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계급이 먼저 개혁을 했던데
우리는 오랭캐라고 빗장 걸었는데
쟤네들은 어떻게 서양 문화를 빨리 받아들일수있았을까요.
중국만해도 변법자강 양무운동등
정신이 싑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했 저런 브릿지 개념을 통해 받아들이려 했던거 같은데요...
일본인 정신 문화의 어떤 면이
저렇게 개방적인 건지 신기하더라구요..
원나라때 몽고군이 일본을 가려고 했지만 태풍때문에 못가서 이걸 신풍이라고 하고...
아무튼 운도 드렇게 좋은 나라..
짜증나요...
지배계급이 먼저 개혁을 했던데
우리는 오랭캐라고 빗장 걸었는데
쟤네들은 어떻게 서양 문화를 빨리 받아들일수있았을까요.
중국만해도 변법자강 양무운동등
정신이 싑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했 저런 브릿지 개념을 통해 받아들이려 했던거 같은데요...
일본인 정신 문화의 어떤 면이
저렇게 개방적인 건지 신기하더라구요..
원나라때 몽고군이 일본을 가려고 했지만 태풍때문에 못가서 이걸 신풍이라고 하고...
아무튼 운도 드렇게 좋은 나라..
짜증나요...
일본은 사무라이문화
강한자에게 굴복하는 문화가 있쟎어요
서양사람들의 덩치와 총을 보고 홀딱 넘어간게지요
일본도 그 직전은 쇄국정책이었어요.
에도막부 무너지고 덴노가 권력을 잡은 변혁의 시기였죠.
유교 문화가 깊게 뿌리 박지 않은 것도 큰 듯해요.
우리처럼 중화 사대 사상이 없었으니까요.
프랑스를 그렇게 동경 한다네요..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개혁에 저항할 수도 있었는데 비교적 무난하게 역사가 진행된 건 일본으로선 행운.
미곡이 보장되는 토지를 유지해주고, 그걸 별 저항 없이 줄여나가는 과정은 부러울 정도.
꾸준히 서양과 접촉하고 있었고 막부가 실정을 하니 천왕에게 권력이 이양되면서 새로운 체제에 맞는 학문으로 서학이 채택된 거죠. 부국강병을 위한 도구로 서양의 문물이 필요했던 거
답을 하지 말던가요
덴노는 한번도 권력을 잡은적이 없고
에도막부는 자진해서 정권을 내놨습니다
메이지유신은 지배계급이 한게 아니에요
변방에서 한겁니다
메이저가 되지못한 지방 번사들이...
그리고 자기들이 뜻을 관철시키려 암살도 많이 하고
굉장히 다방면으로 운동을 펼친 결과에요
메이지유신은 사실 프랑스혁명보다 더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부분인데
우리는 대원군과 민비 싸우느라 좋은 기회 정말 다 갖다버렀죠
자신들의 땅이 먹고살만은 하지만 지진으로 불안해서 도 좋은 땅에 대한 갈구가 역사적으로 있었던 듯 해요. 그바탕에서 그들의 국민성이며 정치체계가 형성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도자들은 일본개조에 공을 치밀하게 들이고 피지배층은 따르는 식으로. 정치인들이 부패한 건 비슷한데 우리랑 조금 다른 건 뇌물을 받든 뭐든 국가의 큰 미래를 저버리고해먹지는 않더라구요. 일본인들이 원하는 정부는 변함이 없을거고 지도자들은 치밀합니다. 재팬머니도 오랫동안 끊임없이 아프리카까지 흘러갔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흥이 많아 또는 기분파라 어떤 때는 저런 집요하고 치밀한 나라하고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손해가 큽니다. 선심쓰듯 가볍게 싸인하고 나중에 당하고 나서 회복할 때는 너무너무 힘이 들거든요.
저 인서울 중상위 대학나왔는데
학생때 배웠던 이런 내용들이 정말 머리속에 남아있질 않거든요.. 그때배웠던걸 기억하시는건가요?아니면 평소관심있어서 상식으로 알고 계신건가요? 이런대화들을 할수 있는 님들이 대단해보여요
저 정말궁금해서 여쭤봐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