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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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무령왕릉 어금니 한 개의 비밀 / KBS 2003.5.3 방송
1. ...
'21.4.29 4:04 AM (180.224.xxx.53)지금 국왕의 아버지였던 아키히토 국왕이 몰래 공주에 왔다갔던 일은 유명하죠..극우들은 아니라고 난리치지만 여러증거와 고증으로 봐도 일본왕가가 백제의 후손이라는건 거의 사실이니까요.
2. ...
'21.4.29 5:03 AM (58.234.xxx.222)그러면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의미인가요...
부여 여행 갔을때 주변 숙소가 롯데리조트 밖에 없었다는...공주, 부여가 가깝고도 백제 유적지로 볼거 많은 곳인데 호텔이 많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이 나네요.3. 일본
'21.4.29 5:17 AM (67.21.xxx.22)일본이란 국호 자체가 백제의 옛별칭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https://youtu.be/JtG2Q2KhinM
세가지 가설
1. 당나라 혹은 입장에서 백제가 해뜨는 쪽의 나라
백제의 원래 이름이 일본 -> 나중에 건너가서 그이름 그대로 사용
2. 백제 입장에서 현재 일본이 해뜨는 쪽의 식민지(?) 혹은 지방정부
3. 홀본 -> 일본4. 언어적으로도
'21.4.29 7:29 AM (115.138.xxx.194)그렇고 발굴된 유물로도 그렇고 사료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
5. ...
'21.4.29 7:53 AM (180.65.xxx.50)칠지도라고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도 있죠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1c0315a
최근의 명문해석에 의하면, 그 제작연대는 369년(근초고왕 24)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태화(泰和) 4년 5월 16일 병오(丙午) 정양(正陽)에 100번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는데, 모든 병해를 물리칠 수 있으며 편안히 후왕에게 나누어 마땅하다. (아무개가 이 칼을) 제작했다"라는 것과 "선세(先世) 이래 이러한 칼이 없었는데, 백제왕 치세에 기묘하게 얻었기 때문에 성상(聖上)의 말씀으로 짐짓 왜왕을 위하여 만든 뜻을 후세에 전하여 보여라"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백제의 우위를 명백히 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 명문에는 백제왕의 '말'을 극존칭인 '성음'이라고 표현한 데 반하여 상대방인 왜왕에게는 경어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명령형의 하행문서 양식으로 되어 있어 이같은 해석의 타당성을 뒷받침해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부월(斧鉞)이나 도검(刀劍)의 하사는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의 신표라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주목할 때, 백제왕의 칠지도 하사 동기는 왜왕에 대한 일본열도 내에서의 일종의 대표권을 승인하는, 양국간의 종주·신속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는 백제왕이 그 권력범위를 확대하려는 데 근본 목적이 있었다. 한편 칠지도의 형상은 단군신화에 보이는 신단수와 같이 신앙의 대상을 도형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백제왕권이 하늘과 연결되는 신성성, 즉 초월적인 권위 및 사방천하관(四方天下觀)이 반영되어 있으며 천손을 자처한 백제왕의 역할과 권위를 과시하는 주술적 성격의 성구(聖具)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칠지도의 일부로 생각되는 유물이 부여 군수리 절터의 탑기둥 구멍 밑에서 출토된 바 있어 주목된다.6. 아줌마
'21.4.29 8:14 AM (58.236.xxx.102) - 삭제된댓글왕족은 백제후손이고 섬숭이들과 사무라이후손은 왜구종자일것같음.
7. ..
'21.4.29 9:37 AM (27.179.xxx.148) - 삭제된댓글아줌마님 맞아요..사무라이 종자는 따로 있던 원주민같아요.