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어쩌다 책읽는 아줌마의 어쩌다 고전 읽기^^

모비딕 조회수 : 2,311
작성일 : 2022-11-26 10:25:18
길어요^^
독후감이나 서평이 아닌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예요 



한동안 힘든 일도 있었고 머리 아픈 일도 연달아 있었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꾸준히 책읽는 스타일이 아니고 한번 꽂히면 잠도 안자고 읽지만 발동이 걸리지 않으면 눈길도 안주는 스타일
영혼이 꼬르륵 소리내며 양식을 달라고 아우성칠 즈음, 참 좋은 친구가 저의 책과 담쌓은 관성을 끊고 다시금 책을 펴게 도와줬어요 
짧지만 강렬한 명작으로 스타트를 끊고 그 여운을 잇고싶어 뭘 읽을까 찾다가 눈에 들어온 ‘모비딕’ 
고전이라고는 어릴 적 다들 보는 학생용 버전으로 읽은 것들이 전부, 어른이 되어서 있는 그대로 번역된 것이나 원서로 읽은 적이 거의 없어요 
무채색 표지로 싸인 두꺼운 책을 보자마자 올 연말을 저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


아 웬걸… 
고전을 읽으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이 고래 잡느라 사투를 벌일 때 저는 책과 사투를 벌여요 ㅎㅎ
지금은 그래도 줄었지만 처음엔 페이지 한장 넘기기 전에 한숨 백번이 기본 
한줄 건너 끊임없이 나오는 모르는 단어찾느라 입 안엔 내뱉지 않은 욕이 쌓여가고, 내용 파악은 안드로메다로… 
고래의 생물학적 분류와 종류별 특징, 학자들의 의견과 각종 지식을 써놓은 것이 나오면 몸 배배꼬다 엎어져 잠들고 
소설을 읽는 건지 백과사전을 읽는 건지 철학책을 읽는건지…
그래도 인내심을 쥐어짜가며 읽다보면 한번씩 제 영혼의 신경줄을 건드리고 감탄사를 토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자꾸 나오네요 
읽는게 넘 괴로운데…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고 씨름하며 읽다가 황홀함에 몸부림쳐요 ㅎㅎ


고래를 쫓아가며 솟구치는 파도에 튕기는 배들과 대양에서 오랜 세월 고래잡이를 한 선원들의 흥겹고 때론 기합같은 노래와 명령어들
앞서가는 고래가 만들어내는 하얀 포말이 양탄자 굴리듯 바다 위로  좌악 펼쳐지는 장관
고래에 작살을 던져 치명상을 입은 고래가 몸을 비틀며 마지막 숨을 쉬기까지의 고통 그리고 그것은 영웅적 승리인가 악마의 잔인함인가
온 바다를 헤엄쳐 다녀도 얼어죽거나 지치지 않게 담요처럼 고래를 감싸서 체온을 지켜주고 에너지원이 되주었던 두꺼운 고래지방을 오렌지 껍질 돌려깎듯 벗기는 작업에 대한 묘사
죽은 고래를 배 옆에 매달고 갈 때 잔치가 벌어진줄 아는 바다 고기들이 그 즐거움에 머리를 박으며 몰려들어 고래를 뜯어먹는 치열함과 선체에 전달되는 생생한 물리적 충격
거대한 몸의 작은 숨구멍으로 생명의 호흡을 하며 분사되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 인장처럼 찍히는 무지개에서 인간들의 물안개같은 의문과 의심에 직관이라는 무지개가 뜨는 순간을 떠올리는 작가 
선원들을 통해 보여주는 갖가지 인간상 그리고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자연, 선과 악,….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흔히 말하듯 아이키우며 얻는 즐거움이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지만 그것은 잠깐잠깐이고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힘들고 지치고 신경쓰이고 얽매이는듯 답답할 때가 많다고 하죠 
이 책도 마찬가지로 좋은 책임에 분명하지만 저에겐 길고 긴 고행길이예요 ㅎㅎ (제 수준에서 그래요^^)
오죽 힘들면 어떻게든 읽어보겠다고 꾀를 냈겠어요 
막장 아닌 따뜻하고 스트레스 없고 가벼운 책 하나를 더 골라 책으로 책 스트레스를 풀어보자! (이열치열도 아니고 ㅎㅎ) 
그래서 모비딕은 숙제처럼 매일 10페이지씩 머리싸매고 읽고 다른 책은 재미가 있다보니 자기 전 침대 맡에서, 지하철에서, 마구 읽어요 ㅎㅎ
생각보다 시너지 효과가 크네요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생각도 마음도 자유로워지고 유연성이 생기나봐요 
책도 한번에 한권만, 정자세하고 읽어야하나 하는 의문이 들면서 분단위로 쪼개서도 읽고 곁다리로 다른 책도 동시에 읽어보고
책을 얼른 끝내는 것이 다가 아니라 궁금한 것이 나오면 관련해서 찾아보고 공부하는 재미도 알게되고 (고래 공부 많이함 ㅎㅎ) 
다시 책읽기를 시작하면서 반가웠던 변화는,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다보니 간접 경험도 직접 겪은 것처럼 상상체험하는 능력이 그 사이 커졌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경험치가 적어 나의 상상력 하나에 의존했다면 경험치가 쌓인 지금은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능력 뿐 아니라 놀라움, 두려움, 슬픔, 가슴벅참, 절실함, 막막함… 등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서 책 속으로의 순간이동이 더 쉬워졌다는 것
그러다보니 아침엔 낯선 선원들과 한배에서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바닷 속 고래와 싸우며 경외감을 느끼고, 낮에는 아일랜드 바닷가에서 동네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도 하고 저녁엔 런던의 바에서 주인공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까 같이 앉아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렇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즐거움, 글로벌한 비대면 사교의 편리함과 재미가 짭짤해요^^


