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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지던 날

조회수 : 964
작성일 : 2023-01-30 12:40:00
설연휴가 끝나고서 다음날, 눈이 하루종일 무척이나 많이 내렸어요.
이런 날의 제 마음은 비닐하우스위에 두텁게 쌓여가는 눈처럼 한없이 무거워지게 됩니다.
중증장애가 있는 아들을 센터에 보내야하는데 아파트의 경사로가 위험하여 신경이 쓰이거든요.

물론 제가 시간날때마다 나가서 눈을 치우긴하지만 밤까지 계속 내리는 눈을 당할수는 없어요.
관리실 직원들도 열심히 쓸고 다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시작하여 경사로쪽에 오십니다.
제가 3년전에 발목에 골절상을 당하고나서는 미끄러운 길이 공포로 다가왔어요.
아들이 중증장애가 있는데 다른 가족이 없으니 병원에 2주간 누워있는게 불가능하여 수술을 못 받고 뼈가 저절로 굳게 했습니다.

전날 밤에 나가서 눈을 쓸기는 했지만 당일 아침에 잠이 부족하여 나가볼 여력이 없었어요.
걱정을 하며 아들을 데리고 나갔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경사로를 거의 다 쓸어놓고는 저와 아들을 보더니 더 빨리 눈을 쓸으시더군요.
순간 관리직원이 아닌것 같았지만 아들이 차 탈때까지 조심해야해서 아주머니께 따로 인사도 못했네요.

아들이 차를 타고 갔는데 그때서야 아주머니가 생각이 나서 둘러보았더니 어디론가 가고 계시더라구요.
달려가고 싶었는데 워낙 길이 미끄러워서 좀 떨어진 상태에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경사로의 눈을 치울 생각을 하셨냐고 물어봤죠.

아주머니는 본인이 밖에 나오는데 큰 자동차(쏠라티라서 눈에 띄여요)가 보이더래요.
순간 제 아들이 타는 차인줄 알고 재활용장안에 들어가서 빗자루를 들고나와 빨리 빨리 쓸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감사하다고 하며 몇 층에 사시느냐고만 물었습니다.

이 아주머니와 저는 아는 사이도 아니고 얼굴 본 기억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제 아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 한두번 본 주민들은 알고 있겠죠.
집에 들어오는데 계속 눈가가 촉촉해지는거예요.
어떻게 아는 사이도 아닌데 내 아들을 위해서 눈 쓸 생각을 하셨는지 너무 고맙더라구요.

잠을 못자서 피곤한데 오전에 아들의 센터에 보낼 간식을 만들고 오후에는 동호회에서 하는 강의를 나갔습니다.
수족냉증이 있어서 발 보온에 신경을 쓰는데 강의 장소가 하우스로 된 화원이라서 땅바닥이라 발이 더 시렵더군요.

강의장소에 오고갈때 차창밖에 쌓인 눈들이 왜 이렇게 아름답고 곱게 보이던지요.
나무에 쌓인 눈도 아름답고 언제 녹을지 모르는 눈을 밟으면서도 10대로 돌아간것처럼 온 세상이 하얗고 아름답게만 느껴졌습니다.

아들과 살면서 눈은 늘 공포의 대상인지라 하얗게 내리는 눈이 예쁘게 보일리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눈이 내릴때 아주머니의 선행을 떠올리며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헤쳐나가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를 보내며 몸은 굉장히 피곤했지만 마음은 솜털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듯 가벼웠어요.
이번일을 계기로 저를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속에 자신감이 좀 생겨난것 같습니다.
IP : 118.44.xxx.9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세상에
    '23.1.30 12:48 PM (211.234.xxx.235)

    너무나 아름다운 글이네요
    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세상살이에 많은 힘을 얻어갑니다
    눈 쓰신 아주머니께 축복을!
    원글님도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저도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눈을 쓸어주는 사람이 될게요

  • 2. 잘될거야
    '23.1.30 12:51 PM (39.118.xxx.146) - 삭제된댓글

    아름답고 따뜻한 얘기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아주머니의 비질 그것을 이토록 아름답게 소화하시는
    원글님
    곱고 잘 다져진 눈길을 멋지게 활강하는 스키어가 떠오릅니다 행복하세요

  • 3. 잘될거야
    '23.1.30 12:53 PM (39.118.xxx.146)

    아름답고 따뜻한 얘기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아주머니의 비질 그것을 이토록 아름답게 소화하시는
    원글님
    행복하세요

  • 4. 감동
    '23.1.30 12:56 PM (14.138.xxx.159)

    저도 웬지 코끝이 찡하네요.
    원글님 포함, 마음이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아드님에게 늘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고 또 응원합니다

  • 5. 다정함
    '23.1.30 1:21 PM (175.112.xxx.78)

    상대방의 입장에서 하는 말. 행동은 다정합니다.
    그 다정함이 원글님을, 원글님의 글을 읽는 저를 힘나게 해주네요.
    다정함의 힘!!
    감사합니다

  • 6.
    '23.1.30 2:42 PM (125.132.xxx.103) - 삭제된댓글

    고마운 이웃을 두셨네요
    따스한 마음들이 보태져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건가 봐요

  • 7. flqld
    '23.1.30 2:51 PM (118.217.xxx.119)

    하아~ 많은 분들이 이글 보시고 맘 따뜻해지셨으면 해서 로그인
    했어요

  • 8. 고마운 분..제가
    '23.1.30 3:37 PM (125.180.xxx.53)

    다 고맙네요.
    얼굴은 모르지만 눈을 치워주신 그 분.복받으실 거에요.
    원글님 ..아드님 행복하시길요..

  • 9. 정말
    '23.1.30 3:48 PM (58.239.xxx.59)

    이글이 실화인가요 서로 층간소음으로 줄일듯 살릴듯 으르렁거리는 이웃들만 보다가 마치 한편의 동화같네요
    갑자기 주책맞게 눈물이...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이 참 아름다울텐데요

  • 10. 시골
    '23.1.30 7:53 PM (114.204.xxx.17)

    마음이 따뜻해 지는글입니다.
    눈물이 나기도 했네요.

    그 분께 글을 따뜻하게 써준 님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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