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예정 되었었다.
막판에 이 출판이 보류되었다고 한다.
그 책의 해설 집필을 청탁 받고 쓴 글을 올린다.
해설은 공유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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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대통령
이 동 순(시인)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왔는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선거나 개혁을 통하여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은 왔던가? 단 한 번이라도 온 적이 있었던가? 이 원초적 질문에 대하여 완전히 긍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개는 탐학과 부조리로 말미암아 그 끝이 좋지 않았고, 비극적 결말을 이룬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까닭이 대체 무엇 때문인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자체단체장 선거 등등 무수히 많은 선거를 실시하였으나 우리가 바라는 원융(圓融)과 대화엄(大華嚴)의 조화로운 통합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니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어쩌면 이것이 냉정하고도 엄중한 평가일지도 모르겠다. 민중들은 언제나 진정한 변화를 갈망하며 여러 선거에 임하곤 했지만 세상의 흐름은 항상 제자리걸음, 개혁을 실천하는 그 어떤 꿈틀거림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그토록 제대로 된 변화, 획기적 진보를 바라고 원했지만 그러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방해하고 차단하는 교란의 장치나 내외부의 각종 요인들이 장벽처럼 가로막아 늘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리하여 민중들의 기대와 희망은 공백이나 표백상태로 희석되어 버리곤 했다.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고 그저 선거를 관습적 의례로만 겪었을 뿐이다. 70년 세월이 흐르도록 요지부동인 국토의 분단 상황과 그로 말미암은 빚어지는 온갖 분단모순들, 특히 개인이 품고 있는 체질화된 허무주의, 냉소주의도 여기에 한몫 더했다고 볼 수 있다. 대체 누가 되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랴? 라는 식의 체념과 방관, 자포자기의 태도 또한 이러한 기류를 더욱 부채질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세상은 알게 모르게 아주 조금씩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변화와 진보를 이루어왔다. 그것은 마치 빙하가 녹듯 전혀 느끼지 못하는 속도로 조금씩 달라져온 것이다. 불안과 혼란이 극도에 달했던 해방 시기나 6.25전쟁 직후를 떠올려보면 그때에 비해 엄청나게 달라지고 진화된 우리의 삶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진정한 변화를 갈망하는 우리의 마음이 워낙 초조하고 다급해서 지난시기의 경과를 비관적으로 평가하지만 민주적 방향의 변화는 극미량(極微量)으로 바뀌어져 왔다.
민주주의의 정착을 바라는 민심과 변화는 1960년 4월혁명 이래로 그 속도가 그나마 이전에 비해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련과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았던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뜬히 민주화와 대동세상(大同世上)을 향한 하나 된 민중적 역량의 결집을 보여주었고, 변화에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들의 의식까지도 자극과 경종을 주어서 오늘에 다다른 것은 놀랍다. 근년의 촛불혁명만 해도 민주주의의 크나큰 성취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이 이룬 성취와 계승문제에 대해선 더 많은 반성과 연구가 필요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군사쿠데타와 독재, 경제적 궁핍으로 고난을 겪는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경우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때가 되어 다시 대통령선거 시즌이 다가왔다. 다수의 후보들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민심과 표심을 얻으려 애쓰는 시절이다. 온갖 낯 뜨거운 일들도 펼쳐진다. 그 여러 후보들 가운데 우리는 특별히 한 사람을 주목한다. 바로 이재명(李在明, 1964~ )후보이다. 그는 경북 안동 예안의 산골에서 태어나 그곳 삼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극빈의 환경에서 초졸 소년공으로 일터에 나가 일찍부터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산업재해도 여러 차례 입었으나 제대로 된 보상조차 전혀 받지 못했다.
