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에게
장기려 선생이라고 이름은 들어 봤니? 선생께서 말이다, 1962년 9월부터 5개월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왔거든. 시간이 남아 돌아 놀러가신 건 아니고, 미국 외과 학회 참석과 세계 여러 나라 선진 의학을 돌아 보기 위함이었어.
사실상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첫 번째 기회라고 생각해서 복음병원에서 2000달러 여행 경비를 지급했단다. 5개월에 2000달라가 많은지 적은지는 애들 시켜서 당시 환율 계산해 보고하라 그러면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너보다 세 살이 더 많았고, 서울대 의대 교수셨지. 그 분이 여행 전에 이런 규칙을 세웠어. 1) 하루 10달러만 쓴다, 2) 어느 도시에 내리든 택시나 버스 안 타고 무조건 걷는다, 3) 여행 가이드는 없이 스스로 해결한다. 물론 병원에서 준 경비를 최대한 절감하려는 자구책이었지. 미국에서 3개월 체류하고 유럽으로 건너갈 때 27달러짜리 튼튼한 구두를 사 신었대. 이태리,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일정을 소화하던 중 새로 사 신고 간 구두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밑창에는 구멍이 났어. 할 수 없이 예정에 없던 8마르크(2달러)를 주고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신는 구두를 사 신었어. 6개월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서 그 아동용 구두를 1년이나 더 신고 다니셨어. 독일 신발이 그렇게 튼튼하다며. 그때 장기려 나이가 쉰 셋이었지. 동네 의원 원장이 아니라 수백 개 병상을 가진 부산 복음병원장이어. 동시에 서울의대 교수이기도 했던 분이 그 아이용 구두를 신고 부산과 서울을 오고가셨어.
너의 미국 출장 경비 5000여 만 원에 대해 법원이 공개하라고 판결했더구나. 네가 시켰는지 법무부 애들이 알아서 기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국가 안전보장,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여행 경비 내역 공개를 거부했다가 법원이 이런 판결을 했더구나.
동훈아, 장기려 선생은 5개월만에 귀국하셔서 복음병원에서 마련해 준 2000 달러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되돌려주었더라. 못 믿겠으면 복음병원 압수수색 해 보던지. 너 잘 하는 거잖아. 장기려 선생은 너처럼 공직자는 아니셨어. 그렇지만 환자들이 병원비로 낸 돈을 아끼려고 5개월 처음 가 보는 도시를 가이드 없이 걸었어. 물론 시간이 돈인 너도 걸으란 건 아니니 안심해.
동훈아, 공직자라면 저렇게 해야 하는 거야. 네가 이 글을 읽을 리 없고, 혹시 읽었더라도 장기려 선생의 저 얘기에 양심에 찔림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듣던지 안 듣던지 이 이야기는 들려주고 싶었다.
기왕 법원 판결에 따르기로 했으니 내역 공개와 증빙 서류에 검찰 특별비처럼 꼼수는 부리지 마라. 너무 없어 보여. 그리고 그거 안 통해~ 몸 잘 만들어 놔라. 꼭 필요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