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의 과거를 언제 어떻게 풀어낼지였어요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이 드라마의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그의 과거 서사가 필요없다는데 완벽하게 동의했습니다.
다만 이건 궁금하더라구요.
과연 구자경에게 현진이 형은 어떤 존재일까??
냉철한 구자경이 왜 현진이 형한테는 속마음을 들키고 계속 속아주는 것일까?
그래서 한 번 쓸데없이 상상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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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경 이야기 >
현진이 형, 영일이와 나는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영일이와 나는 여섯 살 때
한 살 위의 형은 여덟 살 때 들어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빵빠레 하나 들려준 뒤
보육원 앞에 나를 두고 갔다.
형이 오기 전 1년 동안은 같은 방 쓰는 형들에게 많이 맞았다.
형들 기분을 알아서 잘 맞춰주던 영일이보다 나는 더 맞았다.
이 새끼는 뭘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한다고.
그런데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현진이 형이 그 형들과 친해지면서
맞을 때마다 우리를 막아주었고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었다.
영일이와 나는 그런 형을 엄마처럼 따랐다.
현진이 형과 학교 육상부에 뽑히게 되었다.
또 열심히 하면 국가대표에 뽑혀 올림픽에도 나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꿈이 생겼다.
그러면 나도 이 보육원을 떠나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러다 멀리 뛰기로 종목을 정하게 되었는데
훈련 시간에 나와 장난치다 형은 허벅지를 다치게 되었다.
그리고 육상을 그만 두었다.
그때 형은 고 3.
운동 말고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성년이 되어 보육원을 나간 형은 술집에서 일한다며
가끔 찾아와 탕수육도 사 주고 치킨도 사 주었다.
형에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 부상만 안 당했다면 육상을 계속해서
나처럼 체대에 가고 국가대표도 될 수 있었을텐데......
성공하면 꼭 형을 도와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불행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전국체전에 나가 결승에서 착지할 때 발목을 다친 것이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내 몸은 쓸모없어졌다.
감독님은 재활치료를 해 보자고 붙잡으셨지만
돈 한 푼 없는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부서진 내 꿈을 감당하지 못했다.
당장 체대 기숙사에서 나왔다.
갈 곳이 없어 보육원에서 나와 택배일을 하던 영일이에게 무작정 찾아갔다.
그러다 알바라도 구하려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내게 누가 연극표를 건넸다.
다리도 아프고 해서 쉬려고 들어간 극장에서
나는 울어버렸다.
배우가 되고 싶어졌다.
당장 연기를 하지도 못하고 포스터 붙이고 소품 나르고 청소하는 일뿐이었지만 행복했다.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하는 선배들 틈에 끼어
광장시장에서 사 온 빈대떡에 소주 몇 병을 먹으며
선배들의 연기론, 인생론을 듣는 게 너무 좋았다.
그러나 이것도 못할 팔자였는지
극단은 곧 문을 닫았고 영일이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당장 월세방 보증금을 빼도 수술비는 몇백이 모자랐다.
형제같은 영일이를 그냥 죽게 할 수 없다.
그때 갔다.
현진이 형이 뭘 하는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그냥 갔다.
웨이터라도 하면 되지 싶었다;
그리고 3일 일하다 호빠 선수 제의를 받게 되었다.
하루 정도 고민하다 그냥 나가 보기로 했다.
인생 뭐 있냐.
인생을 걸었던 꿈은 내 발목뼈처럼 부서져버렸고
이 넓은 서울에서 지금 잠잘 방 하나가 없는데,
친구는 죽어가는데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아무도 나를 말리는 사람도 없으니.
그런데 힘들었다.
남편 욕, 시어머니 욕, 직장 상사 욕.......
내가 구경해 보지도 못한 인간관계를
그것도 술 먹고 주구장창 늘어놓는 욕지거리뿐인 주정이니 대꾸해 봤자 대화도 안 되고,
차라리 어디 가서 실컷 맞고 돈 버는 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2주 만에 그냥 미수금 받는 일로 빼달라고 했다.
그냥 사장님 옆에서 인상만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하필 가게 사장님은 자기 빚도 많은 인간이
외상값 달라는 소리를 못해 가게를 접을 형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도맡다보니 다른 가게에서도 나를 부른다.
그러다 신회장 눈에 띄어 관리하는 가게가 많아졌다.
거기서 또 돈 받으려고 행패도 부려주고 마담들도 가르치고
이런 내가 싫어 술 마시는게 일상이 됐는데 자주 가던 바에서
일하는 여자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백수진, 그녀의 오빠도 같은 세계에 있는데
똘똘하고 싸움도 잘한다며 나를 좋아해 준다
시니컬하지만 예쁘고 술 대작도 잘해 주는 그녀.
어느 날 보니 우리는 같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망가져 갔다.
매일 창문도 없는 지하에서 지하로 돌아다니며
내 영역을 넘보는 놈들 머릿속을 계산하고 통제하느라,
술주정하고 싸우는 인간들 말리느라 지칠대로 지쳐버렸는데
여자 친구는 하루 종일 집에서 술 마시며 나만 바라보고 외롭다고
내 감정을 쥐고 흔들려고 한다.
상담받자고,
그러면 죽고 싶은 그 문제가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집을 나가려 하지 않고
오빠라고 백사장은 자꾸 신경 좀 쓰라고 잔소리다.
나도 이 세계에서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은데,
장부 보고 술값 부풀리고 탈세하고
심지어 남들 다 하니까 하긴 하지만 돈이나 감아대는....
이런 내가 혐오스러운데
그 와중에 도박에 빠진 현진이 형 가게 미수금 받아내느라
나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데,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데.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죽었다.
추가) 그런데 써 놓고 보니 참 쓸데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의 주제 의식은 훨씬 심오한 구원론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16화를 보고 진심 충격받았는데
그런데 여기에 또 진부한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네요.
어쩐지 굉장히 술술 써지더라구요.ㅎㅎ
해방일지는 제 생각의 범주를 뛰어넘는 걸출한 작품인 것 같아요^^
그냥 자신의 삶을 갉아 먹는 현진이 형을
구자경이 왜 환대하고 살아서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
써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