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

...... 조회수 : 5,167
작성일 : 2023-05-08 18:20:23
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

- 만화가 이현세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IP : 223.39.xxx.146
2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ㅎㅎㅎ
    '23.5.8 6:23 PM (58.148.xxx.110)

    멋진 글이네요
    아주 예전에 이현세님 만나뵌적 있었는데 풍기는 아우리가 장난 아니었어요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라서 그랬나봅니다

  • 2. ...
    '23.5.8 6:25 PM (223.62.xxx.82)

    아 너무 좋은 글, 원글님 덕분에 감사합니다

  • 3. ㅇㅇ
    '23.5.8 6:31 PM (118.235.xxx.183)

    대체 이현세를 좌절하게 한 그 천재는 누구였을까요

  • 4. 오~
    '23.5.8 6:32 PM (211.36.xxx.107)

    만화만큼 글도 잘 쓰시는 분이네요.

  • 5. ㅎㅎ
    '23.5.8 6:34 PM (175.193.xxx.50)

    천재를 추월차선으로…

  • 6. 아자아자
    '23.5.8 6:39 PM (220.118.xxx.115)

    너무좋은글이네요

  • 7. ㅇㅇ
    '23.5.8 6:57 PM (110.9.xxx.132)

    감사합니다. 모든 분야에 다 적용되네요

  • 8. 정말
    '23.5.8 6:58 PM (175.196.xxx.15)

    살아가다보면 만날수 있는 천재...
    생각해보게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9. ㅇㅇ
    '23.5.8 7:59 PM (218.158.xxx.101)

    너무 멋진 분이군요
    이현세 작가님.
    제가 보기엔 그분도 충분히 뛰어나신데 ㅎ

  • 10. .....
    '23.5.8 8:20 PM (211.221.xxx.167)

    좋은 글이네요.감사합니다

  • 11. ㅇㅇ
    '23.5.8 8:33 PM (118.235.xxx.233)

    천재와 싸워 이기는 법
    이현세 작가님 내공이 깊은 분이시군요

  • 12. ...
    '23.5.8 8:38 PM (175.223.xxx.220)

    천재와 사워서 이기은 법.
    먼저 보낸다.ㅎㅎ
    신박하네요.

  • 13. ..
    '23.5.8 9:09 PM (58.140.xxx.143)

    천재와 싸워이기는법. 감사합니다.

  • 14. ㅡㅡ
    '23.5.8 9:25 PM (1.232.xxx.65)

    좋은글인데 이 사람 만화 남경인가?
    강간당한 여동생한테 자살 권하는 오빠 충격이었음.
    치과에서 읽고 의사까지 비호감되는..

  • 15. ...
    '23.5.8 10:14 PM (211.216.xxx.107)

    만화뿐만 아니라 예술 전체에도 적용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16. ..
    '23.5.8 10:18 PM (220.89.xxx.109)

    천재와 싸워 이기는법~ 저장합니다

  • 17. ㅇㅇ
    '23.5.8 10:20 PM (73.86.xxx.42)

    천재와 싸워 이기는법~ 저장합니다2222222222222

  • 18. 좋은글
    '23.5.8 10:24 PM (59.23.xxx.138)

    감사합니다.
    요즘 고민하던 부분이었는데 답은 간단했네요

    역시 진리는 간단한것인데 왜그리 번민하고 고민한것일까요.

  • 19. 하늘
    '23.5.9 3:35 AM (39.118.xxx.56)

    좋은글 감사합니다~

  • 20. 좋은글감사
    '23.5.9 8:48 AM (182.221.xxx.14)

    천재와 싸워 이기는법~ 저장합니다

  • 21. . . .
    '23.5.9 11:03 AM (123.111.xxx.253)

    좋은글 감사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496043 맨발걷기 유행인데 고층에 사는 거 보면 희한해요 13 ㅇㅇㅇ 2023/08/20 4,810
1496042 결혼지옥 운동선수남편 16 이상 2023/08/20 5,742
1496041 시어머니가 해외 패키지 여행이 싫으시대요 101 .... 2023/08/20 16,933
1496040 일할때 자신감 없을때 솔직히 말하면 안될까요? .. 2023/08/20 1,135
1496039 추성훈 일본 발음 쏙 빠졌네요 20 ... 2023/08/20 6,643
1496038 엄마 161 아빠 165. 딸키 160 35 ㅇㅇ 2023/08/20 4,656
1496037 모르는 사람한테 맞아서 죽는다는것 12 세상왜이랴 2023/08/20 4,906
1496036 여긴 세대 젠더 계층 갈등 분란글 계속 올라오네요 45 aa 2023/08/20 1,395
1496035 4개월아기 디럭스 사는게 잘못된건가요? 17 유모차 2023/08/20 2,834
1496034 생리대 못사게 했던 시모.. 112 ... 2023/08/20 21,100
1496033 작은핀이 유행인가요? 3 ... 2023/08/20 2,221
1496032 쌀 20kg 배달 시키고 후회. 9 죄송 2023/08/20 5,619
1496031 간밤에 모기한테 엄청 물렸어요 2 ..... 2023/08/20 924
1496030 계급 배반 투표 현상이란...윤석열 찍은 분들 필독 6 투표권의힘 2023/08/20 1,053
1496029 그알에서 다루지 않은 한 부분-피프티멤버의 부모 3 ..... 2023/08/20 2,554
1496028 오늘은 세계 모기의 날 5 ㅇㅇ 2023/08/20 961
1496027 어이없는 말실수 4 eoin 2023/08/20 1,985
1496026 더운데 뭐 드시나요? 3 요즘 2023/08/20 1,270
1496025 비염 코 스프레이 써보신 분 5 비염 2023/08/20 1,205
1496024 8칸 책장을 그릇장으로 쓰는데요... 7 책장 2023/08/20 2,491
1496023 동영상 광고 싫으신분 크롬인 경우 시크릿탭에서 하세요 8 .... 2023/08/20 781
1496022 (스포)마스크걸 염혜란 님 30 스포있음 2023/08/20 6,046
1496021 마스크걸 주오남- 모쏠아재 떠오릅니다. (약스포) 4 음.. 2023/08/20 2,133
1496020 그알이 전 커뮤 대동단결시키네요 3 .. 2023/08/20 2,901
1496019 핫도그하나도 며느리 주기 아까운 시모 25 ㅇㅇ 2023/08/20 7,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