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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

조회수 : 2,984
작성일 : 2022-11-21 17:57:59

아이가 어릴 때 길을 가다가 만원짜리 슬리퍼를 하나 샀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새 신발이 있네 라고 해서



네가 유치원에 간 사이에 말레이시아에 가서 샌들을 사왔다고 말했다.



왜 그랬냐면 신발이 해변관광지에서 파는 신발같이 생겨서였다.




좀 자라긴 했지만 아직 아이였던 아이는 하루만에 어떻게 말레이시아에 갔다오냐 했다가



진짜 갔다왔냐 했다가 긴가민가 했다.




그러다가 그 신발은 <엄마가 말레이시아에서 사 온 신발>로 불리었다.




말하자면 그 신발은 대단했다.




로마시대 사람들의 샌들을 생각하면 된다.



굽이 없이 납작하고 발이 쏙 들어가고 얇은 끈이 발을 잡아 준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너무너무 편한 신발이었다.



만원밖에 안 한다는게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세상의 어디든 그 신발을 신고 다녔다.





다음 해 여름에도. 다음 해 여름에도. 신발이 닳는 걸 걱정하면서



나는 세상 방방곡곡을 그 신발 하나만 신고 다녔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은 어느날 그 수명을 다했다.



그토록 신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버릴 수가 없어서 신발장에 넣어 놓았다.



밑창을 본드로 붙이고 난리를 부렸으나 더이상은 신을 수 없었다.



신발은 가루가 될 정도로 낡았다. 너무나 사랑을 받은 까닭이었다.



너무 사랑받아 신발은 가루가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 나는 인터넷에서 세상에 그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을 보았다.



인터넷으로 살 수 있었다. 당장 두 컬레를 샀다. 기뻐하며 기다렸다.



아. 그런데. 신발이 왔는데 같은 신발이 아니었다.





나의 소중한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은 세상에 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이후에 더 좋은 신발도 사고 더 예쁜 신발도 사고 더 비싼 신발도 사 보았지만



세상에 다시는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같은 신발을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돈 만원으로 몇 년간이나 나와 함께 여름마다 온 세상. 온 세계. 온 나라 방방곡곡을 그렇게 발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해 주었던 나의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을 추억하며 이 글을 적는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터넷을 뒤질 때 나도 모르게 그 신발을 찾아본다.







여름이 오면 늘 그가 그리워진다

IP : 220.119.xxx.23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2.11.21 6:01 PM (218.50.xxx.219)

    아니 이런 예쁜 동화같은 스토리가 있나!!

  • 2. ㅋㅋㅋ
    '22.11.21 6:07 PM (118.235.xxx.61) - 삭제된댓글

    저는 ... 터키에서 산 2만원짜리 블랙 롱 원피스요. 여름에도 전체 가리고 다니는 이슬람특성이라 팔을 도려내고 나시 롱원피스로 입고다니는데...

    백화점 다니다 이제까지 10명 넘는 아줌마들에게 이거 어디서 샀냐고 질문을 당했네요.

    울딸은 두바이 자라에서 한 여름에 산 무스탕 4만원짜리
    또 질문당하며 어느 명품이냐고 톰포드꺼냐고 물어보네요. 톰포드가니 스타일은 똑같더라구요

  • 3. ㅇㅇㅇㅇ
    '22.11.21 6:11 PM (112.201.xxx.230)

    원글님 작가 하세요 19금 글에 이어서

  • 4. 제목이 심쿵
    '22.11.21 6:17 PM (59.28.xxx.63)

    너름 아름다운 스토리에요.

    제목에서 심쿵하고 읽습니다

  • 5. 모모
    '22.11.21 6:18 PM (222.239.xxx.56)

    좋은글은 이렇게
    사람 기분을 좋게 해주는군요
    감사합니다^^

  • 6. 제발
    '22.11.21 6:19 PM (222.239.xxx.56)

    하루 한변씩 써주세요^^

  • 7. ㅎㅎ
    '22.11.21 6:32 PM (203.218.xxx.91)

    행복한 글 감사합니다

  • 8. 복숭아
    '22.11.22 12:00 AM (121.188.xxx.187)

    단언컨대 그대의 글은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같은 글이오. 계속 기다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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