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저도 둘 다 퇴근이 늦어요.
애는 제가 픽업하고요.
시간이 맞아서 남편을 집 앞에서 기다렸다 들어가는데
다른 때와 달리 많이 업되어 있더라구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핸드폰에서 X과장과 저녁식사 라고 적혀진 메모를 본거에요.
저한테는 일이 늦어서 더 하고 가야 한다고 했거든요.
물어 보니까 야근하는데 후임들과 X과장이 토스트와 소주를 사와서 먹다 퇴근했데요.
씻을때 보니 구겨진 영수증에서 회사 근처 호프집 계산이 나와요.
물어보니 2차를 가서 자기는 계산만 하고 먼저 나왔데요.
X과장이 계산할줄 알았는데 내가 사서 분위기도 그렇고 돈 아깝고 별로 기분 좋은 자리가 아니었데요.
그 날 밤에는 그런가 하고 넘어갔는데 찜찜해요
담 날 아침에 너댓명이 가서 왜 금액이 그것밖에 안나왔냐
물어보는데 급하게 잡힌 자리이기도 하고 애들이 샌드위치를 미리 먹고 가서 술만 먹느라 금액이 그것 밖에 안나왔다.
너가 요새 아파서(검사를 앞두고 있어요, 몇 달째 힘든 상황이에요)
내 성격상 알면 걱정하고 파고들 것 같아 말 안했다(남편 주사 전력 있어요).
어쩌고 저쩌고 회사에서 네 걱정 많이 한다 등 마무리 했는데
이상한거죠.
결국 타 팀 다른 X과장 단 둘이 호프집 다녀온거 걸렸구요.
동명이인이라 X과장이라고 둘러댄거죠.
그 타 팀 X과장은 들어온지 한 달도 안됐어요
제 남편이 업무상 처리해달라 이거 해줘라 저거 해줘라 꾸준히 소통해야 하는 자리고요.
말 안통하는 상사 밑에서 뒤치닥거리 하느라 혼자서 힘들어한다는 얘기는 꾸준히 들었었구요
제 남편도 입사한지 몇 달 안되서 서로 동병상련 어쩌구 말이 통했는가 모르겠는데
회사에 커피가 없어요, 휴게 공간이 없어요?
유치원생 애 있는 유부녀가 하필 코로나 시국에 2인이상 모이지 말라는 자리에 굳이
지네 팀 사람도 아니고 다른 팀 남편한테 단 둘이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거에요?
제 남편과는 나이차도 제법 나요, 직급도 차이 나고요.
미친년 아니에요? 저도 사회생활 십수년차에요. 지금도 회사 다니고요.
제 머리로는 그 미친년 생각이 잘 이해는 안되지만
그래 입사한지 얼마 안돼, 아는 사람도 없지. 회사 동료로서 한 잔 하자면 할 수도 있지 하고 억지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취한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던 남편한테 오만정이 떨어져서
아주 잘근잘근 밟아 주긴 했는데 정말 열통 뻗쳐서 살수가 없네요.
사실은 이러저러 해서 마셨다, <---사실대로 말 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 다 거짓말로 모면했고요.
내가 못미더워하니 마누라가 아프니 회사에서도 신경이 많이 쓰여 이러저러하게 사람들한테 물어봤다면서 날 달랬는데
실제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유부녀 과장이랑 즐겁게 한 잔 하고 천연덕스레 그렇게 날 달랬다고 생각하니 정말 남편이 너무 가증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