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계신 친정엄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작별 인사할 틈도 없이 돌아가셔서 더욱 충격이 컸죠.
병환중인 부모님 계시다는 지인들 보며 저는 내심 부러워요.
아...부모님과 이별할 시간은 있겠구나 싶어서요.
시모는 무릎이 아파 못 걷는다고 조문을 안 왔고,
삼우제 지내고 서울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래도 친정과 같은 지역인 시모. 내 애들 할머니라 애들 얼굴이라도 보여주고 오려고 갔어요.
친정에서 40~50분 거리.
(무릎 아파 못 걷는다던 시모.
마을 회관에서 수다 떨다 귀가하던 시모를 길에서 딱 마주쳤네요.)
제게 시모가 그러더군요.
"너도 이제 끈 떨어진 연 이구나"
"그래 재산은 좀 남겨준 거 있더냐?"
그 순간 다짐했어요.
여기까지구나.
그런데
시모만 욕할 게 못 되는 게
서울 집 올라가기 전에 어머님 뵙고 가자고 했더니
도로 갓길에 차 세우고
"네가 결혼하고 우리 엄마 집을 몇 번이나 갔어?
난 지금 안 가 "
라고 막 친정모 장례치른 배우자에게 망언을 한 남편놈이 있습니다.
결혼하고 시모도 인정할 정도로 제가 잘했어요.
시모가 내 남편 앞에서 울더라고요.
"그렇게 잘했던 네가 왜 그리 달라졌냐고.
이 늙은이가 뭘 잘못한 게 있냐고."
그 모습을 보고 남편놈이 저를 죽일 듯 뭐라 하더군요.
제가 결혼하니 시모의 노총각 아들 셋이랑 명절 지내더만요.
첫째 아들은 아직도 미혼. 환갑일 거예요.
말 많은 욕 배틀 1위 급 막장 손윗 시누 네 명있습니다.
제사 지내줄 손주가 없다고 손주 타령 압박에
시모가 아들 낳는 부적도 태워서 저더러 먹게 했어요.
지금이야 결혼 짬밥이 있으니 거부하겠지만 그때는 아무 말 못 하고 따랐네요.
제가 난임 병원 다니며 딸을 낳았고
고추 못 달고 나온 계집애라고 아기 보러 병원도 안 와 본 시모입니다.
저는 유언으로 내 제사 지내지 말라고 또 말 할 겁니다.
너희 살기도 바쁠 텐데 엄마 죽은 날 한 번 엄마 떠올리기나 하렴! 말합니다.
그럼 자동으로 시모도 내 아들에게 제삿상 못 받겠죠.
본인 홀엄마에겐 도리를 다하길 바라는 남편놈과 그 형제들.
이제 안 보고 삽니다.
남편요? 정작 제 친정 아빠가 암으로 9개월 투병하다 돌아가실 때까지
병문안 전화 한 통 안 한 사위입니다.
사위 자식 개자식이죠.
이혼 무섭지 않고요.
애들 대학은 보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전업 20년 하다가 경제 활동하고 있어요.
우스운 게 전업을 벗어나니 이혼이 무섭지 않네요.
몸은 힘든 일이어도 내 힘으로 번 돈이 주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사춘기 아이의 지옥을 지나고 있어서 이 또한 엄마인 내 몫의 의무만 최선을 다하고 애들로부터 저도 독립하려 합니다.
이번 생은 너무 힘에 겨워 지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