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아빠의 전화
부재중 전화가 떴는데 나는 다시 걸지 않는다
그냥 모른척 하고 싶다
'아빠'라는 발신인에 왜 이리 온갖 감정이 나를 찍어누르는지 모르겠다.
기어코 전화를 다시 하는 아빠
김치 가져갈래?
아, 글쎄, 별로...
김치 가져다 먹어...@##$$%**&
(저항할 의욕도 없다..)
아 네..그래요. 내일 가지러 갈게요
대충 전화를 얼른 끊는다.
그때부터 밀려오는 마음의 답답함과 짜증스러움
그놈의 김치가 뭐라고..몇 번이나 불평을 한다.
아빠의 세 번째 부인이 한 김치를 꼭 날 먹이려고 하는 건 왜 일까.
자신이 살뜰한 부인 만나 잘살고 있다고 내게 보여주려는 걸까.
나에 대한 미안함을 부인 손을 빌어 김치로 보상하려는 걸까.
몇 년째 먹어봐도 여전히 낯선 김치 입에도 맞지 않는데,
다 먹은 후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쌓여있을 김치통도 꼴보기 싫고..
먹고나면 김치 맛있냐고 꼭 물어보는 아빠도 바보 같다.
아무리 김냉도 없고 둘 데가 없다고 해도
김장철만 되면 오는 전화가 벌써 몇년 째인지.
이미 담궈 놓은걸 어쩌니, 우리도 더 넣을데가 없다..며 밀어넣는 김치.
매일 먹는 김치, 누구나 먹는 김치
나는 왜 그 흔한 김치를 거절하지 못하고 억지로 먹고 있을까
짜증스럽고 떨쳐버리고 싶지만 살아낼 수 밖에 없었던 내 인생처럼.
.
그리하여
오늘도 모 아파트 주차장에서 1년 만의 김치전달식이 진행된다
김치 전례는 이렇다
아파트 근처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면
흰 머리 성성한 아빠가 김치통을 밀고 내려온다
모질고 짜증스러운 마음을 먹다가도
하루 하루 노쇄해가는 아빠의 모습이 내 양가감정의 죄책감 쪽을 자극한다.
죄책감은 내 짜증을 더 증폭시킬 뿐.
까칠한 여고생처럼 퉁퉁거리고 봉투를 아빠 손에 쑤셔넣고 돌아선다.
야야, ,,,진짜 싫다 ...안받어..내가 너한테 김치 팔아먹냐..
아우..아빠...받으세요 그냥 맛있는거나 사드세요
내가 김치받으러 왔겠어요.
운전석 문을 탕 닫고 출발하면서
적어도 서로 김치가 목적이 아닌건 확인했네..하는 마음에 썩소..
이제 모두 흩어지고
연락하고 지내는 유일한 혈육 아빠와 나.
성장기 파편화된 가정에서 갈갈이 찢긴 마음은
서로를 바라볼 때 미간을 찌푸리게 할 뿐 좀처럼 서로 만나지지 않는다
얼마남지 않은 시한부 관계라는 인식도
우리 마음을 다시 묶어주지 못할만큼
우리는 깨진 거울로 어그러진채 잠깐씩 생존확인을 할 뿐이다.
커피가 필요하다
뜨겁고 든든한 커피.
운전해서 100 미터쯤 가다가
길가 작은 카페에 들어서 뜨거운 라떼를 한 잔 주문한다
앞에 선 자그마한 모녀.
젊은 엄마와 땅에 붙어 서있는 아기.
내 손바닥 반 만치도 안될 것 같은 아기 발을 보는데 울컥 올라온다.
나도, 내 아기들도 저만할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 나는 과거에서 온 사신이 내 영혼을 묶어놓은 것 처럼
마음 밑바닥 먼지 찌꺼기들에 휩싸여
맘 편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하지 못했다.
내 엄마가 되기 싫고, 내 아빠가 되기 싫어서 몸부림치며
내 아기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
내가 도대체 얼마나 소중한 걸 놓친걸까..
운전하며 한 손으로 연신 뿌연 눈가를 부빈다.
내키지 않는 김치,
받아와서 또 꾸역꾸역 먹는 나.
김치는 김치일 뿐이니까. 라며 애써 쿨한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