이후 노동자생활을 하는 중에 이를 악물고 공부해 검정고시로 중등학력을 통과하고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자신의 뼈저린 고생을 바탕으로 더욱 열심히 학업을 연마하여 대학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정치적 유혹이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이재명은 자신이 살아온 고달픔을 알기에 그러한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힘겨운 지역사회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언제나 억울한 일을 겪는 주민들 편에서 그들과 하나 되어 고락을 함께 했다. 이후 경기도지사가 된 뒤에도 항상 지역민과 약자를 우선적으로 돌보는 정책의 실천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사랑을 받았다. 다른 여러 후보들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을 돕고 감싸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재명후보가 아마도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권력의 속성에 대한 여러 선지자들의 격언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유럽의 정치가 E.버어크는 정치책임자들의 위험한 권력남용에 대해 경계한다. 무제한의 권력이 지배자를 타락시킨 경우를 그는 여러 글에서 자주 지적하곤 했다. 진정한 권력은 정치력으로 얻어지는 막강한 권력이 아니라 진리, 사랑, 관용, 온후(溫厚), 친절과 같은, 다시 말하자면 인간에게 부여된 이러한 최선의 미덕이야말로 가장 위력적인 권력이라는 말뜻을 이재명후보는 진작부터 알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미국대통령 윌슨의 말처럼 그의 인간성과 지혜, 그리고 힘을 특정하는 척도(尺度)가 된다. 과거 얼마나 숱한 한국의 역대대통령들이 이러한 기준과 함량에 미달되는 안타까운 경우를 직접 보고 겪었던 것인가? 그것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전체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폭력으로까지 고스란히 떠안겼던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고 경험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 대통령의 연설문을 다시금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그가 쓴 여러 회고록이나 문서에서 프랭클린은 문장의 서두를 “인쇄공 출신의 나 프랭클린은~”이라고 시작했다. 청년기시절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기억하는 그의 문장은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우리는 이재명후보가 이런 미덕을 공유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소년공 출신의 나 이재명은~” 이런 감동적 문구를 오래도록 국민들에게 겸허히 보여주기 바란다. 말하자면 소년공시절의 고통을 결코 잊지 않고 진지하게 국민을 섬기며 초심을 실천해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우리 모두는 바라는 것이다.
시인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동티모르의 대통령 사나나 구스마오, 시인으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아프리카 세네갈의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는 남미 코스타리카의 대통령 아벨 파체코에 대해 은근한 부러움을 갖고 있다. 그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했으나 그 국민들은 문화강국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문화와 인문학, 인문정신이 살아있는 나라를 우리는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작고한 저항시인 김남주의 시작품 중 ‘대통령 하나’의 감동적인 부분을 떠올린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서/ 아름다운 이름의 대통령 하나를 갖고 싶다/ 나 죽어 이 강토에 묻히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의 대통령 하나를 갖고 싶다/ 자본가들 정치헌금이나/ 주둔군의 총구에서 튀어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산과 들에서/ 공장에서/ 조국의 하늘 아래서/ 흙 묻은 손과 땀에 젖은 노동의 손이 빚어낸/ 그런 대통령 하나/”
-김남주의 시 「대통령 하나」 부분
가슴이 뜨거웠던 시인은 이런 대통령의 출현을 마음속으로 꿈꾸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놀랍게도 이재명후보가 그 바쁜 와중에서 틈틈이 시작품을 읽고 자신이 특히 애송(愛誦)하는 시작품을 골라 시선집을 발간해보겠다는 갸륵한 뜻을 밝혀왔다. 시, 혹은 문화에 대해 이렇듯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갖는 모습에 대해서 우리는 신선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모름지기 시의 세계에는 그 어떤 사악함도 침입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사무사(思無邪)의 아름다움’이 들어있고, 또 거기엔 조선왕조의 시인 남효온의 고백처럼 ‘맑음과 고결함을 머금은 인간정신과 영혼의 울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의 영역을 따뜻하게 사랑하고 껴안으려는 인간 이재명을 우리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보내온 시선집 『가난한 사랑노래』의 원고에는 도합 8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1920년대 대표시인 한용운에서 청년시인 류근에 이르기까지 62편의 국내시작품과 13편의 해외시인 작품까지 들어있다. 해외시작품으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칼릴 지브란, 랜터 윌슨 스미스, 톨스토이, 아틸라 요제프, 칼릴 지브란, 성 프란치스코, 타고르, 호세 리잘, 체 게바라, 어느 인디언이 남긴 시적 구절, 푸시킨의 시작품이나 명구(名句)까지도 두루 들어있다. 물론 국내작품 중에서도 전업시인이 아닌 함석헌, 김수환, 신영복, 이외수 등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한용운, 정현종 등의 시작품과 ‘어느 인디언’으로 표시된 해외작품 등은 2편 이상 중복으로 실린 경우도 있다. 그것은 이 선집 원고를 가려 뽑은 선자(選者) 이재명 자신의 기호와 취향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 전체 수록작품의 특성과 지향은 이재명후보 자신의 전반적 취향과 시적 선호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가장 선호도가 높은 주제는 사랑과 희망(소망)을 노래한 시작품의 선정이다. 그것은 각각 7편 이상으로 확인된다. 다음 선호주제로는 절제와 겸손의 미덕, 위기현실의 암시와 상징, 노동가치의 중요성과 신성함, 단결의식의 고취 등이 각각 3편이다.
