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지하철(도시철도) 무임승차 폐지가 최선인가
2024.01.31
개혁신당이 총선 공약으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들고 나왔다.
서울 지하철의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고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교통 혜택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라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먼저 어느 정권도 감히 대책을 내놓지 못했던 지하철 적자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해소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이준석의 주장에는 사실과 다른 것이 있고 논리에도 모순이 있다. 그리고 최선의 대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은 '1984년 만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요금 면제 제도가 도입된 당시보다 급격하게 높아진 노인 비율로 지하철 적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미래세대로 부담이 전가된다'고 주장하며, 대안으로 '모든 노인에게 월 1만 원의 교통바우처 제공과 40% 교통비 할인'을 제안한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노인복지를 증진하고 그 동안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받지 못한 지방의 노인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불공정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4호선 중 노인 무임승차 비율이 가장 높은 역이 ‘경마장역(경마공원역)’이라며 마치 노인들이 무임승차를 이용해 도박(경마)하러 경마장을 많이 찾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말도 ‘CBS 김현정쇼‘에서 했다.
논의에 앞서 먼저 서울교통공사(서울 지하철 1~8호선 및 9호선 2,3단계 구간 운영)가 최근 6개년 간 얼마나 적자(당기순손실)를 냈는지 살펴보자.
2017년 5,253억, 2018년 5,389억, 2019년 5,865억 적자가 났다가 코로나로 인해 2020년에는 1조 1,139억, 2021년 9,644억으로 대폭 증가했다. 2022년에는 6,419억이 적자가 났으나 보조금을 2,481억 받아 실제 적자는 8,900억이었다.
65세 어르신의 무임승차 인원은 2017년 208,466천명, 2018년 212,843천명, 2019년 225,094천명이었다가 코로나로 인해 2020년 160,053천명, 2021년 170,771명으로 감소했고, 2022년에는 소폭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65세 이상 노인 뿐 아니라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무임승차인원을 합치면 총 2억 574만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를 수송 운임으로 환산하면 2,784억원으로 추산된다.
* 2023년 12월의 서울교통공사 운영 구간과 수도권의 국철 구간을 포함한 전체 무임승차인원(65세 이상 노인+장애자+국가유공자)은 74,374천명으로 나타났다. 연간으로 다지면 약 8억 8천만명의 무임승차인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이면 65세 인구가 1천만명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준석의 제안대로 65세 이상에게 월 1만원의 교통바우처를 제공하려면 연간 1조 2천억이 필요하다. 향후 이 노인 인구는 계속 늘어나 정부가 부담해야 할 교통바우처도 늘어날 것이다. 이것만 하더라도 서울교통공사의 적자액의 1.5배를 넘어선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월 교통비로 3만원을 소요한다고만 하더라도 1만원은 교통바우처로 쓰고 나면 나머지 2만원에 대해서는 40% 할인을 해주어야 함으로 그 할인금액은 1천만명*2만원*40%*12개월 = 9천600억원/년이다. 이 할인금액은 정부가 교통기관에게 보전해 주어야 한다.
교통바우처와 할인 보조금을 합치면 연간 2조1천600억에 달하는데 이는 정부가 예산에서 지원해야 할 돈이다.
서울교통공사의 연간 적자액이 8,900억이고,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광주 등의 도시철도공사의 적자액을 합치면 연간 1조 5천억은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정확한 적자액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 주시기 바란다.)
교통바우처와 교통비 할인금액을 그냥 서울교통공사 등 전국의 지하철공사에게 보조해 주면 모두 적자를 면하고 정부 예산도 6천6백억 정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간단히 1조 5천억원을 매년 국가가 전국의 지하철공사에 보조해 주고, 현행과 같이 65세 이상 어르신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게 낫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현행처럼 하고 교통바우처제도나 40% 교통비 할인제도를 실시하지 않는 편이 훨씬 정부 예산을 아끼고, 행정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의 주장대로 무임승차 폐지하고 교통바우처 제도를 실시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예산 증가 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의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바로 김호일 대한노인협회장의 주장인데 그냥 흘러들을 일이 아니다.
김호일 회장은 무임승차가 폐지되면 노인들의 외출이 줄게 되고, 이는 운동량의 부족과 대외 접촉량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노인들의 건강이 악화되어 의료비 증가를 촉발시키고 자살도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임승차의 계산되지 않는 사회적 편익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준석은 의료비 증가나 자살자 증가는 계량화되지 않는 것으로 그것을 사회적 비용(편익)으로 계상하는 것은 과학적 접근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물론 이준석의 반박대로 이를 계량화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무임승차 폐지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상당히 증가할 수 있고, 노인문제를 격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무임 승차 폐지하면 분명히 노인들의 외출이 줄어들고 사회활동이 줄어들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나 건강상으로) 취약한 계층의 노인들이 교통비 부담을 느껴 외출을 자제할 것이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의 사회적 편익은 또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가 폐지되면 노인들의 버스, 택시 등의 대중교통 이용량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지하철(전철)은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하지만 버스와 택시는 주로 화석연료를 이용한다. 승객 1인당 운송의 추가 에너지 비용도 전철보다도 버스와 택시가 더 높을 것이다.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 등의 환경문제에서도 전철이 우위에 있고.
