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고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리터럴리 육식녀라서 뭔가 큰 기대를 하고 들어오신 분들께는죄송...).
어려서 매일 고기 반찬이 없으면반찬 투정을 했고 ㅋㅋ 풀떼기만 있는 밥상은 제게 밥상이 아니었으며
엠티가서도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먹을 정도로 전 미트러버예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토끼 생선 거의 모든 육류는 종을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데,
(개고기는안 먹어여. 개 키우는 사람이라 ㅋ)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돼지껍데기와막창 곱창에 꽃혀서 온 몸에 기름 튀겨가면서
자글자글 구워 먹는 맛을 알게 되었고
프랑스에 공부하러가서는 토끼 넙적다리에꽂혀서 오븐에 그렇게 맨날 구워먹었음...
Picard에 가면 개구리 뒷다리 냉동도 팔고, 에스까르고도팔고,
이 얼마나 다채롭고 농후한 기름의 맛의 향연인지!
아무튼, 고기 없이는 못 사는 저인데.
왜 하필 저한테는 초식남만 꼬이는건지.
구매부에 있던 허우대 멀쩡한 청년하나.
어쩐지 눈이 자주 마주친다 싶었음.
업무 관계로 가끔 구매부 쪽에 가면어딘가 시니컬한 말투이길래 별로 싹싹한 타입은 아니네 싶었는데.
갑자기 점심시간에 사람들 다 있는데우리 부서 사무실에 와서 왜! 대놓고 데이트 신청입니까? 부담스럽게.
쇼팽 피아노 콘서트 티켓이 있는데같이 보러가자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당황스럽...
(참고로 조성진 님과 임윤찬 님이 혜성같이 등장하기 한 참 전임을 밝힙니다. 나름 저도 마흔 줄 ㅠㅠ...)
아무튼 거절하면 사람 무안할까봐 세종문화회관에 같이 가긴 갔으나...
어머 대박... 연주 감동해서 이 사람 옆에서 울어... ㅠㅠㅠㅠ
그 분 눈물을 쓱 닦고 벅차오르는가슴을 진정시키고 콘서트 홀을 빠져나오는데...
이 사람이야 저녁 안 먹어도 배부른표정이긴 하나 저녁을 먹어야겠지요... 그래도 나름 데이트니까...
그런데, 털털하게 생고기 구워먹자고 한 내가 잘못인가.
이 남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미개인 이라도 보는 것처럼 이렇게 말하네요?
- 00씨. 고기 좋아하세요?? (작게 으읔 다 들렸어.)
그래서 제가 반문함. - 그럼 XX씨는 뭘 좋아하시는 데요??
그 남자 정말 사심없이 나이브하게이렇게 말합니다.
- 저요?? 엄마가 만들어준 만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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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메뉴로 뭘 먹었는지 기억조차나지 않지만
아무튼 이 이야기는 우리 부서에서 몇 년 동안이나 회식 자리에서 회자되었고
나는 공식 육식녀로 인정받았고...그 분은 우리 부서에서 엄마만두로 불림...
그 분은 저에 대한 환상(대체 왜?내가 뭘?)이깨진 것이 었는지 날 피해다니기 바빴ㅋㅋㅋ
님... 나도 님 별로거든여? 어휴 허우대만 멀쩡해서는.
이 이야기를 왜 십 여 년이 지난지금에서야 끄집어 내냐면,
매일매일보는 우리 집에 있는 남자가채식주의자기 때문입니다 ㅠㅠ
결국 식성이란 것은 연애에 있어서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ㅎㅎㅎ
그런데 저녁 마다 요리 따로따로두 번 하기 좀 힘들고 빡치네요 좀.
그나마 비건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휴.....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고기를 구울것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