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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밭.

시원섭섭 조회수 : 2,779
작성일 : 2023-02-28 15:40:57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했다.

없는 집에서 없는 집으로 시집와 보니

없는 집 보다도 더 없는 집에

방 두칸짜리 초가집에서 시부모님과

시동생까지 보살피고 살아야 했단다.


시집와

쌀 독을 열어보니 쌀알은 안보이고

보리쌀도 바닥에 몇 톨이 전부여서

쌀독을 부여잡고 울었댄단다


재산이라고는 초가집 하나.

밭도 논도 없어

남의집 일을 해서 품삯을 받거나

쌀이나 보리를 받아 식구들 먹고 살아야했고

그와중에 자식들도 몇 낳아

시부모에 자식에 시동생까지

먹여 살리려니

하루가 그리 짧았더라.  하셨다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가진게 없어

열심히 일을 하고 일을 해도

내 재산을 만들기가 너무도 힘들었다고 했다

그저

빚지지 않고  부모님을 평생 모시고

자식들 잘 키워내는 것만도 다행이었다고.


소처럼 일해서

평생 힘들게 마련한게 터 넓은 내집 하나.



종중 밭을 경작하는 대신  종중 산소 관리에 시제 음식 준비를 도맡았다.

산 속에 있는 밭은 얕은 산이 해를 가리고

노루가 농작물을 헤짚어 대서

맘에 맞게 농사가 지어지지 않았으나

그걸 경작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뿌듯하셨단다


콩심고 팥심고 깨심고 고추심고...

먹고 남을 정도로 농사가 잘 되면 팔기도 하고

해마다 자식들 한테 내가 지은 농산물 가득가득

챙겨 보낼 수 있어서

그게 내 행복이라 하셨다.


내 밭이 아니지만

내 밭마냥 농사짓는게 재미나셨다고 하셨다.

재미보다도 몸이 더 힘들었겠지만

젊을때는 힘든 것도 몰랐다던 엄마는


한해

한해

몸이 늙어가고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왔었다


젊을때 몸 아낄 줄 모르고 농사일에 혹사했더니

뒤늦게 몸이 시위를 했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뼈 마디가 아팠다

그래도 농사를 놓기가 어려웠다


내것이 아니기에

여기서 손을 놓으면 다시 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올해만 하고 농사 그만 짓겠다는  다짐을

한해 미루고

또 한해 미루었었다.


그렇게 미루었던 한 해가

올해 마무리 되었다.


일흔여섯.

엄마는 묻지도 않았는데 말씀을 하신다.

거기가 해가 가려서 늘 그늘이 많은 자리라 알곡 여무는게 시원찮다.

심어 놓으면 심어 놓는데로 노루가 가만 두질 않아서

그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래도...내가 농사 짓는 동안 흙이 기름지게 해놔서

땅이 참 좋아졌다.

흙이 참 좋은데....


더이상은 안돼겠어서 손을 놓으시고는

마음에서 미련이 남으시나 보다

그래도 자식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자신감과 행복감이

그 작은 밭에서 나왔었는데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내가 내어줄 수 있었는데

그마저 못할지도 못하는 불안감이

자꾸 미련으로 남으시나 보다


몇년을 이제 그만 농사에서 손 놓으시라고

화도 내고 타박도 하고.

엄마 몸 생각하시라고 잔소리를 그렇게 해댄 나는

이제서야 다 내려놓으신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웬지 모르게

엄마 목소리에 힘이 없는 걸 보니

엄마의 시원 섭섭한 마음이 괜시리 안쓰럽기도 하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냥  주절거렸습니다.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목소리에 담긴 엄마의 섭섭함이 괜시리 마음 아파서요.






IP : 121.137.xxx.231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3.2.28 3:51 PM (222.233.xxx.135)

    마음 예쁘신 따님이네요..한동안 허전하실 어머님께 전화 자주 해드리세요

  • 2. ㅁㅎ
    '23.2.28 4:07 PM (175.223.xxx.107)

    열심히 살아내신 어머니, 존경합니다-

  • 3. 어머니
    '23.2.28 4:19 PM (175.199.xxx.119)

    세대들 정말 고생 많이 하신듯해요

  • 4. ..
    '23.2.28 4:26 PM (116.88.xxx.146) - 삭제된댓글

    예쁜 화분 하나 선물하시면 어떨까요?
    날마다 물주다보먼 꽃도 피고 그러는 걸로요.
    정 주고 마음 둘 무언가가 필요하실것 같아요.

  • 5. loveahm
    '23.2.28 4:46 PM (210.90.xxx.159)

    원글님.. 한편의 수필이네요..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요

  • 6. 원글
    '23.2.28 4:50 PM (121.137.xxx.231)

    엄마가 직접 지으시던 밭을 더이상 경작을 안하시는 거지만
    동네 소소한 품앗이나 이런건 하실 예정이고요.
    집 마당에 꽃나무도 있고 하지만
    친정엄마가 화분 좋아하시는 분은 아니셔서...^^;
    그냥 평생을 농사 지어오셨는데
    예전처럼 밭이 있으면 이거 심고 저거 심고 그럴 수 있는 일이
    이제 사라지니까 그게 좀 아쉬우신 거 같아요.

    다 비슷한 마음이겠죠
    평생 직장 다닌 사람은 퇴직할때 시원섭섭한 그런 마음이요

  • 7. 어머님은
    '23.2.28 4:52 PM (222.98.xxx.31)

    몇 남매를 낳으셨을까요?
    이렇게 엄마의 밭을 재경작하시는 따님이
    엄마를 든든하게 하실 겁니다.
    그래도 건강 살피시어 사랑하시는
    자식들이랑 천수를 누리시길 빕니다.
    담백하게 글 잘 쓰십니다.

  • 8. ......
    '23.2.28 5:01 PM (211.49.xxx.97)

    나이드셔서 몸움직여 자식들에게 줄려고 농작물 줄려고 키우시는게 즐거움이실것같아요. 그냥 조금만 농작물 키우라고 해보세요.다리가 아프셔도 허리가 아프셔도 그것보가 하는재미가 더 크실꺼에요.
    울엄니는 주는 재미보다 파는 재미가 더 커서 다 팔고 상품성없는것만 자식들주었거든요. 다들 받아도 시큰둥~~ 그래도 나이들어 할일이 있다는게 중요한것같습니다

  • 9. happy12
    '23.2.28 5:18 PM (121.137.xxx.107)

    으허엉.. 진짜 눈물나요. 어머니도 존경스럽고 원글님도 따뜻한 사람이세요. 이런게 삶 이겠죠? 좋은글 감사합니다.

  • 10. 어머님의
    '23.2.28 6:46 PM (92.18.xxx.83)

    시원섭섭함을 읽으시는 원글님의 마음이 참 따뜻해요. 어머님이랑 오래 오래 건강하게 좋은 시간 보내세요 ~

  • 11.
    '23.2.28 7:07 PM (223.38.xxx.23)

    엄마랑 비슷한 상황이시라 더 마음에 와닿네요.

  • 12. 어머님
    '23.3.1 12:28 AM (175.116.xxx.63)

    훌륭한 인생을 사셨네요 존경스럽습니다 많이 안아드리세요 콧등이 시큰하네요ㅠ

  • 13. 좋은 글이네요
    '23.3.1 7:59 AM (108.41.xxx.17)

    어머님이 밭을 경작하시는 그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네요.
    노루가 얄밉게 왔다 가는 그 모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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