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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감사한 일

조회수 : 2,037
작성일 : 2024-01-10 16:25:46

대학생 조카가 지금 제 아이 과외를 하고 있어요. 

조카의 실력을 믿으니 맡긴 것이기도 하지만, 조카 용돈을 좀 챙겨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혼자 자취하며 학교다니는 애라

저희집에 과외 오는 날엔 뭐라도 든든한 건강식 집밥을 좀 먹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조카가 오는 요일엔 늘 식단이 좀 신경쓰입니다.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수가 없네요. 

 

그러다 기억이 났어요. 어쩜 그렇게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지. 

 

집안 형편 좋지 않을 때 대학진학을 해서

등록금, 하숙비, 용돈을 모두 부모님께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그래도 학교이름과 전공이 나쁘지 않아 과외자리는 잘 구해져서 하숙비와 용돈을 그걸로 충당했는데

그땐 주 2회 과외가 보통이었거든요. 

과외 두개를 했는데

화 금 이틀했어요. 

하난 중학생 하난 고등학생. 

처음 과외했던 고등학생 엄마가 같은 아파트의 중학생 아이를 소개해 주셔서 이동거리가 짧았기에

 

3시 수업 마치고 가서 중학생 수업하고, 저녁먹고 한시간쯤 있다가 고등학생 수업하고

 

그땐 돈이 너무 없어서, (하숙비 용돈하고 남겨서 등록금에도 보태야했거든요) 저녁 사먹을 돈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점심은 학생식당에서 먹고, 과외가기 전에 학교 매점에서 파는 800원 짜리 은박지 포장 김밥 한 줄 사서 가방에 넣어뒀다가 중학생아이 과외 마치고 나와 아파트 벤치 같은데 앉아서 그 김밥을 물도 없이 그냥 우걱우걱 씹어 먹었어요.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이 연진이네 정원보며 먹던 것처럼 그렇게. 

 

뭐 딱히 서럽다 할 것도 없고, 그때 저 제 인생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해피하게 살 때였거든요. 다만 탁 트인데서 뭘 먹고 있는 건 좀 쪽팔리긴 했는데(지금이라면 내 김밥 내가 먹는데 뭐 했겠지만 그땐 갓 스무살 된 애기때라 ㅎㅎㅎ) 괜찮았어요. 이걸로 내가 칠백원 아꼈다(그때 김밥천국 라면이 천오백원이었나 할 때) 흐뭇해하며. 

 

근데 어느날 중학생 아이 집에서 과외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 아이 엄마가 선생님 밥 드시고 가세요! 하더라고요. 남편 몫을 했는데 남편이 회식이 갑자기 잡혔다나. 하면서. 

같이 먹으면 선생님 부담 될거 같아서... 먼저 드세요. 전 큰애 오면 같이 먹으려고요. 하더라고요. 

그 뒤로 일주일에 두번 과외를 갈 때마다 저녁 주시더라고요. 항상 호칭은 선생님. 과외학생 어머니가 차려줄 때도 있고 파트타임으로 오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차려줄 때도 있고요. 

 

한 두달 지나서였나. 도우미 아줌마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이(도우미 아주머니 조차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던집) 아파트 놀이터에서 김밥 먹는 걸 봤다더라고. 그 뒤로 밥 차려주라 했다고 많이 신경 쓰신다고. 

아니. 그 말을 듣고도 아 그런가??? 하고 말았어요. 역시 부짓집이라 반찬이 좋군 이러면서 ㅎㅎㅎㅎ

 

그러다 남편이 해외 발령을 받았다며 먼저 그만두자 하면서 한달치 과외비를 더 받고 끝냈거든요. 한 7-8 개월 했던 거 같아요. 밥 얻어 먹은 건 한 너댓달 되나 봐요. 중간에 애 방학이 있었는데 해외 어학연수(그땐 한달 단기 영어 해외살이 이런게 막 시작될 때) 간다고 한달 안하는데 반달치 금액을 주셨던 기억도 나요. 

 

인간이 참 그런가봐요. 그 뒤로도 진짜 과외 많이 했고 그 과외 덕에 대학 졸업했고 그러면서 잊고 살다가

조카 밥차려줄 고민하다 문득

아 진짜 신경 많이 쓰셨던 거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그런 고마운 마음씀을 받고도 고마운줄도 몰랐던 나란 인간은 진짜...;;; 어려서 그랬으니 용서해 주세요. 

어디서든 행복하시길 jh어머니.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복 받으세요!!!

IP : 58.231.xxx.222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1.10 4:31 PM (112.154.xxx.59)

    맞아요. 돌이켜보면 잊고 있었던 귀인들이 있지요....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그 고마움을 몰랐던...

  • 2. ㅡㅡ
    '24.1.10 4:33 PM (1.236.xxx.203) - 삭제된댓글

    그분 그마음씀이 다 그분께로 그자식에게로
    되돌아갔을겁니다
    저도 살면서 잊고있던 누군가의 고마움이 생각날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사람이 되고자하고
    한번 맘이 넓어지고 풀어지고 그래요
    코끝이 찡해지네요

  • 3. 감동
    '24.1.10 4:40 PM (110.15.xxx.45)

    내가 잘나서 잘 살고 있는거지 알았는데
    곳곳에서 나를 살펴준 누군가의 마음이 있었네요

    원글님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날이네요

  • 4. ㅇㅇ
    '24.1.10 5:08 PM (211.234.xxx.86)

    시큰해지네요.ㅠ
    음성 인식이 글쎄 시큰둥해지네요 하고 입력하지 뭡니까 때찌

  • 5. 50대
    '24.1.10 5:08 PM (14.44.xxx.94) - 삭제된댓글

    저도 생각나네요
    주3회 과외하던 집
    항상 따뜻한 밥 차려주시던ㆍ
    그때는 철이 없어서 보답도 제대로 못했네요
    지금 연락이 되면 자녀는 사회인이 되었을거고 손주가 있으면
    무료로 수업해 줄 수 있는데ㆍ

  • 6. 어머어머
    '24.1.10 5:11 PM (118.235.xxx.238)

    맴이 몽글몽글.
    눈물이 핑 도네요
    저 역시 과외 강사 경험있기에..
    잘 베풀어주는 어머님들 유독 생각이 나요

  • 7. 쓸개코
    '24.1.10 5:35 PM (118.33.xxx.220)

    훈기가 모락모락하는 글^^
    밥이 단순 밥이 아닌거죠.

  • 8. 맞아요
    '24.1.10 6:52 PM (182.210.xxx.178)

    세월이 한참 지나고서야 고마웠다는걸 깨닫는 일들이 있더라구요.
    저도 그래서 누가 나한테 고마움 표현하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당시에는 몰라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 9. 잘될거야
    '24.1.10 7:00 PM (180.69.xxx.130)

    아 훈훈해지네요
    이런 좋은 얘기가 돌고 돌아 따뜻한 사회가 되는 데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이 글을 보자마자 어디 잘 해 줄 곳이 어디 텅 빈 곳이
    없나 돌아보거 되었거든요

  • 10. wood
    '24.1.11 9:55 AM (211.241.xxx.229)

    제목에 이끌려 들어와 글 읽고 갑니다
    마음이 훈훈해 지네요
    바로 윗분 말처럼 이런 따듯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사람 살 맛 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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