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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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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편의 변신 그리고 고백

미스테리 조회수 : 6,843
작성일 : 2023-03-04 10:46:51

언제부턴가 남편이 제가 알던 남편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저 성실하고 맡은 바 책임 다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도 한결같지만 표현엔 서투르고, 하지만 유머감각은 있어서 뜬금없는 짧은 한마디에 사람 넘어가게 만드는 재능은 있지만 모범생 타입이자 사람들 앞에서 점잖고 애정표현은 자제하는 조선시대 양반같은 타입인 남자‘였’죠 (물론 아무도 안 볼 때에는 하고싶은거 다 합니다 ㅎㅎ) 
그런데 요사이 남편은 안보이고 그 대신 다리를 휘적거리고 다니는 문어 한마리, 꼬리 흔들며 재롱피우는 강아지 한마리, 쉴새없이 고막을 쪼아대는 딱다구리 한마리가 제 주변을 맴돌아요 


제가 책상에서 뭐 좀 하고 있으면 반쯤 꿇어앉아 책상에 손 얹고 그 위에 얼굴 얹고 저를 향해 씩씩 웃으며 뭐 시킬 거 없냐고 하질 않나, 남편이 운동하는게 있는데 매일 열심히 하길래 잘했다고 칭찬해 줬더니 다리 근육 눌러봐라, 엉덩이 근육 만져봐라 하며 막 내밀고 “와 돌덩이 저리가라네~”라고 칭찬하면 머리 내밉니다. 그래서 쓰다듬어 주면 기저귀 가득 똥싸고 빈 배를 엄마의 젖으로 가득 채운 신생아 얼굴로 변해요 ^^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해서 재밌다고 배잡고 웃으면 하고 또하고 계속…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하면 당신 좋아하니까 계속 하는거라며 “나 잘했지!”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뭔가 간식 등 보상을 바라는듯 불쌍함과 귀여움을 적절히 섞은 표정으로 서서 기다려요 
그리고 제가 방에서 주방에 가거나 책방에 가고 있으면 어느새 나타나서 제 온몸을 감고 붙어서 같이 가고 영화 볼 때도 다리의 빨판이 여기저기 쩍쩍 달라붙습니다 
팔다리도 짧은 사람이 제 몸 곳곳을 칭칭 감느라 어찌나 애쓰는지..ㅎㅎ
게다가 밤에 대충 정리하고 침대 앉아 책 좀 보려고 하면 얼른 옆에 앉아서 조잘조잘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과 디테일이 전에는 볼 수 없던, 영혼이 담긴 것들이라 맞장구 쳐주지 않을 수도 없고… 
제가 무슨 얘기를 하면 앞뒤옆 다 이야기하는 스타일인데 이제 저는 입을 다물고 남편이 열었네요 ㅠ (여보, 그동안 받아주느라 고생했어..) 


급기야 오늘, 아침으로 샌드위치와 커피, 맛있는 치즈케잌을 디저트로 먹으며 딱따구리가 된 남편의 열변을 정성껏 들어주며 맞장구 쳐주는데 갑자기 고백할 게 있다고…
아니 30년 넘게 산 부부가 새삼스레 뭔 고백?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해보라고 했더니 두가지가 있대요 
하나는, “여보, 요즘 어디 가서 커피마시고 밥먹고 할 때 옆테이블에 아줌마들 떠드는거 보면 나도 거기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넘 재밌어 보여.” (아하! 그들의 세계에 눈을 떴구나) 
다른 하나는, “당신하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 꼭 내가 먼저 죽을거야” (아니, 그럼 난 어쩌라고. 날 허리 끊어지게 웃겨줄 사람은 당신 밖에 없는데…) 
아 무서운 호르몬… 



IP : 59.6.xxx.68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3.3.4 10:53 AM (211.208.xxx.199)

    징짜 그노무 무서븐 호르몬..

    제 남편은 젊을때부터 애교가 많아
    늙어서도 그러는건 그러려니 하는데
    엄숙경건 하던 시동생이 아주 보드랍게 동서를 대하고
    제 손녀딸에게 할아버지 재롱을 보이는데
    아 무서븐 호르몬.. 을 느껴요.

  • 2. 으으
    '23.3.4 10:57 AM (119.64.xxx.75)

    69년생 우리집 남편이 그댁에도.....
    다 좋은데 저는 제 호르몬은 안변했나봐요 아직..71년생.

