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이렇게 한자락 글
마음가는대로 올려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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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의
의식혁명 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당시 너무 어렵고 졸렸지만
의식지도만은 기억에 남았다
하부레벨엔 수치심 분노 미움..
우리가 흔히 부정적 감정이라고 일컫는 마음들이 있었고
상부레벨엔 기쁨 평화..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들이 있었다
하부에서 상부로
결정적으로 의식 전환이 되는 수준은
용기 레벨 이었고
그때 나는 막연히 용기를 내는게 중요한거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른 채 그것만 기억에 남았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든 생각
아 그 용기는 바로 두려움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말하는 거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그동안 억눌러온 각종 감정 덩어리들
내면아이들을 직면할 용기.
단지 집에 거울속에서 뿐만 아니고
삶을 영위하면서 그것들을 직면할 용기임을 알았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그동안 모든 선택을 이성과 논리로
꼼꼼하게 살피며 해왔었는데
결국 그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다 시원치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내가 직관(근원과의 연결성)을 잃어버린채
오로지 에고의 논리에 의존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치밀한 논리적 분석과 연구는
어느정도 사회적 인정과 성과로 돌아왔기에
그런 것을 잘하는 것,
생각을 많이하고 심사숙고를 더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되어
늘 더 더 열심히 생각했고 분석했다
아마 대부분 이런길을 걷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것이 크나큰 나의 어리석음이었을줄이야..
그것이 두려움에 기반한 에고의 전략이었을줄이야
그것이 두려움을 못보게 하고 회피하는 방향이었음을
에고가 생존하기 위한 시선돌리기 용 전략이었음을
나는 수없는 실패 끝에서야 탐구끝에서야 눈치채게 되었다
근원이 보내주는 직관과 멀어진 사람의
전형적인 길이었음을 이제사 알게 되었다.
에고는 내가 성장하고 내 삶이 어디로 가든지
그런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오로지 두렵지 않고 싶고
그저 안전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수치심이나 분노 미움 열등감 굴욕감..등을 느끼게 하는 장소나 모임은
절대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보는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오직 그 이유뿐이었다
그런식으로 나를 제한하고 옭아메어 왔었다
미움받을 장소에 뭐하러 가냐 하며
자기 정당화를 하겠지만
또 나름 이해도 가겠지만
중요한건 패턴이다!
나의 내면을 두려움을 보는 것.
그것을 피하는 패턴이 새겨지게 되는것이다.
그 패턴은 나를 구속의 방향으로 끌고가는 결정인 것이다.
그런식의 결정으로 삶이 지속되면서
삶은 추락해가는 것이다
결국 내 삶은 내가 원하는것이 아닌
두려움에 의해 점점 그 반경이 축소되고
염세주의적 세계관 인간관을 가진 채
그저 내집 내방에서 안전감을 느끼며
스스로 위로하며 지내게 되는 것이다
간혹 누군가를 만나지만
계속 같은 패턴이라면
그마저도 시간이 가면서 나이들면서
점차 줄어들게 될것이다
결국 마주하는것은 외로움과 소외감.
그리고 그토록 피하고 싶던 두려움.
이 우주에 오롯이 혼자라는 느낌.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은
안전한 감옥과 무엇이 다른가?
그 패턴을 끊어야한다
두려움을 피하는 패턴.
그것이 바로 용기였다
두려움을 보는 용기.
호킨스 박사님이 얘기한 용기가
이것이었으리라.
나를 제한하는 두려움
그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길이다
빛으로 가는 길.
벌벌 떨리는 그 두려움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
사소한것부터 용기내어보자
피하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다면
놀이동산의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보는 것도 좋다
공포스러울만큼 무서운 놀이기구도
힘을 쫙 빼고 맡겨보라
놀이기구에 타서 움직임을 느껴보라
공포심이 온 몸에 엄습하면
그냥 한번 몸을 포기(?)해보는 것이다
이러다 죽으면 이 참에 죽지 뭐 하며
놀이기구인데 설마 죽겠어 하며
온 몸에 힘을 쫙 빼고~ (중요)
죽든 살든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며
내팽개치듯 그저 한번 내맡겨보라
그것은 어렵다
마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기분.
