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학 소설: 윤산군(尹山君) 일기1
청와궁을 용산으로 옮기는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건만 윤산군의 집안은 고요했다.
“아니 궁을 옮기는 것 가지고 뭐 이렇게 호들갑이야? 선거 때 광화문 시대를 연다니까 다들 좋아했잖아? 참 네, 말이 안 나오네. 왕이 한다면 하는 거지, 겁 없이 대들고 말이야.”
윤산군은 흥분했는지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도리질을 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어차피 며칠 저러다가 말겠지요. 무지한 백성이 뭘 알겠어요. 헛소리하는 언론 몇 놈 혼내주면 금방 잠잠해질 거에요.”
윤산군의 부인 김비(妃)는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청와궁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어요. 거기로 들어갔다간 박씨 부녀의 운명을 걷게 된다고 건진법사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박씨 부녀란 이전에 왕을 지냈던 두 명의 부녀를 가리키는데 아버지는 측근의 총에 맞아 죽었고, 딸은 탄핵을 받아 쫓겨났다. 탄핵을 받아 폐위된 박근화(朴槿花)는 윤산군과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박근화가 왕일 때 의정부에서 탄핵이 되자 신천지당 탄핵파들은 그녀가 왕에 복귀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당시 특별 수사를 하던 윤검사(훗날 윤산군)에게 은밀하게 선을 댔다. 요구조건은 이랬다.
“박근화가 재기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을 수사결과를 만들어주시오.”
“알겠습니다. 일단 뇌물로 엮어 놓으면 더는 청와궁에서 버티지 못할겁니다. 언론과 반대파 야당에서 들고 일어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이 우리 대신 열심히 싸워줄 테니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윤검사는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결국 박근화는 자기가 만든 당 사람들에게 탄핵이 되고 최종적으로 재판에서 탄핵이 확정되고 말았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왕이 끌어내렸다고 생각했지만, 윤산군은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사로 엮어서 죄를 만들고 언론의 힘으로 폭군이라고 만들어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그의 수사 패턴은 대체로 그랬다. 조극 법무판서를 수사할 때도 같은 방법을 썼다. 우선 아무 사건이나 엮어서 기소하고 다른 사건을 추가 수사하고 언론을 통해 나쁜 이미지를 뒤집어씌웠다. 그도 결국 얼마 못 가 주저앉고 말았다.
조 법무판서를 수사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그가 차기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경쟁자는 일찌감치 제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는 검찰을 개혁하려는 생각을 가진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것이 그의 진짜 죄였다.
윤산군은 생각했다.
‘이제 검찰도 내 손에 들어왔어. 나를 건드릴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곧 물러날 문왕(文王)에 대한 백성의 지지가 높다 하지만 검찰을 움직여서 없는 죄를 만들어 엮어 넣으면 지지율 거품은 단숨에 빠지고 말지. 그 작업은 문왕이 퇴임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면 될 것이고, 그거보다 급한 건 청와궁을 대신할 집무실을 만드는 것이야. 건진법사는 청와궁 터가 좋지 않아 거기로 들어가면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절대로 거기는 들어가선 안 돼. 거기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나는 대한국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 것이야.’
최고의 군주가 될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건진법사는 윤산군의 신앙과 같은 인물이었다. 일찍이 그는 윤산군이 검찰청장이 될 것을 내다본 인물이었다. 그는 하늘의 영(靈)을 받아 알 수 없는 글을 쓰고 알 수 없는 말을 하였는데, 영을 받은 다음 그것을 해석하여 풀어주곤 했는데 신기하게 잘 맞아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하였다. 그런 그가 윤산군에게 왕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예언이 실현되고 나니, 더욱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윤산군이 왕으로 선출되던 날, 건진법사는 윤산군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청와궁 터는 이미 운이 다했습니다. 다음에 왕이 되는 사람이 그곳에 들어간다면 가장 참혹한 모습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거기는 살기가 넘쳐나 측근끼리 싸움이 나고 신하가 왕을 거역하는 배반의 기운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거기다 집무실 밑으로 수맥이 흐르고, 수맥을 따라 오갈 곳 없는 혼령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단 하루도 잠을 자면 안 됩니다. 내 말을 분명히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윤산군 부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왕이 돼서 좋기는 한데 청와궁으로 들어가는 순간 살기를 맞아 죽거나 쫓겨난다니 도저히 들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법사님, 그런데 대중대왕이나 영삼대왕은 큰일은 없었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분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덕을 많이 쌓아 업(業,카르마)이 많이 소멸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삼대왕도 살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외환위기를 겪은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 아닌가요? 청와궁 만한 장소를 얻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텐데요?”
