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

ㅁㅁㅁㅁ 조회수 : 1,098
작성일 : 2023-06-30 13:53:03
부모님이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1년 사이에 확 나빠지셨고
3-4개월 전부터는 1주일 단위로 모든 기능이 떨어지는데
2주 전 응급실과 병원입원 2박3일 후에는
운동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안고 눕고도 못하고 대소변도 못하고요.
2주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부축하면 걸음도 걸으셨거든요.

너무 급작스레 진행되고, 병원에서 호스피스 얘기도 나오니까
제가 당황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예견된 상실(죽음)에 대한 제 반응은 회피였어요.
두렵고 회피하고 싶더라고요.
전화통화도 싫고 무섭더라고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도 알고싶지 않고요.

평소 직면주의자, 도전주의자라서 모든 일을 직선으로 처리하는 편인데
전혀 대비가 안되어 있더군요.
눈물도 안나오고 뭔가 가슴에서 꾸물꾸물하는데
돌덩이 얹은 것 같기만 하고 답답...해요. 꾸욱..눌리는 느낌.
그 상태에서 일상을 다 합니다. 밥먹고, 운동하고, 개산책 시키고..
사람들과 연락도 하고, 농담도 하고, 위에서 떨어지는 일, 전화, 처리하고요.
그런데 머리는 잘 안돌아가서 평소 하던 작업을 거의 진도 못나가서 밀어두고
멍때리는 시간이 길어지고요(일하기 싫어 핑계인가 싶은 생각도)
넷플이나 유툽에 평소보다 더 골몰하게 되고,
부모님이 증여해주신다는 부동산 증여 처리하느라 오히려 분주하고요.
이걸 누가 지켜본다면 슬픔도 없이 지 일에만 몰두하며 지 몫 챙기는 사람으로 보이겠다 싶을 정도.
가끔 감정이 훅 올라왔다가 다시 안개 속으로 모호해지고요. 
그때 알았어요. 아, 상실에 대한 준비도 훈련도 전혀 없구나.
그러면서 이번엔 한번 내 마음을 묵히지 말고 따라가보야지 생각이 들면서..
(예전에 상실 애도에 실패해서 몇십년간 힘들게 살았거든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호스피스 책도 찾아보면서 울고,
명상 하다가 울고, 갑자기 훅훅 들어올 때 감정을 놔주면서 울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깐 훨씬 낫더라고요. 맘이 헐렁해지는 느낌.
꽈악 늘리던 느낌이 없어지고..
그렇게 시시때때로 혼자 울며 일상과 사무를 처리하면서
계단식으로 다가올 상실에 익숙해져가고 있어요.

점진적이고 눈에 보이는 상실도 이렇게 애도하기 힘든데
전쟁/재난/사고/실종으로 가족을 잃고 유해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미칠 노릇이겠구나. 애매한 상태에서 제대로 울어지지도 않겠구나.
사람은 자기가 경험해보지 않은 길은 정말 모르고, 
겉으로도 판단하면 안되겠다 싶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전쟁을 치루고 있고,
타인에게 좀 더 관대? 아니, 그 사람의 세계를 존중해주고, 또는 적정거리를 유지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야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에 다다르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죽음이 가르쳐주는 것이 또 상당하구나.....싶었습니다. 
안해보면 모를..
IP : 112.217.xxx.194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울 수 있다면
    '23.6.30 2:13 PM (1.225.xxx.214)

    원글님 좋은 생각 공유해줘서 고마워요.
    맞아요.
    내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오만했던 저의 지난 날이 그저 부끄럽지요.

  • 2. 준비도 없이
    '23.6.30 5:23 PM (61.82.xxx.170)

    고맙습니다
    힘드신 중에도 함께 나눠주셔서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480728 악귀 같이 보실래요? 19 해리 2023/06/30 4,136
1480727 죄짓지말고 살아야겠어요, 세상 참 좁아요 4 2023/06/30 5,263
1480726 코로나 확진인데 항생제 처방을 안하나요? 5 ... 2023/06/30 2,429
1480725 김치, 살림 고수님들 나와 주셔요.. 3 .. 2023/06/30 1,729
1480724 약대는 얼마나 공부를 잘해야 가나요 19 ㅇㅇ 2023/06/30 6,889
1480723 이 파렴치한 80대 공연계 원로 누군가요 21 분노 2023/06/30 22,771
1480722 사망신고는 주민등록주소지서만 가능한가요 6 땅지 2023/06/30 1,240
1480721 우뭇가사리 묵이 너무 냄새나는데 방법이 있을까요? 2 우무 2023/06/30 1,157
1480720 10원단위까지 더치하는 거 어떠세요? 29 00 2023/06/30 4,184
1480719 씽크대 배수구에 뭐 뿌리면 될까요 9 ㅁㅇ 2023/06/30 3,116
1480718 10시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ㅡ 러시아 사태의 진실, 진짜 킬러.. 3 같이봅시다 .. 2023/06/30 1,012
1480717 자가지방이식 아시는분 알려주세요 3 ... 2023/06/30 1,248
1480716 줌수업 녹음할 수 있나요? 3 공부하자 2023/06/30 1,890
1480715 이거 아세요? 3 2023/06/30 1,434
1480714 친구관계 고민 7 00 2023/06/30 3,026
1480713 길거리 보면 나만 마스크쓰고 다니네요 33 흠.. 2023/06/30 7,594
1480712 죽어서도 귀는 열려있는건가요? 21 파란하늘 2023/06/30 6,845
1480711 중등 수학 시험 별로 변별력 없는걸까요? 10 ㅇㅇ 2023/06/30 1,492
1480710 오랜만에 일본여행 다녀왔어요 65 ㅇㅇ 2023/06/30 11,975
1480709 악귀-오정세 9 금요일 2023/06/30 3,724
1480708 건조기 첨 썼어요 4 2023/06/30 2,182
1480707 에어컨 켰어요 모기 ㅜㅠ 2 에어컨 2023/06/30 1,718
1480706 예비고1 여름방학 뭘해야 할까요? 3 예비고1 2023/06/30 683
1480705 샤워기나 주방에 필터기 달아야하나요 ? 2 ㅇㅇ 2023/06/30 901
1480704 요새 인테리어 하신분요 7 .... 2023/06/30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