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비가 오네요.
베란다난간에 부딪치는 빗방울소리가
참 곱네요.
이상하죠.
난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언제 들어도 심신이 편안해지는데
왜 욕실에서
수돗물이 똑똑 한방울씩
떨어지는 소리는 귀에 거슬릴까요?
똑같은 물방울 소리인데.
예전에 오래전에 살았던
낡고 좁은 반지하 욕실이
종종 그랬어요.
어린아기랑 혼자 지낼때가 많았는데
화장실타일바닥으로
똑또옥똑
한방울씩 떨어지는 그 소리.
아무리 수도꼭지를 다시 야무지게
잠궈봐도 그 소리를 잠재울 길이 없더라구요.
낮에는 왜 못들었을까.
후회를 해도 소용없고.
뭐, 그 헐거운 수도꼭지뿐이 아니라
꽃샘추위에도 덜컹대는 유리창문들도
낡고 빛바랜 나무창틀위에서 바르르 떨기는
매한가지였던 그 집.
그래도, 건강해서, 젊어서
어린애기의 포근한 체온을 의지하면서
참 잘 건너온 세월이었지요.
그때 틈날때마다 읽었던 많은책들중에
지금은 흔치않지만
그무렵엔 무료사외보도 많았잖아요.
그때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오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해
다소 건조하게 쓴 칼럼도 있었는데
갑자기 그 화가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그 화가이름을 안다고 해도, 크게 도움될 일은 없지만
머리 한구석에서 생각날듯말듯한 이 간지러운 느낌
나이들수록 더 심해지겠어요. 비오면 꼭 그런 그림이
생각나던데, 양복입은 남자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오는
그 그림.
그 낡고 비좁은 방에서 믹스커피한잔을 마시면서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기술한
영주부석사라던지. 경주에서 보낸 고요한 요사채라던지.
혹은 파란장미는 왜 없는지에 대해 쓴 과학지식같은 책들을 읽던
어떤 날도 가끔은 그리워지네요.
절대 옆사람과의 수다로는 그런 이야기들을 할리는 없을테고
외로울때 또 심심할때,
또 슬프고 복잡한 심경일때
뜬금없는 이런 건조하고 딱딱한 주제의 글들이
또 위안이 되기도 해요.
아무래도 또 그런 딱딱한 빵같은 글들이 이젠 제 취향이 되려나봐요.
오늘 내리는 비도 잔잔하니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