    남편과 함께 늙어감을 느끼는 요즘.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 3. ㅇㅇ
    '23.3.4 11:10 AM (223.38.xxx.95)

    따뜻한 모습이네요

  • 4. 뻘소리
    '23.3.4 11:13 AM (116.43.xxx.47)

    나이 많은 어르신이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 앞에서
    기둥 뒤에 숨었다가 짠ㅡ 하고 나타나는데
    그 표정이나 말투가 우스워 같이 웃음이 나더라고요.
    나름대로 속은 어린 아인데 겉으로만 나이 들어서
    사람들 앞에서 어르신 흉내내야 하는 남자들.
    마음 속으로 '힘드시겠습니다' 했죠.

  • 5. ...
    '23.3.4 11:13 AM (223.62.xxx.212)

    저도 남편한테 꼭 나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요..
    저를 웃게 하는 유일한 존재인데 언젠가 헤어질 생각하면... ㅠㅠ

  • 6. ㅇㅇ
    '23.3.4 11:27 AM (58.234.xxx.21)

    아줌마들 수다에 끼고 싶은 남편 귀엽네요 ㅋ

    같이 있을때 너무 재밌다니
    천생연분이신듯 ㅎ

  • 7. 코코리
    '23.3.4 11:46 AM (121.125.xxx.92)

    덩치는 나보다휠씬큰데 마치큰아기같아요
    눈도큰데 본인몸 난치병있는데도 열심히
    의쌰의쌰혼자응원하면서 사는모습
    엄마마음(?)처럼 짠하면서도 안스럽게보여요
    눈이크다보니 사슴처럼보이구요
    나이도동갑인데말이죠
    제가스킨쉽을좋아해서 출근할때
    오늘도 화이팅! 하면서안아주면
    환갑가까워오는데도 부끄러워 어쩔줄몰라해요^^;;
    늙은아들과사는엄마느낌이네요

  • 8. ㅇㅇ
    '23.3.4 11:52 AM (175.223.xxx.134)

    과묵하고 점잖은 양반이
    갑자기 중2처럼 느껴지는데
    진짜 호르몬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호르몬이 무슨 조화를 부려서 그런 건가요?

  • 9. 아구
    '23.3.4 11:55 AM (124.49.xxx.22)

    모두 왤케 정겹게 사십니까~~ㅎㅎ
    앞으로도 그 마음 유지하며 행복하세요.
    진짜 인생 뭐 있나요 가족과 행복하면 그만이죠

  • 10. 신기방기
    '23.3.4 12:03 PM (59.6.xxx.68)

    호르몬의 세계는 오묘하죠
    사춘기 때도 사람이 잠시 짐승이 되기도 하고, 여성들 갱년기나 남성들의 오춘기나 다 ‘도대체 내가 왜 그런지 나도 몰라..’의 상태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 어떤 외부의 가르침이나 자신 내부의 의지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닌게 확실하죠
    사람의 의지나 의식 하에 변한다면 그 사람의 살아온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일텐데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 모습인걸 보면 더더욱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고 의식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래도 재미있는건, 내가 살아온 것과는 다른 모습의 나로 변신하여 한동안 지내보는 것도 긴 인생에 기분전환 정도 되지 않을까 해요
    제정신으로는 힘들지만 호르몬의 힘을 빌어 잠시 살짝 정상과 표준을 넘어 살아보는 것도 말이죠 ㅎㅎ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나를 타인의 시각으로 볼 기회가 되기도 하고

  • 11. ㅎㅎ
    '23.3.4 12:16 PM (58.127.xxx.56)

    그렇게 우리는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죠.
    다정하고 사랑스런 한쌍입니다.
    서로의 변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 12. ker
    '23.3.4 12:57 PM (180.69.xxx.74)

    진짜 아저씨들도 수다가 ....
    남편도 친구만나 몇시간씩 커피집에서 떠들다가 오곤해요
    우리도 사로 먼저 죽겠다고 싸우고요

  • 13. 쓸개코
    '23.3.4 1:29 PM (218.148.xxx.196)

    진짜 재미나게 사시네요. ㅎ 남편분 참 정가는 스타일.
    세상 적이 없으실것 같아요.

  • 14. ㅎㅎ
    '23.3.4 1:43 PM (221.147.xxx.153)

    사랑스러운 글이에요. 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 15.
    '23.3.4 3:38 PM (222.234.xxx.237)

    예전 82에서 본 댓글이
    남편 나이드니 안친한 동네아줌마랑 사는 것 같다였는데
    원글님은 친한동네아줌마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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