사는거 뭐 있나요
힘들지만 재미있는거 즐기며 사는거죠 
하지만 가끔은 굉장히 재미있고 특별한 것임에도 지루하고 다가가기 힘들만큼 멋대가리 없는 껍데기를 쓰고 있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으니 화려하고 번듯한 포장지에만 눈길을 주다 귀한 것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없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해요
고전읽기가 거대한 스케일과 그에 걸맞는 개고생이 따르는 일이지만 그만큼 매혹적이고 뿌듯함을 주는 일이라는걸 새삼 느꼈어요 
그 개고생에 오래 노출되면 다른 책들은 누워서 떡먹듯 쉽게 느껴질만큼 괴로움을 느끼는 센서가 무뎌지니까요 ㅎㅎ
모든 책이 모두에게 다 즐겁고 유익한 건 아니지만 뒤져보면 나에게 보물인 것들이 있는 창고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해요 
모비딕도 클라이막스를 남겨두고 있는터라 저에겐 터프하지만 알찬 연말 예약!
막바지로 치닫는 올해, 82님들도 마무리 잘하시고 건강하시길^^



IP : 59.6.xxx.68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2.11.26 11:00 AM (125.185.xxx.236)

    저도 책장 잘 안넘어가는 책 읽을땐 가볍고 재밌는 책이랑 더블플레이 해요. 이책치책 ㅋㅋ
    저도 모비딕 한번 도전해보고싶네요
    긴 글 재밌게 잘읽었어요^^

  • 2. 나도나도 ㅋㅋ
    '22.11.26 11:04 AM (183.103.xxx.126)

    저도 그러고 있습니다.
    고전을 읽으며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부분에서 빵 ㅡ터지며
    어쩜 나랑 똑같냐 ㅋㅋ

    처음 시작은 나이들며 건망증인지 단어가 깜빡하고 발음도
    무뎌지는거 같아서
    타이머 맞추고 5분간 소리내서 책읽기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5분이 10분되고 하더니 어느 순간 책내용에 빠져서
    책을 쭉 ㅡ 읽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나이들어 다시 읽는 고전은 또 다르게 느낌인것은 확실해요
    산 세월과 경험이 느낌과 시선이 달라지게 하나봅니다.

