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떠난 것이 월요일 저녁이었죠.
화요일은 제주도 현지에 살고 계신 언니가 같이 놀자고 청해왔습니다.
제가 좋아할 만한 장소로 데려가 주신다네요.
아침에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제주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곳 현지인들이 주로 다니신다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11시부터 1시30분까지만 운영하시는 식당이랍니다.
11시에 도착했음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더군요. 소박하지만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제주언니가 지시하는 대로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마치 비밀의 숲을 연상시키는 그런 숲속입니다.
어느 정도 들어가니 내비게이션 지도에서 길이 사라졌습니다.
이 도로는 일반도로가 아니라 임도(임산물의 운반 및 산림의 경영관리상 필요로 설치한 도로)라고 합니다.
비포장 구간도 많아서 엉덩이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벌목한 나무를 싣고 나오는 어마어마한 트럭과 만나서 비켜가느라 힘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고생은 숲을 만나는 행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곳이라 거의 자연그대로의 숲이네요.
제 차의 새로운 이용방법을 아시지요?
차를 주차하고 숲속의 나무꾼처럼 앉아서 제주언니가 준비해온 작두콩차를 마셨습니다.
숲속 여기저기 멧돼지 주의 안내문이 보이는데다가 저 멀리서 멧돼지의 소리로 짐작되는
소리가 들려서 댕댕이를 각별히 주의 깊게 살피게 되더군요.숲에서는 나무냄새와 흙냄새가 섞인 매우 안정감을 주는 향기가 납니다.
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욕심껏 깊은 숨을 들이 쉬어봅니다.
가슴을 활짝 열고 흐으읍!!!
산 속은 일찍 어두워진다고 3시30분쯤 차를 돌려 내려왔습니다.
산을 거의 내려오면 수줍은 오솔길처럼 오름의 입구가 보입니다.
마치 제발 들어 오지마....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오름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오름이 아니라 영화 아바타를 연상할 만큼 원시적인 모습이네요. 나무가 크고 우거진 숲이 아니라 작은 넝쿨류의 나무가 많아서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산책로를 가로질러 넘어져 있는 나무도 있고-아마도 이번 태풍에 넘어진 것이 아닐까 싶더라구요.
오름의 정상까지 대략 30분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니 한라산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오름들이 굽이굽이 펼쳐집니다.
해가 기운 시각이라 어느 오름의 그림자가 또 다른 오름에 짙게 드리워서 신비로운 색깔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댕댕이는 얼굴이 난리도 아닙니다. 색색의 풀씨들이 달라 붙어서 마치 케익 데코레이션을 뒤집어 쓴 것 같습니다. (풀씨가 핑크도 있더라구요)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도 한 번 찧었습니다.
잘 못 넘어지면 안되니 조심조심 또 조심해서 내려왔습니다.
오늘은 제주의 비밀의 숲을 경험한 신비로운 날입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강아지 목욕을 시켰습니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풀씨를 떼낼 방법은 목욕뿐이지요.
이곳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느끼는 점 중에 하나는 쓰레기에 대한 거랍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무게를 달아서 충전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인데, 저 혼자 있을 때는 3원,
7원 그랬었는데, 손님이 있던 날에는 19원이 나왔습니다. 도시락으로 가져간 어묵탕이 남아서 버린 것이 원인일겁니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합니다.
그리고 생수 패트병이 정말 많이 나오네요.
혼자 먹는데도 패트병을 보면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사람 하나가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며 살아가는군요. 집에서보다 이렇게 혼자 지내보니 훨씬 세세하고 예민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 서울은 비가 내린다고 하네요.
제주는 화창한 날씨입니다. 있다 저녁때부터 비가 오려나봅니다.
오늘 아침은 빨래를 두 번 돌려서 마당에 널었습니다.
해를 보며, 바람을 느끼며, 탁 탁 털어서 널었습니다.
옆집 할아버지가 트롯음악을 들으시며 분재화분을 가꾸고 계십니다.
엄청 넓은 마당에 분재 화분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담이 낮아서 한집이나 마찬가지인데... 눈이 딱 마주쳐서 인사를 했습니다.
분재를 하신지 10년이 넘으셨다고 하네요.
며칠 동안 바깥으로 돌았으니 오늘은 집에 있고 싶습니다.
오후에 원두나 사러 슬슬 나갔다 오려 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주를 떠나는 날을 하루 연기하였답니다.
4일이 연휴의 끝이라 올라가는 고속도로도 많이 밀릴 것 같았는데,
이곳 상황이 하루 더 있어도 될 듯 해서 5일 아침배로 제주를 떠나게 되었답니다.
이제 남은 날이 며칠 없네요. 아쉽고 아까운 하루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이곳은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몰아쳐도 그리고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제게
휴식을 주는 제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