그러나 빛보다 빠른 순간
바로 알게 된다
그 어마무시한 공포가
갑자기 스릴같은 쾌감으로 변한다는 것을.
엥~ 뭐야 괜찮네?
의외로 재밌네?
이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연습하다보면
두려움 공포가 조금씩 줄고
조금은 나아진 기분에
이제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것이다
사람들 접할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온몸에 힘을 뺀채
놀이기구에 내맡긴것처럼
사람을 만날때는
온몸에 그리고
'생각'에도 힘을 빼고서(!!!)
그저 만나보라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
나와 너를 제한하는 모든 관념을 벗고서
그렇게 온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서
깨끗한 눈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의 태도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줄 뿐.
내가 그를 나만의 '생각'으로 '구속'하지 않는다면
내게서 폭발적인 감정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나를 어찌할 수 없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생각을 벗는 것'이다
살면서 옳다고 배워온
온갖 판단을 제한을 벗고
온갖 관념을 벗고
모든 색안경을 벗고
눈앞의 상대를 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의 스타일대로 존재하게끔 그냥 두는 것.
이 기술(?)만큼 중요한게 있을까?
그것이 바로 현존이다
그것이 바로 무조건적 사랑이다
그리고
그 태도가 내면을 향하면
그것이 자기사랑이다
내 생각을 내 감정을
판단없이 있는그대로 바라보는것
오롯이 그것을 존재하게끔 내버려두는것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다른것으로 대체하지도 않고
내면 존재가 올라와 나를 만나려할때
그것이 그 존재감을 내뿜는 것을
내 몸을 통하여 그 에너지들이 자기표현하는 것을
옳다 그르다 적절하다 아니다 판단없이
그저 바라본다
가버리라는 기대없이
그저 바라본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으며
때가 되어 왔으며 때가 되면 갈
그저 지나가는 손님들일뿐임을.
이를 알고서 그저 판단없이 바라보는 것.
그들을 그렇게 존재하게끔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
그것이 현존이고 관찰자이고 근원이다.
모든것은 그렇게 대하면 되는 것이었다
외부나 내면이나 다 똑같이 대하면 되는 것.
외부상황 사람 탓을 하고 싶어도 딸려가지 않고
내면의 폭발적 감정이나 판단에도 딸려가지 않은 채
그렇게 외부와 내면사이에 '중심'을 잡고서
그저 분별없이 바라보는 것.
그러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응어리진 감정이든
나의 해묵은 고정관념이든
피하고 싶은 그 사람이든 상황이든
내가 진실로 그러한 태도라면
그러면 그것들은
충분히 자기 존재감을 뿜뿜 표현한 후
어느순간 저절로
사라진다
떠나간다
변화한다
존재를 인정받은 그 모든것들은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버린다
공중에 허공에 산산이 흩어져버린다
그것이 왔었던 바로 그곳으로.
그 근원의 품으로.
그렇다
그 모든것들은 다 같은 것이었다
나의 내면이든 나의 외부이든
내 눈앞에 객체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 같은 것이었던 것이다
내 눈앞에 내가 아닌 존재들.
그들을 대하는 방식 그 태도
모든 같은 방식으로 대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배우러 온것이었다
이 세상에 그것을 배우러왔던 것이었다
사랑을.
그들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끔 하도록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이렇게 무조건적 사랑을 배우러 온것이다
그렇게 모든것을 허용하며
나와 남을 구속에서 자유롭게 풀고서
자유 그 자체가 되는 것.
사랑 그 자체가 되는 것.
그때 모든것과 하나되리라
세상만물과 사랑으로 하나되리라
모든것이 되리라
그렇게 아무도 구속하지 않은 채
원하는 체험을 즐기며
가벼이 순간순간을 살리라
그 길로 가고싶다
이제는 어떤 선택의 기로가 오면
두려움을 선택하리라
두려움이 일어나는 그길
그 길을 걸어가리라
두려움을 느껴가며 나아가리라
두려움이 가짜임을 알기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 속으로 걸어가리라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