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에 어디 지방에 갔다가 잠깐 마트에 들렸다 나와보니 누가 제 차를 긁고 도망갔더라고요. 꽤 큰 마트였는데 제대로 된 cctv가 없어서 범인을 잡을 길이 없었어요. 긁힌 건 확실한데 눈에 거슬리게 심하진 않아서 언젠가 돈 생기면 고쳐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집 근처 상가에 갔다가 나오는 데 옆차에 타고 있던 젊은 남자가 나오더니 미안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주차하다 제 차를 긁었다고요. 작년에 긁힌 그 부분이더라고요. 전 그냥 괜찮아요 하고 가려는데 절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버리한 아줌마로 보는 동정의 눈빛같은 게 느껴졌어요. 아닙니다, 제가 차를 박았으니 보상을 해야죠, 하면서 못 가게 막는 거예요. 박은 거 맞아요? 물었더니 그럼요, 제 차도 똑같이 긁혔고 소리도 들었고 제가 차를 박았는데 그걸 모를까요, 그러더라고요. 그럼 같은 자리를 또 박았단 소린가? 아님 이것도 무슨 피싱? 정신이 없는데 제 폰을 달라고 하더니 자기 전화번호랑 이름을 저장하면서 돈 20만원을 주더라고요. 이걸로 해결 될 것 같진 않지만 지금 가진 현금이 이것뿐이니까 일단 받으시고 수리비 나오면 20만원에서 얼마나 더 오버됐는지 전화로 알려 달라고요. 제가 안 그러셔도 된다고 해도 꼭 받아달라고 하고 황급히 가버렸어요.
이게 뭔 일인가, 남편한테 얘기하면 언제나 남의 편만 드는 남편은 그 돈을 받은 제가 잘못 했다고 할 것 같고요. 혹시 작년에 뺑소니 당한 카르마가 어찌저찌 작용해서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또 박아서 제가 작년에 못 받았던 보상을 받게 된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면서 집에 와서 중2 아들한테 그 얘길 했죠. 넌 어떻게 생각해? 그 돈 받은 거 내가 잘못한 거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거지? 물었더니 엄마 잘못 아녜요, 엄마가 예뻐서 준 것 같아요. 그 돈으로 그냥 차 고쳐요. 하,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결국 입이 근질거려서 다음날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당장 전화해서 사과하고 돈 돌려주라네요. 참고로 남편은 생활비 갖다 줘 본적 없고 제가 외벌이 가장입니다. 20만원이면 살림에 큰 보탬이 될텐데, 카드만 쓰는 요즘 세상에 지갑에 현금 20만원이나 가지고 다니는 아마도 여유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저한테 선물 보내신 거라고 생각해 버릴까 싶기도 하고요. 이거 정말 무슨 피싱은 아니겠죠? 그런 것 같진 않았지만 제가 워낙 소소한 피싱을 여러번 당한 적이 있어서 한편으론 걱정도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