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남자가 보아도 가슴이 설렐 정도로 단아한 외모와 매너를 지닌 조국 법무부 장관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용모로 외도 한번 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대견하다. 그는 착실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가정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자녀들에게 이루어진 일들을 자신은 모르며 모두 아내가 한 일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필자는 믿을 수 없다.
가냘픈 듯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풍기는 그는 바깥에서는 수많은 역경들을 이겨냈으며 가정에서도 가족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 것이 분명하다. 단지 다른 서민 일꾼들과는 달리 자녀들의 학업문제, 집안의 재산문제 등 시시콜콜한 가정사에 너무 관심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걱정은 든다. 자신은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겠지만 특권의식과 귀족의식을 지닌 강남권의 아주머니들이 일으키는 치맛바람과 같은 일들에 일일이 참견해온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지 의아한 마음이 든다.
결국 장관임명 명분의 인질(人質)로 잡혀 있던 가족들을 포기하고 자신의 신념을 택했다는 점은 분명 투사(鬪士)로서 옳은 길은 맞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였기 때문이었다. 밀려서 된 것인지 스스로 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조국 신임 법무부장관이 아니고서는 해 낼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개헌이다.
보통 서민들은 이런저런 일들에 신경 쓸 시간도 갖지 못하며 해결한 방법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알아도 그 방법이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처지인 것이 다반사임에도 조국 후보는 해냈다.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을까?
◇조국과 나르시즘
물론 자신감이라는 것은 열등감의 반작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조국 후보 자신도 그러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 후의 일들이 너무 잘 풀려나갔는지 몰라도 그가 아무리 겸손함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그에게서 풍기는 귀족적 분위기를 부정할 수 없다.
그 자존감은 나르시스트 성격을 키워냈는데, 그 증거는 현재 그가 보이고 있는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과 같은 극도의 비판과 비난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자아도취적 성향에 덧붙여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의 태도는 꺾임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인간은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떨어진 거리에서도 각종 매체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적절한 관찰을 통해 상대방의 품행(品行)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조국 신임장관의 품행인 것이다.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선한 모습과 부드러운 매너 그리고 아름다운 말들과는 달리 그의 내심(內心)은 섬뜩할 정도로 다르다는 것이 우리가 받고 있는 충격이다. 드러나지 않았던 행동들과 그가 했던 말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리 있다는 점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표현을 사람들이 조국 장관에게 적용하는 경우를 많이 들었다.
조국 신임장관은 동학혁명의 주인공인 전봉준을 기리는 뜻에서 만들어진 ‘죽창가(竹槍歌)’를 2019년 7월 13일 자신의 페이스 북에 소개하였다. 죽창가의 가사는 “모래알 같은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모두 합심하여 저항을 위해 비록 보잘 것 없으나마 한 자루의 죽창이 되어 단결하자”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굳건한 결의를 반영하고 있다. 필자는 조국 신임 장관이 소위 ‘사노맹’ 운동으로 구속을 당하기도 했던 민중(民衆)을 사랑하는 검소하고 겸손한 ‘사회주의’ 노동 운동가였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죽창가를 운운하고 서민들을 위한 시민단체의 대명사격인 참여연대에서 9년간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그였기에 위선적이고 이중적 생활과 삶이 충격이었다. 오히려 '죽창가'를 지은 김남주에 대한 모독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을 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이 이토록 뻔뻔스러울 수 있는 이유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지만 성격형성과정에서 특정 영역인 대인관계에서 ‘도도함’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는 공인(公人)으로서 역할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그가 보였던 품행과 행실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실현”이라는 법무부의 캐치플레이스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정상인과 정신병 환자의 중간단계에 있는 사이코패스
조국처럼 겉으로 보는 모습과 내면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중적인 사람을 우리 정신과 전문의들은 ‘사이코 패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이코패스가 무조건 폭력적이고 난폭한 행동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 패스는 겉으로는 속성을 숨기고 있지만 머릿속은 잔인하다. 게다가 겁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성격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또 좁은 시야로 자기이익만을 위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집요하고 용감하지만 이타(利他)적이거나 이성적이지는 못하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는 정신병자들보다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이코 패스가 더 위험하다.
이러한 고집스러운 성격과 자기성찰의 부족이 때로는 이점(利點)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역사를 볼 때에 악명만 떨친 사이코패스도 있지만 성공한 사이코패스들도 상당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역사를 통하여 훌륭한 지도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사이코패스는 많았다.
그리고 비슷한 성격으로 인하여 뜻이 잘 통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이코패스가 있고 수동적으로 따르는 사이코패스들의 집단이 형성되기도 한다. 주동하는 사이코패스에 의존한다는 뜻이며 단결력도 있다는 뜻이다. 소설 ‘수호지’의 양산박에 모인 그들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조국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게 된 경위가 궁금하신 분은 국내에서도 2012년에 출간된바 있는 케빈 더튼(Kevin Dutton)의 저서인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The Wisdom of Psychopaths’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http://www.jayoo.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