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커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미 20대 시절부터 딩크족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요즘에는 눈에 띄게 늘었다. 작년까지 로스쿨에 다니며 만난 20대들은 그런 경향이 더 뚜렷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요즘 주위를 둘러봐도 이미 결혼한 젊은 부부 대부분은 아이와 함께 살 계획이 딱히 없다.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 1980년대 후반생인 내가 청년일 때도 그랬지만, 갈수록 그런경향은 더 명확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통계를 가져올 필요도 없다. 주변 동기들이나 또래를 보더라도 아이를 가진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자기 삶에 집중하고, 아이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하고 싶지 않고, 아이 키우는일이 딱히 매력적이지 않으며, 나와 반려자의 아름다운 삶이 훨씬 중요하다는 관념이지금 청년 세대에 흐르고 있다.
이런 관념에는 주거 불안 같은 부분도 깊이 들어와 있다. 아직 집 한 채도 없고, 집 한채 가질 가망도 없는데, 아이는 사치라는 말은 거의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 키우는 일의 힘겨움을 굳이 감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확인하곤 한다. 스스로 어떤 전문직이나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화려한 삶을 살고 스스로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거기에 아이가 추가된다고 해서 그 행복이 더 커질 거라고는 좀처럼 믿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느 사회든 청년 세대의 마음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청년 시절이란 어디에서나자기 자신의 꿈이나 욕망이 가장 중요한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회에서는 청년 시절이 저물어가면서 대개의 청년은 기성세대처럼 가족을 이루고 아이 낳는삶에 서서히 마음이 기울어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 문제는 '앞선 세대'의 삶이 '이후 세대'에 어떤 식으로든 계승될 여지가 없어져간다는 점이다. 앞선 세대의 삶은 행복하기보다 불행해 보이고, 참조가 되지않는다.
혹은 앞선 세대 중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적어도 다 '집'이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 청년들이 볼 때 그 외 가족을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해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느 사회에 있을 법한, 넓은 마당에서 아이들과 잔디를 깎고, 침엽수림이 가득한 곳으로 캠핑을 가서 행복하게 사는 가족의 이상, 가족이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없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가족의 이미지란 주로 가정 불화와 폭력, 사회생활과 집안일의 노예, 대화가 사라지고 팔짱도 끼지 않는 부부, 여성의 경력 단절, 자녀의 입시지옥, 교육에 목숨 거는 부모, 서로 아파트 평수로 비교하기 바쁜 동네 커뮤니티 같은것에 가깝다.
우리 사회에서 기성세대는 이후 세대에 자신들 삶의 방식으로 초대하는 데 실패했다. 본디 세상 모든 청년은 바로 그런 초대에 의해 기성의 삶에 들어선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그런 매력적인 초대가 없다. 그나마 있는 몇 장의 초대장은 안정적인직장과 집을 가진 소수 계층에만 보내진다. 경력 단절 위험이 작고, 흙수저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양가의 많은 도움과 여력으로 행복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이들에게만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 외에는 불행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하나뿐인 삶에 그나마 더 나은 행복을 위해, 아이 없는 삶을 택한다. 자기 삶에 적어도 커플 간의 사랑은 남아 있길 바라면서, 아이를 포기한다. 그들의 선택은 현명해 보인다. 애초에 초대장을 받지 않은 사람은 무도회에 가봐야 망신만 당할 뿐이다. 청년 세대가 초대장을 받지 않은 삶에 들어서지 않는 건 불행을 자초하지 않을 정도로 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불행을 보고 배웠고, 절망의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