그리고 자가용 이용도 높아져(대중교통 이용률이 낮아져) 사회 전체적으로 에너지 소비량도 늘어나고 교통량도 늘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도시철도 노인 무임승차 폐지하면 발생할 문제 중에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상권의 변화이다.
노인 무임승차가 폐지되면 도시철도 이용객이 줄게 될 것이고, 역내에 입점한 가게의 이용객도 그 만큼 줄어들게 된다.
문제는 무임승차제도 때문에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역(역)의 주변 상권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임승차율이 높은 역들을 보면 대부분 등산로 입구(소요산역, 천마산역, 서울대(관악산)역, 수수락산역, 도봉산역 등)에 있는 곳이거나 공원(노을공원과 하능공원이 있는 월드컵경기장역 등), 전통시장(모란역 등)이나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동묘역(황학동 도깨비시장), 종로3가역(탑골공원) 등)이다. 온양온천 등 휴양지 근처 역들도 무임승차율이 높은 것으로 보아 노인들이 무임승차제도를 이용해 이 곳을 많이 방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하면 이런 역들의 무임승차율이 대폭 하락할 것이고, 이는 그만큼 이용객이 준다는 뜻이며, 주변 상권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역들 주변에 가게를 가진 사람들에게 타격을 줄 텐데 이준석과 개혁신당은 이에 대한 대책은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첨부하는 ‘서울 지하철 호선별, 각역별 2023년 12월 유무임승차인원과 무임승차율’을 참고하시라.
이준석은 4호선 중에 가장 무임승차 인원이 많은 역이 경마공원역이라고 했는데, 이건 사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경마공원역의 2023년 12월 무임승차인원은 181,945명으로 4호선(과천선 포함) 중에 가장 많은 무임승차가 있는 역이 아니다. 4호선에는 창동역 450,326명, 인덕원 258,326명 등 200,000명이 넘는 역들이 꽤 많다. 하지만 무임승차율은 경마공원역이 43.2%로 4호선 역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경마공원역의 무임승차율이 높긴 하지만, 노인들 중에 경마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이준석이 주장하고자 하는 뜻을 뒷받침하지는 못한다. 경마공원을 찾은 노인들보다 등산을 위해 무임승차를 한 인원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대도시 역세권 노인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져 공정성이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서울의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하면 필연적으로 수도권은 물론 지역 중소도시를 이어주는 광역철도 노인 무임승차제도도 폐지할 수밖에 없어 오히려 지역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점은 놓치고 있다.
현재 서울의 지하철(도시전철)은 경부선, 중앙선, 경춘선, 경원선, 경의선, 경강선, 장항선, 수인선 등과 연결되어 수도권을 넘어 충청, 강원권까지 65세 이상 노인들의 무임승차가 실시되고 있다. 단순히 서울권역만 무임승차를 폐지할 수 없기 때문에 무임승차를 폐지하면 이 지역들의 노인들의 혜택도 없어지게 된다.
현재는 경부선 등 국철의 무임승차에 의한 손실은 정부가 보전해 주고 있지만, 이준석 주장대로 정책을 실시하면 국철의 무임승차에 대한 정부의 보조를 폐지하고 국철의 노인 무임승차도 폐지해야 한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문제는 교통비 지원을 보편적 복지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이다.
무임승차나 이준석의 교통바우처 제도는 겉으로 보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 제도로 보이지만, 실상은 지하철(도시철도) 무임승차는 선별적 복지이고 이준석의 교통바우처 제도는 보편적 복지이다.
65세 이상의 노인 중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하의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많다.
서울 지하철의 각 노선별 무임승차율(무임 승하차인원/총 승하차인원)을 보면 우이신설선(경전철)이 35.4%로 가장 높고, 공항철도가 8.3%로 가장 낮다. 우이신설선의 무임승차율이 높은 이유는 이 노선을 지나는 지역에 연립주택단지가 많고 노인 등 취약계층의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삼양역(47.0%), 삼양사거리역(48.2%), 화계역(44.6%) 등 대부분의 역들의 무임승차율이 40%를 넘나든다. 반면에 해외나 제주도로 가기 위해 이용하는 공항철도의 무임승차율은 8.3% 밖에 되지 않는다. 강남지역이나 아파트 밀집 지역이 있는 역들은 대체로 무임승차율이 낮다. 이로 볼 때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취약 계층임을 추정할 수 있다.
즉, 서울 지하철 무임승차는 65세 이상의 노인 모두에게 적용되기는 하지만, 실제는 상대적 경제 취약 노인층이 많이 이용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선별적 복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 굳이 교통비 지원을 할 필요 없이 취약계층에게만 교통 복지를 시현함으로써 정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낫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하고 교통바우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소득 역진성(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 부담을 지는 것)을 강화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무임승차 폐지가 서울교통공사의 만성적인 적자 해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무임승차를 폐지해 노인들에게 운임을 받는다고 해도 그 수입액은 연간 2,784억원(2021년 기준)에 불과하여 서울교통공사의 8,900억원 적자를 메울 수 없다. 점진적인 요금 인상을 통해 해소하거나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로 해결하는 것이 부작용도 적고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대중교통의 무상운임제도 대상과 그 폭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대중교통(도시철도, 버스) 요금과 무임승차가 대중교통 이용률을 얼마나 높이고, 사회 불평등 해소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사회 전체적 비용을 얼마나 줄이며 편익은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임승차가 사회적 편익은 늘리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라면 오히려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