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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피천득

jalsaraboza 조회수 : 2,006
작성일 : 2021-05-03 17:11:39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립다.

스물한 살의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득료애정통고(得子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失了愛情痛苦)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IP : 106.243.xxx.240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신록
    '21.5.3 5:19 PM (124.50.xxx.153)

    아침운동길에 나무들 새순 돋아 연두빛 나뭇잎들 반짝이는게 넘 이뻐 한참을 올려다 보았네요. 원글님 감사합니다. 넘 좋은글이네요.

  • 2. ....
    '21.5.3 5:28 PM (180.66.xxx.46)

    이분 글은 깔끔.간결 .감정배제에 탁월하신듯요.

  • 3. ..
    '21.5.3 5:57 PM (222.104.xxx.42)

    마음까지 정갈해지네요 감사합니다

  • 4. ~~~~
    '21.5.3 6:22 PM (119.207.xxx.82) - 삭제된댓글

    어제 오랜만에 반포 허밍웨이길에 있는 피천득 시산책로 걸으며 '오월' 새삼 음미했어요. 선생님 시를 느끼다보면 영혼이 참 맑으신 분이셨던 것 같고 남자분이신데도 여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셨던 듯해요.
    연보를 보니 2007년에 돌아가셨던데
    생각보다 그리 오래전에 가신 건 아니더군요.감사합니다,원글님.

  • 5. ㅇㅇㅇ
    '21.5.3 6:26 PM (120.142.xxx.14)

    요즘 주말주택에 가서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텃밭 먹거리 모종들을 심는데, 한참 일하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산이 딱 이런 느낌입니다. 겨울..산의 속살까지 보여지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연하고 이쁜 색깔의 잎들이 속속 올라오는 모습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답니다. 제맘을 작가들은 이렇게 이쁘게 표현해주니 좋네요. ^^

  • 6. 나는
    '21.5.3 7:08 PM (1.241.xxx.7)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캬~~~ 너무 신나네요^^

  • 7. ......
    '21.5.3 7:56 PM (222.232.xxx.108)

    원글님 감사합니다
    읽고만 있어도 내 마음까지 청신해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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