기타 주제들로는 자유와 양심의 실천, 시련의 극복, 소통과 인연, 상처와 장애인에 대한 연민, 그리움, 촛불항쟁의 의미와 계승 및 그 실천, 기타 선호주제로 반영된 작품들로는 가난, 섭리, 자기성찰, 평화, 인간이라는 소중한 존재성, 용기, 소외, 그늘, 탐구심, 눈물, 배려, 침묵의 의미, 수많은 당신, 선택과 동행, 조국의 자부심, 연결의 중요성, 진정한 영원성, 선도적 역할의 중요성, 위기, 독재와 폭력성에 대한 단호한 거부, 배반과 착취에 대한 혐오, 어머니, 중심과 평정의 유지, 작고 평범한 존재에 대한 사랑, 선도적 역할, 모든 인간의 소중함, 세상의 청결성 유지를 위한 노력, 개인(국민)의 의미와 그 소중함, 절차와 단계에 대한 민주주의 수칙, 겸손, 관계의 소중함 등이다.
시라는 특정한 문화적 도구에는 이렇듯 많은 인간의 삶과 현재라는 시간성, 역사성이 담겨져 있다. 이재명은 그러한 시의 비의성(秘義性)을 진작부터 주목하며 시를 읽어왔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인격적 가다듬기에 노력해왔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소중하다. 우리는 이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이 시선집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과 민족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이재명의 가슴 속 꿈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랑과 희망을 무엇보다도 삶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그 고귀함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선자(選者)의 포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영남의 북부지역의 일부인 안동시 도산면에서 인간 이재명은 태어났고 유소년기를 보내었다. 안동은 오른쪽으로 영양, 청송, 왼쪽으로는 예천, 남쪽으로는 의성, 북쪽으로는 영주 봉화와 그 경계가 붙어있다. 남서쪽으로는 평탄하지만 북동쪽으로는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청동기시대 이래로 주민의 집단거주가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분화도 이루어졌다. 창녕국, 구영국, 소라국, 기저국, 불사국 등의 이름으로 이 지역에서 품격 높은 고대국가들이 자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격적인 발전은 3세기중엽부터 신라의 관할구역이 되고난 이후부터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서 고창군을 거쳐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이 되었다. 임진왜란 시절부터 근대시기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출신의 범상치 않은 지식인 유성룡, 김성일, 김해, 유종개, 이만도, 김도현, 이상룡, 이육사 형제 등이 눈부신 구국활동에 나섰다. 안동출신 독립 운동가는 도합 369명으로 국내 최고의 숫자를 자랑한다. 그들은 자기 온몸을 바쳐서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실천에 헌신하였다. 그러한 활동은 안동인의 기질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재명 또한 그 숭고한 정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안동에는 안동향교, 예안향교가 있어서 예로부터 뜨거운 교육열을 나타내었으며 특히 퇴계 선생을 모신 도산서원은 한국서원의 대표적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하회별신굿놀이, 놋다리밟기 등의 민속놀이가 오래도록 전승되어 와서 안동지역의 전통성과 문화적 두께를 더하고 있다. 이재명후보의 출생지인 도산면은 안동시의 북부에 위치해 있는데 1914년부터 도산면으로 부르게 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5개 마을이 수몰되었고, 1995년부터 시군통합으로 이곳은 안동시에 편입되었다.
이재명후보가 대선출마 후 첫 행보로 방문한 곳이 바로 자신의 고향 도산면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이다.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은 일제강점기에 무려 열일곱 번이나 형무소를 드나들며 제국주의 압제에 저항했던 항일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 1904~1944)의 모든 관련 자료와 기록들을 한곳에 모아둔 곳이다. 이육사 시인은 민족의 슬픔과 조국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이 나라의 대표적 민족시인이다. 이육사문학관은 시인의 독립정신과 업적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보여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재명은 2021년 7월 1일, 고향 안동을 방문해 지역유림대표와 환담을 나눈 뒤 곧바로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했다. 당시 이 후보는 "충절의 고장이자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을 기억하며 처음 시작했던 초심을 결코 잊지 않겠다. 국민이 바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바른 정치로 나라를 빛내겠다"며 자신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재명후보는 방명록에서 ‘아름다운, 그러나 힘겨운 삶을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육사 시인의 묘소를 참배한 뒤에는 시인의 고명딸 이옥비 여사를 만나 시인의 생애담을 주의 깊게 경청하였다.
우리는 인간 이재명의 이러한 행보가 지닌 의미와 상징성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부디 다수의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그의 뜻이 성취되어 그야말로 민중에게 길이 사랑받는 대통령, 시와 인문학을 사랑하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민족사에서 오래 기억되는 아름다운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