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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를 보면 생각나는일

가을이지요 조회수 : 1,738
작성일 : 2021-10-17 20:48:23
우리집은 중국집이었어요.
크리스마스,어린이날. 어버이날,졸업식날.
토요일저녁, 일요일, 28일 친목회등등 이런날은
더 바빴어요.저도 식탁을 닦고 쟁반을 날라야 했어요.

식당한켠에 자바라로 가려진 방이 우리 가족들의 공간이었어요.
2명의 동생들과 방을 같이 쓰고,
홀은 손님들이 오고가는 소리로 시장바닥같았어요.

가끔은 라디오음악을 혼자 들을수있는 조용한 내방이 갖고싶었어요.
커텐달린 창문도 책상옆에 있으면 더 좋았을것같았고요.
그꿈, 가슴아프게도 제가 여상을 졸업하고
타지의 약품회사로 떠나서 기숙사에서 3년을 넘게 지낼때에도
반지하에 자리잡은 중국집은 지상에 절대 올라오지못했어요.

아빠는, 돈을 모으지 않았거든요.
돈이 모아지면 늘 술을 마셨어요.
밤새도록 혼자 떠들었어요.
낮엔 대신 잠을 잤어요.
엄마는, 그런 아빠를 대신해서
꽤 오랫동안 식당을 이끌어나가야 했어요.

아빠는 어느날 중풍이 왔어요.
늘 저를 간절한 눈빛으로 올려다봤어요.
돈있으면 달라고요.

결혼전의 일이고, 모아둔 돈이 어느정도 있기때문에
그때마다 벽돌절반정도의 두께쯤 되는 지폐뭉치가
제 통장에서 떠났습니다.
늘 한두달이면 만기되는 적금통장이었어요.
뒷면에 뽕뽕 뚫린 구멍들.
예기찮게 만난 장면인데도 심장에 구멍뚫린듯
들숨날숨이 혼자 가빴습니다~

그 어느날도
마지막 남은 돈을 털고 
한산한 산중턱 벤치에 앉아있었더니,
마침 간판의 불이 켜졌는지 확인하러 나온 아빠가
버스가 지나가자 잠시 두리번거립니다.
앙상하게 마른 다리가 벌벌 떨립니다.
방금전까지도 죽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산중턱을 올라온 제 눈동자가득 눈물이 넘실거립니다.

우리집 식당 수세미는
늘 낡고 헤졌습니다.
접시를 닦고 솥단지를 닦아내느라
빛도 바래고 늘 엉클어져있습니다.

그 수세미가 쉴땐
불이 꺼진 밤에.
전 저녁나절이면 
도마를 정리하고 빗자루로 부엌을 쓸고
그릇을 정리하는 그 시간이
엄마와 아빠에게 편안한 시간일거라고 여겼어요.
그러나, 제가 늘 부엌에서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저녁나절이
피곤하고 지치는 일과라는것을
주부가 되어보니 알았어요.

수세미.
어딜가나, 수세미를 보면 
늘 그 생각이 떠오릅니다. 중국집과 또 커다란 웍들.
또 저녁마다 켰던 중국집 간판에 대해서.
또 매운 냄새를 풍기던 말간 양파들에 대해서.

IP : 1.245.xxx.138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1.10.17 8:58 PM (175.198.xxx.100)

    고생 많으셨어요. 돈은 드리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따뜻하고 편안하게 잘 살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 2. 건강
    '21.10.17 9:03 PM (61.100.xxx.109)

    원글님 지금은 잘 살고 계시는거죠~~~
    식세기 놓고서..수세미 안쓰고

  • 3. 원글
    '21.10.17 9:05 PM (1.245.xxx.138)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나는 건.
    식당이 점점 잘되지않으면서 엄마가 배달통을 들고 배달까지 다녀야 했어요.
    그 어느날은 좀 거리가 멀었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않자 아빠가
    또 간절한 눈빛으로 저와 동생에게 다녀오라고 했어요. 그곳은 **의원이었어요.
    그 배달통을 둘이 나란히 들고 가는데 횡단보도도 두번씩 건너고 이불가게도 지나고,
    버스정류장을 지날때.
    뚱뚱한 아저씨 두명중 왼쪽자리의 안경쓴 아저씨가 앉아있다가 하는말.
    난 방금전 이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
    우리 그날 돌아와서 엄청 웃었어요, ^^

  • 4. 물건하나로
    '21.10.17 9:14 PM (124.49.xxx.188)

    A4 용지 한장 글쓰시네요
    수세미 하나로 베스트 극장 하나 쓰셧어요.
    가장 개인적인것이.가장 창의적이다.


    고생하셧어요.

  • 5. .......
    '21.10.17 9:41 PM (222.234.xxx.41)

    성격급한저는
    부모님
    그리고 님의 현재가 궁금합니다
    어찌살고계시나요

  • 6. 원글
    '21.10.17 9:49 PM (1.245.xxx.138)

    부모님중 아빠는 중풍후유증과 암으로 고생하다가 2005년도에 저세상가셨고
    엄마는 항암투병후 씩씩하고 조용하게 성모님께 기도드리면서 살고있고.
    저는 결혼18년차 두아이엄마.
    사라지지않는 감수성 엄마이며 알뜰하게 살림하고 알바도 하고 약간의 후원금도 내고
    한때 그돈이 잘 쓰여지지않는다는것에 대해 망연자실해서 잠시 끊었다가 적당한 곳에 약간내고.
    병원에서 알바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요즘 읽지못하는것은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고있으나
    너무 어려움. 남편은 주말부부.
    아이들은 감수성많은 엄마를 둔 덕에 초2아들도 수요일 급식으로 나왔던 고구마맛탕을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맛없는걸 참고 억지로 먹었다고 하네요. 우걱우걱이란 단어, 참 뭉클해요.

  • 7. .' .
    '21.10.17 11:04 PM (115.139.xxx.42)

    응답하라 드라마의 한장면 같아요..
    조금은 아픈 추억 멋진 글빨ㅋ로 함께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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