    안타까운 아름다운 사랑이라 생각한것이 이제와 보니 쌍놈쌍년들의 불륜이네 하며 욕도 하고 ㅋㅋ

    나이들며 책읽는 것은 참 좋은 취미다 다시 한번 느낍니다

    원글님도 화이팅 ~~

  • 3. ㅇㅇ
    '22.11.26 11:08 AM (110.11.xxx.132) - 삭제된댓글

    저는 죄와벌을 몇번보다말다 하다가 결국 완독했는데 그 여운이 참~~ 크더라구요 가벼운 소설류 주로보는데 그런건 확실히 읽을땐 좋지만 묵직함도 없고 전개도 소재도 비슷비슷~ 혹시 다른 추천하실 책 없으신지요 모비딕은 다음에 도전(?) 할래요^^

  • 4. 음..
    '22.11.26 11:20 AM (121.141.xxx.68) - 삭제된댓글

    저는 길~~고 읽기 힘든 고전 소설을
    실내자전거 타면서 소리내어 읽으면서 완독했어요.

    책읽으면서 실내자전거 타면 1시간은 읽더라구요.

  • 5. 모비딕도
    '22.11.26 11:46 AM (125.187.xxx.44)

    읽어야겠네요
    혼자 읽기 힘든책 줌으로 모여서 읽어요
    돌아가며 소리내 읽는데 의외로 빨리 읽히더라구요

  • 6. ㅇㅇ
    '22.11.26 12:18 PM (39.114.xxx.84)

    모비딕 읽어봐야겠어요
    고전 읽으며 고전을 면치못한다는 말 공감해요

  • 7. 눈이나빠
    '22.11.26 12:37 PM (203.237.xxx.223)

    저는 TTS 읽어주기 기능을 활용하고 있어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읽고 있어요
    읽어주기 없었다면 고전했을 거 같아요.

  • 8.
    '22.11.26 12:54 PM (1.236.xxx.183)

    어제 조국 전 장관의 법고전산책 주문했어요
    중고등학생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하니 한번 읽어보려구요
    15개의 고전도 소개된다니 같이 읽어보려해요
    요즘 바쁘다 심난하다 해서 책을 못읽엇는데요
    90세 할머니도 책을 읽으시더라구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404856 포털에 청룡 문소리님 기사가 별로 없네요 10 뱃살러 2022/11/26 2,101
1404855 전세 재계약임박인데요 8 고민 2022/11/26 2,870
1404854 말하는것 좋아하는 노인의 최고의 직업은 교수가 아닐까 싶네요 7 00 2022/11/26 4,199
1404853 유럽 다른 국가간 항공권 어디서 사세요? 5 티켓 2022/11/26 1,031
1404852 마스크 쓰니 젊어 보여 깜짝 놀랐던 8 .. 2022/11/26 4,676
1404851 요즘 운전하면서 창문내리고 욕하는 사람 11 2022/11/26 4,248
1404850 고등 어머니들 도와주세요...자사고 ?? 일반고??? 28 ㅇㅇ 2022/11/26 4,003
1404849 의자에 앉아서 허벅지를 딱 붙이고 있으면 8 .. 2022/11/26 3,698
1404848 카이스트 수시 면접날. 교내 주차 될까요? 9 ... 2022/11/26 3,604
1404847 여기서 추앙 받는 여신 21 2022/11/26 6,898
1404846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27 2022/11/26 4,652
1404845 심방세동에도 혈전용해제 쓰기도 하죠? 5 .. 2022/11/26 958
1404844 저번에 국어학원 원장의 국어공부비법 22 2022/11/26 3,596
1404843 갑상선호르몬검사했는데요, 1 피검사 2022/11/26 2,081
1404842 천공의 개소리 8 ... 2022/11/26 2,020
1404841 국가검진에서 2 ..... 2022/11/26 1,505
1404840 이재명이 돈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모르지만 32 ... 2022/11/26 3,005
1404839 마스크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 수 있... 13 마스크 2022/11/26 7,130
1404838 초등생 아이가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지는듯한데요 7 엄마 2022/11/26 3,285
1404837 웹소설 상수리나무 8 로맨스 2022/11/26 2,589
1404836 밬.달.집...혜윤이 상 펴고 옮기는거 아무도 안 도와주네요 7 ... 2022/11/26 3,262
1404835 인터넷으로 예금들기 좀 알려주세요 7 ..... 2022/11/26 2,035
1404834 제가 쇼핑다니는 걸 귀찮아해서 언젠가부터 온라인을 이용하고 있는.. 4 에쿠나 2022/11/26 2,677
1404833 침대프레임 어떤거 쓰세요? 3 ... 2022/11/26 1,850
1404832 요즘 벨벳은 왜그렇게 번질.미끌거려요? 3 .. 2022/11/26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