,902
1556389 다음주 비오는데 도로주행을 신청할까요 말까요 5 도로주행 2024/02/15 685
1556388 핸드폰 소액결제사기 어찌해냐하나요. 1 ... 2024/02/15 1,219
1556387 부모 면전에서 이런 말하는 고등 딸.. 어떻게 생각하세요? 41 .... 2024/02/15 8,204
1556386 혈압 주의 ! 1 EEE 2024/02/15 1,959
1556385 비대면 진료와 PA간호사 역할 확대가 의사들한테 많이 안좋은가요.. 8 국민 2024/02/15 1,437
1556384 작년 여름 CT결과 양호했으면 올해 건강검진 조금 늦게 해도 되.. 1 ... 2024/02/15 1,186
1556383 먹은거 그대로 두는 습관 4 .. 2024/02/15 2,486
1556382 휴지에 정수기물 적셔서 눈 가를 스윽 닦았는데 ... 5 ㅇㅇ 2024/02/15 4,101
1556381 아이잗바바 패밀리세일 임직원코드 올려주신분 2 구매 2024/02/15 3,874
1556380 제 자신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김근태상 받은 박정훈 대령 7 가져옵니다 2024/02/15 1,461
1556379 운동 두가지 하시는 분 계세요???? 14 ㅇㅇ 2024/02/15 2,456
1556378 워렌버핏이 본인 주식중에 애플 몇퍼센트 보유하고 있나요? 1 ., 2024/02/15 1,126
1556377 관리가 별거 없네요 3 .. 2024/02/15 3,454
1556376 야채가 비싸니 ㅠㅠ 5 ㅇㅇ 2024/02/15 3,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