“제가 한 곳을 봐 두었습니다. 그곳이라면 천하의 성군이 될 명당의 터입니다.”
“정말 그런 곳이 있습니까? 어서 가르쳐주십시오.”
“네, 그곳은 바로 용산(龍山)입니다. 용산은 한강 물이 앞에 흐르고 기운이 원활하게 소통이 되는 곳입니다. 용은 물을 만나야 승천합니다. 그곳은 윤왕(尹王)을 위한 천하 길지(吉地)로 천년을 준비한 곳입니다. 이제 비로소 주인을 만난 것입니다.”
건진법사는 미리 준비한 내용을 줄줄 얘기했다.
이미 윤산군 부부는 그의 말이라면 하느님 말씀처럼 신봉하고 있었다.
“과연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용산에서 가장 적당한 곳은 어디입니까?”
“현재 국방청 자리가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 그곳이 합당할 것입니다.”
“과연 법사님의 혜안은 신묘막측하시군요.”
윤산군 부부는 감탄했다.
“그런데 청와궁을 국방청으로 옮긴다고 하면 반대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큰일 하는 사람이 그런 작은 일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청와궁을 옮기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뱁새가 어찌 봉황의 큰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의 원망 따위에 신경쓴다면 군주의 위엄은 사라지고 맙니다. 윤왕께서는 대한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을 남기시는 성군이 될 것입니다. 저는 내일부터 윤왕님 부부의 안녕을 위한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그럼, 계룡산으로 가시게요?”
“당분간 거기서 하늘에 기도하며 국운의 융성을 기도하겠습니다.”
“법사께서는 과연 이 나라의 충신이요, 국사(國師) 이십니다.”
윤산군은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했다.
건진법사와의 만남을 마친 후 윤산군은 윤핵관(윤왕의 핵심관계자)들에게 용산 국방청 자리에 집무실을 옮길것이라고 말했다.
“아니,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하나요?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여론의 반대가 심할 것입니다. 비용도 만만찮게 들고요.”
“법적으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정 용산으로 가고 싶으시면 일단 청와궁으로 갔다가 1~2년 계획을 세운 다음에 가도록하시지요.”
윤핵관들은 정치를 해본 사람들이라서 사안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윤산군을 말리고 싶었다. 그때 김비가 나섰다.
“이것 보세요. 당신들은 윤왕께서 왜 집무실을 옮기려고 하는지 생각을 해보셨나요? 뱁새 주제에 봉황의 뜻을 짐작하시겠다? 당신들이 할 일은 왕의 뜻을 받들어 그것을 현실화하는 겁니다. 국방청 자리로 들어가는 것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당신들은 그것을 탈 없이 만들어 내야 하는 거예요. 어이, 대변인. 당신은 우리가 청와궁으로 들어갈 확률은 제로라고 언론에 발표해주세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서두르세요.”
김비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윤산군이 왕으로 선출되자 김비는 마치 자기가 왕이라도 된 듯이 행동했다.
윤핵관들은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이성적 판단은 없는 좀비처럼 돼가고 있었다. 윤왕은 처음에는 윤핵관 말을 조금 듣는 것 같더니 언제부턴가 전혀 듣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안하무인의 본성이 나오고 있었다. 거기다가 진짜 왕처럼 군림하는 김비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아직 정식 왕노릇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헤쳐 나간단 말인가? 윤핵관들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윤핵관 중 한 명은 건진법사의 정체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